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물음표를 찍는 사람들

임세정,문화체육부 2023. 12. 15.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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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샌 누구 만나고 다녀?" 주변 사람들은 제 안부를 이렇게 묻곤 합니다.

사람 만나고 다니는 게 일이라 늘 대수롭지 않게 듣고, 대수롭지 않게 답합니다.

그는 "피아노 소리나 기타 소리, 서양음계의 멜로디로 구성된 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잠깐만요, 그게 다는 아닐걸요?'라고 말하는 음악"이라며 "다들 비슷한 음악을 하는 것보다 누군가는 이런 음악을 만들 때 세상이 좀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요"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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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정 문화체육부 차장


“요샌 누구 만나고 다녀?” 주변 사람들은 제 안부를 이렇게 묻곤 합니다. 사람 만나고 다니는 게 일이라 늘 대수롭지 않게 듣고, 대수롭지 않게 답합니다. 며칠 전엔 친구가 건넨 그 말이 조금은 다르게 들렸습니다.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누고, 거기서 무엇을 배우고 있냐’고 묻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괜히 제 발이 저렸던 것일 수도 있겠지요.

때로는 하루에도 수차례 인터뷰를 할 만큼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습니다. 배우, 감독, 가수, 디자이너, 작가, 평론가, 대학교수…. 만나는 이들의 직업이 다양합니다. 보람차게도, 겸손하고 배울 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과 나눈 대화를 곱씹어 봅니다. 대체로 ‘아, 나도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론과 함께 되새김질은 끝납니다. 작든 크든 뭔가를 이뤄낸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최근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을 생각해보니 그들은 물음표를 찍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음표를 찍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설명해보면 어떨까요. “당신이 알고 있는 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정말 그게 맞는 걸까요?” “왜 꼭 그래야만 하나요?”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한 사람이 손 들면 다 같이 따라 드는 걸 미덕이라 여기는 문화에선 달갑지 않은 이들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있으면 얼마나 질문이 쏟아지는지 모릅니다. 궁금한 것도 많고, 이의 제기도 계속됩니다. 끝없는 “왜”를 듣고 있으면 지금껏 당연히 여겨 온 것들에 갑자기 의심이 생길 정도입니다. 하지만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아이들의 질문은 점점 묵살합니다. 결국엔 시험이나 잘 보면 된다는 식이지요.

무례하고 오만한 사람들, 편견에 갇힌 사람들의 말은 마침표나 느낌표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몰랐던 것들을 궁금해하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맞다고 주장하겠지요.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기보다 타인에게 그 생각을 강요합니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보다는 안정적으로 이익을 주는 일에 몰두합니다. 사람이든 사회든, 낡을수록 그렇게 되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가수 루시드폴은 얼마 전 공사장 소음, 물속에서 나는 소리로 가사 없는 음악을 만들어 발표했습니다. 그는 “피아노 소리나 기타 소리, 서양음계의 멜로디로 구성된 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잠깐만요, 그게 다는 아닐걸요?’라고 말하는 음악”이라며 “다들 비슷한 음악을 하는 것보다 누군가는 이런 음악을 만들 때 세상이 좀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요”라고 했습니다.

영국 테이트모던의 수석큐레이터를 역임한 이숙경 맨체스터대 교수를 만나 세계 무대를 꿈꾸는 미술학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습니다. 그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문화적 편견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고, 더 흥미롭고 의미 있는 예술은 없을까 탐구해보라”고 조언했습니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 새로운 즐거움을 향해 가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물음표를 찍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시행착오를 통해 더 나은 것을 찾는 일에 가치를 두면서요. 만약에 세상이 점점 더 재밌어진다면 그건 아마 그런 사람들 덕분일 겁니다. 그들은 물음표로 구태의연한 세상에 마침표를 찍어나갈 테니까요. 아주 희미해서 처음엔 잘 보이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재밌게 살 수 있을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왔지만 바라던 만큼 재밌게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가져보려 합니다. 나이드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생각이 낡아져선 안 되겠다고, 더 용감하게 물음표를 찍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임세정 문화체육부 차장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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