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각수의 한반도평화워치] 끝이 안 보이는 우크라이나 전쟁…다발 전쟁 시대 대비해야
포스트 탈냉전 시대의 서막을 알린 우크라이나 전쟁이 22개월째 접어들면서 개전 초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러시아는 당초 우크라이나를 점령하여 친러 정부를 수립하려 했으나,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과 서방의 지원으로 무산되자 북부·동부·남부에서 점령 지역을 확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하반기에 우크라이나가 반격을 펼쳐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 27% 중 북부·남부에서 10%가량을 탈환하였다.
그러나 올해 6월 개시한 하계 공세는 참호전 양상으로 전선이 교착된 채 기동이 어려운 겨울에 들어서면서 장기 소모전의 늪에 빠졌다. 서방의 무기 제공 지연, 우크라이나군의 통합 작전 수행 능력 부족과 전력 분산으로 인한 공격력 저하, 방어로 전환한 러시아의 견고한 방어선 구축과 전술 개선 효과가 겹쳤다. 잘루즈니 우크라이나 총사령관이 최근 “파격적이고 멋진 돌파는 없을 것”이라 하였듯 어느 쪽도 당분간 승기를 잡기는 어려운 형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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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 국내 지지에 장기전 태세
미국·유럽은 전쟁 피로감 커져
미국의 세계 질서 운영 시험대
유럽권의 지원과 부담 늘려야
」
전쟁은 국가의 총체적 역량이 결정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양측의 병력과 무기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러시아는 병사 20여만 명이 사망하여 죄수까지 동원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무기·탄약까지 사용하지만 이마저도 모자라 이란·북한에서도 조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병력 약 7만 명이 사망하여 이제 40대 국민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이다.
확전이나 러시아의 핵 사용을 우려하고 있는 서방은 정작 우크라이나의 공세에 필요한 장거리포·탱크·장갑차·대공무기·포탄·전투기·전자전 무기 등의 지원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또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민의 사기를 떨어뜨리려 전기·수도·난방 인프라를 파괴하면서 일상생활이 힘들어졌고, 해외 난민·피난민이 인구 30%인 1250만 명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경제는 전쟁 후 25% 정도 축소되었고, 전후 복구 비용이 7500억 달러(약 1000조원)로 추산될 만큼 피해가 막대하다.
전쟁의 향배는 전투 현장을 넘어서 교전국의 총체적 역량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 러시아에는 서방의 강력한 제재의 영향이 중요하다. 서방 제재가 중장기적으로 러시아 경제를 압박하고 젊은 엘리트의 국외 탈출로 국력 쇠퇴를 촉진하겠지만, 단기적으로 중요한 석유·가스 수출이 중국·인도·튀르케예 등 우회로 확보로 큰 지장이 없고, 전시 경제 전환으로 무기 생산도 늘고 있다. 바그너그룹 수장 프리고진의 반란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 푸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에 별 영향이 없고 권위주의 통치로 국민 저항도 거의 없다.
글로벌 사우스 여론, 푸틴에게 우호적
전쟁 목적을 ‘친러 우크라이나 정권 수립’에서 ‘친서방 우크라이나의 실패 국가화’와 ‘서구와의 영원한 전쟁’으로 전환하여 장기전 태세를 굳히면서 시간을 무기화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선전전에서도 우위에 서고 있다. 최근 유럽외교평의회 여론조사에서 글로벌 사우스 주요 국가 여론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미국과 러시아 간 대리 대결로 보고, 서방과 우크라이나가 평화에 더 장애라는 인식을 보였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는 어려운 상황이다. 서방에서 전쟁 피로증이 나타나면서 지원의 지속과 강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키일세계경제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지원액이 유럽연합(EU) 1419억 달러, 미국 748억 달러, 영국·노르웨이 등 기타 국가가 393억 달러로, 유럽이 미국의 2배를 넘는다. 그러나 이는 다년도 계획을 포함한 수치로, 단기 지원으로는 비슷한 액수이다. 군사 지원의 중요성과 실제 집행 기준으로 볼 때는 미국의 지원이 훨씬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보수층의 우크라이나 전쟁 지지 하락, 일부 공화당 의원의 지원 반대, 국경 통제 예산과의 연계로 연내 예산 고갈 위험이 대두하고 있다. 내년 11월 대선에서 전쟁 조기 종결을 주장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며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
특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촉발된 가자지구 사태가 국제 여론의 관심을 분산하고 실질적으로도 포탄·미사일 지원과 재정 지원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유럽도 헝가리·슬로바키아·오스트리아 등이 지원에 부정적이라 연대에 균열이 있다. 유럽 경제를 이끄는 독일도 재정 적자 한계 준수에 관한 헌법재판소 판결로 재정 운용에 제약이 있어 어려움이 예상된다. 유럽 경제가 부진한 가운데 국수주의 우파가 세를 늘리는 것도 부담이다.
한국도 중장기적 대책 세울 때
이렇듯이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러시아에 크게 열세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 지원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언론 보도나 기고문에서 러시아와 휴전 교섭을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전략적 우위에 있는 러시아가 교섭에 응할 가능성이 희박하며, 최소한 내년 미국 대선 결과를 기다리려 할 것이다.
또한 교섭이 시작되어도 점령 영토 처리,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 문제, 포로 석방, 전범 처벌 문제, 배상, 제재 해제 등 수많은 난제가 도사리고 있어 타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설사 휴전협정이 체결돼도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분쟁이 재발한 2014년 민스크협정과 같이 러시아에 다음 침략을 위한 시간을 벌게 해줄 위험이 크다.
이런 맥락에서 서방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장기전 전략에 대비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수정하여야 한다. 병력과 무기 소모가 큰 공세를 방어 태세로 바꾸어 전투 역량 비축과 경제 회복을 꾀하고, 12월 시작하는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교섭을 가속하여 우크라이나의 서방화 노력을 지속하며, 유럽 지역의 문제인 만큼 유럽이 지원 책임과 부담을 늘려야 한다.
이 전쟁의 향방은 우크라이나에 국가 생존, 유럽에 유럽 안보, 미국에 세계 질서 운영이 걸려있다. 냉정한 현실 판단에 기초한 전략 전환과 함께 서방의 단결을 모색할 때다. 우리도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중장기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다발 전쟁 시대의 안보태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 전 외교부 차관, 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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