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읽기] 커피믹스와 기후재난
콜롬비아는 브라질과 베트남에 이은 세계 3위의 커피 생산국이다. 한때는 우리나라 커피의 대명사였고, 요즘엔 해외에서도 인기인 ‘커피믹스’의 주된 커피 원산지가 바로 콜롬비아 지역인데,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앞선 두 나라가 주로 저렴한 방식의 커피 소비에 적합한 중저가 원두의 대량 생산에 더 특화되었다면, 콜롬비아는 중저가 원두는 물론이고 ‘수프레모’와 같은 고품질 원두 생산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커피 대중화에는 콜롬비아 원두 고유의 좋은 풍미도 영향을 준 셈인데, 해당 지역에서 이런 다양한 커피 재배가 가능한 건 특유의 기후 때문이다.
콜롬비아는 원래 커피 재배에 적합지 않은 열대기후지만, 안데스산맥의 고지대 평원은 온화한 초가을 날씨라 커피 재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런데 2010년대 후반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기후변화로 강수 패턴이 예측 불가하게 바뀌며 갑작스레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는 시기와 장기간 가뭄이 이어지는 시기가 교차하게 된 것이다. 어느 쪽이건 안정적인 고산지대 기후와는 거리가 멀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기후변화가 병충해까지 심화시켰다는 점이다. 커피 열매에 구멍을 뚫는 해충인 커피천공충(coffee berry borer)은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잘 자란다. 고원지대에 폭우가 쏟아지자 다습한 환경이 만들어졌고, 마침 이상 고온 현상도 겹쳤다. 커피엔 나쁘고 벌레엔 좋은 환경이 조성된 결과가 바로 예년 대비 급감한 커피 생산량이다.
미국 농무부 해외농업국 자료에 따르면 콜롬비아의 커피 생산량은 10년 전 평균보다 10~12만 톤 정도가 줄었다. 일반적인 커피 추출 비율로 따져보면 에스프레소 100억 잔 분량이다. 현지에서는 주로 볶지 않은 생두 상태로 수출하니 수출액 감소분은 5억 달러(약 6500억원) 정도지만, 이마저도 1인당 GDP가 6천 달러 수준인 나라의 농민들에겐 큰 타격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콜롬비아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재배하면 그만 아니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최대 생산국인 브라질도 기후변화로 가뭄피해를 겪어 생산량을 벌충하기에는 여력이 없다.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이다.
안 마시면 그만인 커피 얘기라기엔, 우리나라도 콜롬비아와 같은 강수 패턴 변화와 기온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열대지방의 국지성 소나기인 스콜(squall)과 유사한 강수 패턴이 한국 여름철에 관찰된 지는 이미 오래됐고, 올해 겨울은 예년과 비교했을 때 섬뜩할 정도로 포근한 날씨를 보인다.
다행히 인간이 주식(主食)으로 삼는 곡물은 재배지가 세계 각지에 많아 상대적으로 수급에 큰 무리가 발생하고 있진 않다. 그런데 전남 신안군에서 바나나를 재배하고, 경북 고령에서 한라봉을 재배하는 시대에 우리 농업은 정말 안전한 게 맞을까.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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