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혔던 신라젠 주가 반등했는데...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3. 12. 14. 21: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다시 ‘펙사벡’…17만 개미 또 희망고문?

개미 투자자에게 고통을 남겼던 신라젠이 그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을까.

잠잠했던 신라젠 주가가 모처럼 탄력받았다. 지난 11월 27일 신라젠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튿날에도 장중 20%까지 뛰는 등 급등세를 이어갔다. 11월 24일까지 4000원 선에서 움직였던 주가는 이틀 만에 7260원을 찍었다. 거래량도 일 400만주를 넘어서며 평소의 10배가량 늘어났다. 이후 주가가 조정을 받았으나 12월 6일 기준 5780원으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신라젠 주가가 급등한 이유는 개발 중인 항암제 ‘펙사벡’이 국내외 임상시험에서 유효성을 입증받으면서다. 신라젠의 핵심 파이프라인 펙사벡은 바이러스로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다. 몸속에 바이러스를 투입하면 암세포에 침투해 복제와 증식을 반복하다 암세포를 무력화시킨다. 암세포를 인식하지 못하던 면역세포들은 바이러스를 품은 암세포를 공격하기도 한다. 이에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조작해 정상세포에서 증식하지 않고,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증식하는 ‘종양 용해’ 바이러스를 항암제로 개발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신라젠은 천연두 백신에 사용된 백시니아 바이러스를 재조합해 펙사벡을 개발했다.

잠잠했던 신라젠 주가가 모처럼 탄력받았다. 신라젠 주가가 급등한 이유는 개발 중인 항암제 ‘펙사벡’이 국내외 임상시험에서 유효성을 입증받으면서다. (신라젠 제공)
“임상서 안정성·유효성 확인”

회사 측 발표에 상한가 직행

신라젠은 미국 제약사 리제네론의 면역관문억제제 리브타요(성분명 세미플리맙)와 병용해 진행한 신장암 임상 1b/2a상 결과를 발표했다. 11월 27일 4개(A~D)의 임상군 중 펙사벡과 리브타요를 병용으로 정맥 투여 임상군(C, D)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임상은 미국, 한국, 호주 등 총 21개 임상기관에서 시작했다. 올 초 마지막 환자의 마지막 약물 투약을 완료하고 종료했다. C군은 면역관문억제제 치료 경험이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정맥 주사 펙사벡과 리브타요를 병용했다. 23.3%의 객관적 반응률(치료 반응률·전체 환자에서 종양 크기 감소 등 객관적 반응이 나타난 환자의 비율)과 25.1개월의 전체생존기간(OS·Overall Survival)이 관찰됐다. 면역관문억제제 치료에 실패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정맥 주사 펙사벡과 리브타요를 병용한 D군은 17.9%의 객관적 반응률이 관측됐다. D군은 전체 28명 중 22명이(78.6%) 이전에 세 차례 이상 약물 치료 경험이 있는 환자로 구성됐고, 5명은(17.9%) 두 차례 치료 경험이 있는 환자다.

신라젠은 2가지 점에 의미를 부여한다. 먼저 펙사벡과 리브타요의 약물 시너지를 확인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키트루다와 임리직 등 면역관문억제제와 항암 바이러스의 조합이 이미 검증됐지만 피부암과 같이 직접 투여 방식에 국한됐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는 시장이 선호하는 정맥 투약 방식이라는 점에서 다르다는 게 신라젠 설명이다.

항암 바이러스는 체내에 들어가면 면역세포가 적으로 간주해 암세포에 닿기도 전에 사멸한다. 이 때문에 그간 종양에 직접 투여해왔다. 그러나 직접 투여는 의사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고, 의료 현장에서도 선호하지 않는다. 환자는 직접 투여가 가능한 병원이나 센터를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현재 판매 중인 항암 바이러스제인 암젠의 ‘임리직’ 역시 종양에 비교적 쉽게 직접 투여할 수 있는 피부암으로 허가를 받았다. 신라젠 측은 “정맥 투여로 치료제를 전신에 퍼지게 해 항암 바이러스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고, 최근 항암제 트렌드인 병용 요법을 통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리제네론이 이미 허가받아 시판 중인 리브타요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펙사벡을 파트너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리제네론이 향후 적응증 확대를 위해 펙사벡 권리를 사가는 계약을 체결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친다.

