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러든 국내 시장, 해외서 어깨 편 ‘K북’
김남중 2023. 12. 14. 20:31
[책과 길] 2023년 출판·문학계 돌아보니
교보문고와 예스24가 발표한 연간 집계에 따르면,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세이노의 가르침’으로 집계됐다. ‘세이노’란 필명을 쓰는 1955년생 1000억원대 투자가가 쓴 책으로 75만부 넘게 팔렸다. 올해 도서시장에서는 자기계발서 판매가 두드러졌고, 문학 판매는 전년보다 감소했다. 문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6년 만에 발표한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었다. 인문서에서는 집중력 붕괴 현상의 이유와 위험, 해결책 등을 다룬 ‘도둑맞은 집중력’이 일 년 내내 베스트셀러 수위를 차지했고, 연말 예스24 독자들이 뽑은 ‘2023 올해의 책’에서 1위를 차지했다.
천명관의 장편소설 ‘고래’가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올해도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의 호평이 이어졌다.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올해 프랑스에서 출간돼 페미나상과 메디치상 후보에 나란히 올랐고,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한국인 작가 최초로 수상했다. 지난해 부커상 최종후보였던 정보라의 ‘저주토끼’는 올해 미국에서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다. 이밖에도 김혜순 시집 ‘날개 환상통’이 미국에서 번역돼 뉴욕타임스 선정 ‘최고의 신작 시집’ 5권에 들었고, 이수지 그림책 ‘그늘을 산 총각’은 월스트리트저널이 뽑은 ‘올해 최고의 어린이책’ 10권에 포함됐다.
여성작가들이 주도하는 문학시장에 오랜만에 남성 작가들이 돌아왔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는 팔십 세에 신작 ‘황금 종이’(전 2권)를 발표해 연말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았다. 김탁환(55)은 조선 후기 긴 천주교 박해 역사 중 하나인 1827년 정해박해를 소재로 한 세 권짜리 대하소설 ‘사랑과 혁명’을 출간했다. 30대 후반에 제주도 4·3 사건을 다룬 첫 소설 ‘순이 삼촌’을 쓴 현기영은 여든 둘에 다시 4·3을 다룬 대하소설 ‘제주도우다’(전 3권)를 발표했다. 황석영은 총 50권으로 계획된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 1차분 5권을 선보였다.
지난 10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노르웨이 극작가 욘 포세가 발표되면서 국내에서 포세의 책들이 일제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아침 그리고 저녁’ ‘멜랑콜리아’ 등 대표적인 소설과 함께 ‘가을날의 꿈 외’ 같은 희곡집도 주목을 받았다. 아일랜드 출신 소설가 클레어 키건은 올해 국내에 처음 소개돼 작가들과 문학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지난 4월 출간된 ‘맡겨진 소녀’는 ‘소설가 50인이 뽑은 2023년 올해의 소설’에서 해외 작가 작품 중 최다 추천을 받았고, 연말에 키건의 2021년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번역돼 나왔다. 미국 작가 조지 손더스도 주목을 받았다. 올 초 그의 소설 창작 강의를 담은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가 번역됐고 이어 단편집 ‘패스토럴리아’가 출간됐다.
지난해 11월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가 공개돼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AI를 다룬 책들이 쏟아졌다.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조건’(백욱인),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김대식), ‘AI 이후의 세계’(헨리 키신저 외), ‘권력과 진보’(대런 아세모글루 외) 등이 출간됐고, AI가 제공할 편의와 위험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AI를 이용한 저술과 번역도 시도됐다. 출판사 스노우폭스북스는 챗GPT가 영어로 쓰고 인공지능 번역기 ‘파파고’가 한글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책을 출간했다. 한국문학번역상을 받은 일본인 주부가 파파고를 이용해 번역했다는 논란이 벌어졌고, 한국문학번역원은 ‘AI 번역 현황과 문학 번역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농구만화 ‘슬램덩크’는 올해 출판계 최대의 히트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이 원본 만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슬램덩크 신장재판편’ 시리즈(전 20권)는 단행본 기준 250만부가 판매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슬램덩크 리소스’는 알라딘 독자들이 선정한 ‘2023년 올해의 책’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만화 전문 출판사 대원씨아이는 올해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최애의 아이’ 등을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으며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다. 교보문고는 만화가 전체 도서 판매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2020년 2.7%에서 2023년 4.7%까지 늘어나며 시·에세이 분야와 동률을 이루었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 예산안에서 출판·독서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출판·서점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문체부는 ‘문학나눔’ 사업을 폐지해 ‘세종도서’ 사업에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두 사업을 통합하면서 예산을 축소한다는 방침이다. 동네서점 지원 예산 11억원 가량도 전액 삭감될 위기에 처했다. 한국 문학 작품의 해외 번역·출판을 지원하는 한국문학번역원 예산도 삭감된다. 출판계 대표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지난 8월 11년 만에 장외 집회를 열고 출판 지원 예산 삭감을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서점계도 작가 초청 북토크, 책 모임, 글쓰기 수업 등에 지원하던 예산이 사라지면 동네서점의 문화공간 기능이 사라진다며 온라인을 중심으로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 고무신’ 원작자인 이우영 작가가 출판사 측과 애니메이션 캐릭터 저작권을 둘러싼 법적 공방을 벌이다 지난 3월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창작자의 불공정 계약 문제가 주목을 받으면서 문체부가 특별조사에 나섰고, 일명 ‘검정 고무신 방지법’(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 발의됐다. 지난 5월에는 한 고등학생이 온라인서점 알라딘이 보유한 전자책 약 72만권을 해킹해 유포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전자책 저작권 보호의 취약성이 드러났고, 문제 해결을 둘러싼 출판사들과 알라딘의 갈등이 이어졌다. AI 시대를 맞아 AI 저작권 문제도 부상하고 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는 방대한 데이터 학습이 필수적이고, 책도 AI의 주요 학습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AI 저작권이 주목되고 있다.
