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목욕' 나라서 기후총회? 산유국 웃는 '화석연료 전환 합의'

천권필 2023. 12. 1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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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술탄 알 자베르 의장이 폐막을 알리며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일까. 수많은 허점을 가진 맹탕 합의일까.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가 진통 끝에 ‘화석 연료로부터 전환’에 대한 공동 합의문을 발표하고 13일(현지시각)에 막을 내렸다.

중동의 산유국인 UAE에서 열린 이번 총회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수차례의 밤샘 협상 끝에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겠다는 목표를 합의문에 처음으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진전을 이뤄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구체적인 전환 계획이 빠진 허점투성이 합의문이라는 비판도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독일 본 대학교의 지리학자인 리사 쉬퍼는 네이처와 인터뷰에서 “이번 합의문은 (국제사회가) 과학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도 “전환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화석 연료의 '단계적 퇴출'이 아닌 '전환'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사우디 “파라오식 방법 묻혔다” 합의안 환영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 장관인 압둘아지즈 빈 살만 왕자. 로이터=연합뉴스
외신들은 이번 총회의 숨은 승자로 개최국이자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UAE)를 꼽았다. COP28을 개최함으로써 기후변화 의제를 주도적으로 이끈 명분을 얻은 동시에 석유 산업에 미치는 직접적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등 실리도 챙겼다는 것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UAE는 COP28을 세계 에너지 전환의 장애물이 아닌 후원자로 자리매김할 기회로 여겼다”며 “그 측면에서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석유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이번 합의안에 만족한다는 반응을 내놨다.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인 압둘아지즈 빈 살만 왕자는 사우디 언론과 인터뷰에서 “파라오가 지시하는 식의 방법론은 묻혔고, 이제 사람들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며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적절한 경로를 각국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최종 합의안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협상이 세계 최고 석유 수출국의 원유 판매 능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후 협상 주도하는 오일 머니…COP29도 산유국서 개최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석유 시설에서 화염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산유국들은 오일 머니를 무기로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총회에서도 100개 이상의 국가가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강력한 표현을 넣자고 주장했지만,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실패했다. OPEC 회원국은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80%와 석유 생산량의 약 3분의 1을 통제하고 있다. 내년에 열리는 COP29도 '석유 목욕'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을 정도로 석유 매장량이 풍부한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다.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을 가속한다는 내용이 합의문에 들어간 것도 산유국의 이해관계와 무관치 않다. 산유국들은 화석연료를 퇴출하는 것보다 CCUS 기술을 통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과거 석유가 곧 고갈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계속된 유전 탐사로 인해 확인된 석유 매장량이 오히려 늘고 있는 것도 화석 연료 퇴출 시기를 최대한 늦추려는 산유국들의 전략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원전 포함했지만…재생에너지도 3배 확대해야


전남 신안군의 폐업 염전에 설치된 태양광 단지. 프리랜서 장정필
이번 합의안에는 원자력과 수소 등 저탄소·무탄소 기술의 가속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원전을 통한 탄소중립 전략을 주장해온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동력을 얻은 셈이다. 실제 정부 대표단은 COP28에서 '무탄소에너지(CFE) 이니셔티브'의 글로벌 확산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총회를 통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로 확충해야 하는 숙제도 떠안았기 때문에 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대해 김주진 기후솔루션 대표는 “재생에너지 3배 확대라는 서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력 시스템의 변화와 함께 인허가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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