신라젠은 자체적인 발표 형식이 아니라 임상시험 결과보고서(CSR)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알렸다. 결과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자 대외적으로 공인받았다는 점을 알리려는 의도다. 신라젠 측은 “통상 암 임상에서 치료 경험이 많은 환자일수록 반응률이 떨어지는 것을 고려하면 이번 임상 결과는 고무적”이라고 했다.

한때 코스닥 2위까지 올랐지만

경영진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 내리막

펙사벡 기술 수출에 관심이 모아지며, 주가 하락으로 울상 짓던 투자자도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종목토론방에는 “물린 지 4년이 넘었는데 희망이 보인다” “8000원까지 불기둥 기대한다” “주가 추락은 더 이상은 없을 것 같다”는 등의 희망 섞인 글이 올라온다.

신라젠은 지난 2016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후 간암 치료제 ‘펙사벡’으로 주목받았다.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2위까지 올랐다. 승승장구를 달리던 회사가 무너진 때는 지난 2020년 5월, 문은상 전 대표와 경영진이 미공개 주식 정보를 이용했다는 혐의로 대대적인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부터다. 설상가상 펙사벡 단독 요법으로 간암 임상 3상을 진행하다 실패하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사이 경영진도 바뀌었다. 신라젠은 회사를 엠투엔에 매각하고 경영진을 교체했다. 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가까스로 해결해 상장폐지 위기에서 탈출했다. 지난해 10월 주식 거래도 2년 반 만에 재개됐다. 하지만 투자자 기대와는 달리 주가가 회복되지 못하면서 17만명에 육박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됐다.

신라젠은 이번 임상 결과를 토대로 리제네론과 라이선스 아웃을 포함한 다양한 협력 방안에 논의할 계획이다. 양 사는 2017년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 승인 이후 미국, 한국, 호주 등에서 임상을 진행해왔다.

업계 관계자들은 리제네론으로 펙사벡 기술이 이전될 수 있을지 주목한다. 리제네론은 시가총액이 113조원에 달하는 미국 바이오 기업이다. 지난해 프랑스 사노피로부터 프로그램 세포사멸 단백질-1(PD-1) 저해제 계열 항암제 ‘리브타요’의 전권을 매입했다.

다만 리제네론의 리브타요는 적응증 확장에 제동이 걸려 있다. 리브타요는 2018년 미국에서 피부암 치료제로 승인받은 후, 비소세포폐암 적응증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당시 공동 개발사인 프랑스 사노피가 부작용 이슈로 자궁경부암 대상 리브타요의 적응증 확대 승인신청서를 미국에서 자진 철회했다. 리브타요는 현재 피부암과 폐암에 대한 적응증만 보유하고 있다. 동일한 기전의 다른 면역관문억제제들이 수십 개 암종에 대한 적응증을 보유하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기술 이전을 할 수 있다면 신라젠 입장에서도 이득이다. 신장암 임상이 확대된다면 3상을 진행해야 하는데, 신라젠보다는 글로벌 제약사인 리제네론이 주도하는 것이 허가까지 도달하는 데 유리하다. 이 때문에 리제네론이 펙사벡을 자체 파이프라인에 편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라젠 측은 “리제네론의 리브타요는 적응증이 적고 면역 치료제 후발 주자기 때문에 시장점유율이 낮다”며 “다른 약물과 병용 임상으로 적응증을 확보하고 점유율도 높이려 하는데, 이번 임상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 만큼 협상 테이블이 곧 차려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밝혔다.

희망적인 임상 결과가 나왔지만 투자는 여전히 조심해야 한다. 임상 효과를 어느 정도 확인했을 뿐, 경쟁 항암제와의 차별성을 입증하기까지는 먼 길이기 때문이다. 실적다운 실적도 아직 없다. 증권가의 제대로 된 보고서도, 목표주가도 아직은 없는 상황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8호 (2023.12.13~2023.12.19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