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꿀팁’보다 지루함이 필요한 이유
‘계획대로 실행하라. 아무도 믿지 마라. 유리한 고지를 활용하라. 대가가 따르는 싸움에만 응하라. 공감은 나약함이다….’ 왠지 그럴듯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 말들은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경구가 아니다. 넷플릭스 영화 ‘더 킬러’의 내레이션이다.
‘더 킬러’의 도입부엔 주인공인 킬러(마이클 패스벤더)의 독백 장면이 20분간 이어진다. 프랑스 파리의 한 폐건물에 숨어든 킬러가 맞은편 건물의 누군가를 저격하기 위해 창가에 붙어 서서 며칠째 시간을 죽이고 있다. 그는 목표물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약 없는 기다림과 정탐, 예행연습을 반복한다. 킬러는 자신의 직업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면 이 일은 당신의 적성이 아니다.’
지루함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어디 킬러뿐이랴. 거의 모든 일의 본성에 가깝다. 글 쓰는 일 역시 초고를 쓴 다음엔 지긋지긋한 퇴고의 연속이다. 킬러의 말대로 “모든 것은 준비와 세부 사항에 대한 주의, 반복 확인, 반복 확인, 반복 확인에 달렸다.” 그러나 ‘10할의 성공률’을 자부하던 킬러가 거듭해서 반복 확인해도 실패할 수 있는 것이 또한 일이라는 것의 지랄 맞음이다.
인터넷에, 유튜브에 ‘꿀팁’이 넘쳐난다. 꿀팁이 때론 도움이 되지만 중독되면 약도 없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상황이 다른데 어찌 모두에게 통용되는 조언이 있을 수 있겠는가. 당장은 반짝 효과가 있다고 해도 다시 과거로 되돌아간 자신을 발견하게 될 터. 너무 기대지 않는 게 좋다.
어떤 일을 제대로 하려면 지루함이라는 정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1만 시간의 법칙’이다. 분명한 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그 사실만큼은 달라지지 않는다. 책상 앞에서, 업무 현장에서 지루한 반복확인과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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