‘슬릭백’ 허공을 나는 춤이라고? 심리학자가 알려주는 춤 팁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2023. 12. 1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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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의 이것도 심리학
슬릭백 챌린지 영상 캡처/ 틱톡 계정 'wm87.4'
‘슬릭백 챌린지!’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단어로, 일명 ‘공중부양 춤’이라고 불리는 춤을 따라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춤, 참 요상하다. 무용학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한 건 확실하다. 공중부양 춤이라는 애칭처럼 허공 위를 미끄러지듯 걸어가는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요상한 춤은 원래 2022년 ‘Jubi2fye’라는 아이디의 틱톡커가 올린 영상에서 나온 춤으로, ‘Jubi Slide’라고 불렸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한 중학생이 편의점 가는 길에 슬리퍼를 신고 이 춤을 춘 영상이 일주일 만에 2억 뷰를 돌파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 동영상에서 배경 음악으로 라킴(Lakim)의 ‘A Pimp Named Slickback’이라는 노래가 사용됐는데, 노래 중 ‘슬릭백(Slickback)’ 부분이 강렬하게 들리면서 슬릭백 춤으로 불리게 됐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이 춤이 워낙 이슈다보니 어떻게 추는지 소개해주는 동영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아무리 쉽게 설명해줘도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익히는 것은 별개 문제. 최근에는 슬릭백 챌린지를 하다가 부상을 입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요즘 필자도 이 슬릭백 춤에 꽂혔다. 음주가무 중 유일하게 ‘무(舞, 춤)’만 없다고 자평하던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유는 이 춤이 결국 나의 전공, 착시이기 때문이다. 왜 이 춤을 추면 공중에 떠서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사실 댄서는 하늘 위를 걷지 않는다. 슬릭백 댄스 비법 동영상을 보면 좀 허무한 느낌이 드는데, 별 비법 같은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냥 땅을 걷는 동작의 연속이다. 단, 일반적인 걷는 동작과 차이가 있다면, 앞발이 아닌 뒷발로 걷는다는 점이다.
편의상 앞으로 내딛는 발을 앞발, 뒤쪽에 있는 발을 뒷발로 칭하자.(걸음을 옮길 때마다 앞발과 뒷발은 계속 바뀐다) 뒷발에 시선을 고정해서 슬릭백 댄스를 보면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첫 째는 앞발은 확실하게 허공에 있지만 뒷발은 땅을 딛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뒷발을 제대로 보기 힘들 만큼 우리는 무의식적·자동적으로 앞발에 시선을 빼앗긴다는 점이다.

우리 주변에는 매우 다양한 사물들이 매우 다양한 움직임을 취하며 존재한다. 이와 같이 복잡한 환경에서 모든 시각 정보를 정교하게 처리한다는 것은 매우 유능한 뇌를 가진 인간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 뇌는 다양한 전략을 사용해 과부하를 줄이며 주변 환경을 효과적으로 해석한다.

생명체의 움직임은 인간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시각 정보다. 그래서 우리의 시각 시스템은 생명체의 움직임을 매우 특별하게 여기고, 매우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이런 자동적 처리 과정의 특성은 사람이 자신을 자유 의지로 통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사람의 발걸음도 마찬가지다. 워낙 중요한 정보다보니 뇌는 발걸음을 매우 특별하게 관리한다. 가끔 뉴스에서 CCTV에 찍힌 피의자의 발걸음만을 보고 피의자 신원을 식별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우리 뇌가 사람의 발걸음을 얼마나 특별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준다. 발걸음이 이렇게 중요하다보니, 발걸음을 볼 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의 기제’가 제멋대로, 그리고 매우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다시 걸을 때 사용되는 두 발을 앞발과 뒷발로 치환해보자. 앞발과 뒷발 중에서 중요한 정보를 갖는 것은 앞발이다. 앞발의 위치와 방향은 보행자의 움직임 정보를 알려준다. 이에 반해 뒷발은 기능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지언정 정보적으로는 가치가 없다. 그래서 우리의 주의 기제는 자동적으로 앞발에 주의를 둔다. 제한적인 주의 용량을 갖는 인간 시각 시스템의 입장에서 뒷발에까지 주의를 둘 여유는 없는 셈이다.

슬릭백 춤의 착시는 이 와중에 발생한다. 우리 뇌는 걸음걸이를 보면서 앞발의 움직임에만 주의를 기울인다. 뇌가 기대하고 있는 결과는 앞발이 땅을 딛고 다음 걸음을 행하는 것이다. 즉, 앞발이 땅을 디뎌 다음 움직임을 위한 동력을 얻을 거라고 예상한다.

그런데 슬릭백 춤에서 앞발은 땅을 딛지 않는다. 허공에서 잠시 멈추고 있으면, 뒷발이 땅을 박차 움직임의 동력을 만든다. 우리의 주의가 주어지는 곳은 앞발이다. 허공에 머무는 앞발은 우리에게 허공을 걷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그 순간 뒷발은 여전히 땅을 박차고 있지만, 주의가 주어지지 않는 정보는 우리에게 인식조차 되지 않으니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지각 심리학자로서 슬릭백 춤의 팁을 알려준다면, 앞발을 단순하게 미끄러지게 보이는 것보다 허공을 박차는 느낌이 들도록 동작을 취해보라. 더 강렬하게 공중부양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앞발로 땅을 박차는 것이 아닌 뒷발로 땅을 박차는 작은 변화로 공중부양 춤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만든다. 그런데 원래 혁신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싶다. 매우 거창한 이야기로 혁신과 변화를 이야기하지만,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에 작은 변화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의 뇌는 그렇게 설정돼있고, 그 변화에 박수칠 준비가 돼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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