2023년 출판·문학계를 돌아보며 현상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몇 가지 추려본다. 국내적으로는 경기 침체와 영상 콘텐츠 인기 등으로 도서 출판과 판매가 다소 위축된 가운데 해외에서는 한국 책들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상반기 ‘슬램덩크’ 바람으로 만화 판매가 두드러졌으며, 노벨문학상을 받은 욘 포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진지한 독자들의 존재를 확인시켜줬다. 관록의 남성 작가들이 대하소설을 들고 귀환한 것도 반갑다. 출판·도서 지원 예산 삭감은 하반기 내내 뜨거운 이슈였다.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책… ‘세이노의 가르침’ 등
교보문고와 예스24가 발표한 연간 집계에 따르면,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세이노의 가르침’으로 집계됐다. ‘세이노’란 필명을 쓰는 1955년생 1000억원대 투자가가 쓴 책으로 75만부 넘게 팔렸다. 올해 도서시장에서는 자기계발서 판매가 두드러졌고, 문학 판매는 전년보다 감소했다. 문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6년 만에 발표한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었다. 인문서에서는 집중력 붕괴 현상의 이유와 위험, 해결책 등을 다룬 ‘도둑맞은 집중력’이 일 년 내내 베스트셀러 수위를 차지했고, 연말 예스24 독자들이 뽑은 ‘2023 올해의 책’에서 1위를 차지했다.
더 뜨거워진 ‘K문학’… 한강·천명관·정보라
천명관의 장편소설 ‘고래’가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올해도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의 호평이 이어졌다.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올해 프랑스에서 출간돼 페미나상과 메디치상 후보에 나란히 올랐고,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한국인 작가 최초로 수상했다. 지난해 부커상 최종후보였던 정보라의 ‘저주토끼’는 올해 미국에서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다. 이밖에도 김혜순 시집 ‘날개 환상통’이 미국에서 번역돼 뉴욕타임스 선정 ‘최고의 신작 시집’ 5권에 들었고, 이수지 그림책 ‘그늘을 산 총각’은 월스트리트저널이 뽑은 ‘올해 최고의 어린이책’ 10권에 포함됐다.
조정래·김택환… 대하소설로 귀환한 남성 작가들
여성작가들이 주도하는 문학시장에 오랜만에 남성 작가들이 돌아왔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는 팔십 세에 신작 ‘황금 종이’(전 2권)를 발표해 연말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았다. 김탁환(55)은 조선 후기 긴 천주교 박해 역사 중 하나인 1827년 정해박해를 소재로 한 세 권짜리 대하소설 ‘사랑과 혁명’을 출간했다. 30대 후반에 제주도 4·3 사건을 다룬 첫 소설 ‘순이 삼촌’을 쓴 현기영은 여든 둘에 다시 4·3을 다룬 대하소설 ‘제주도우다’(전 3권)를 발표했다. 황석영은 총 50권으로 계획된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 1차분 5권을 선보였다.
올해 발견된 해외 작가들… 포세·키건·손더스
지난 10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노르웨이 극작가 욘 포세가 발표되면서 국내에서 포세의 책들이 일제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아침 그리고 저녁’ ‘멜랑콜리아’ 등 대표적인 소설과 함께 ‘가을날의 꿈 외’ 같은 희곡집도 주목을 받았다. 아일랜드 출신 소설가 클레어 키건은 올해 국내에 처음 소개돼 작가들과 문학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지난 4월 출간된 ‘맡겨진 소녀’는 ‘소설가 50인이 뽑은 2023년 올해의 소설’에서 해외 작가 작품 중 최다 추천을 받았고, 연말에 키건의 2021년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번역돼 나왔다. 미국 작가 조지 손더스도 주목을 받았다. 올 초 그의 소설 창작 강의를 담은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가 번역됐고 이어 단편집 ‘패스토럴리아’가 출간됐다.
AI 열풍
지난해 11월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가 공개돼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AI를 다룬 책들이 쏟아졌다.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조건’(백욱인),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김대식), ‘AI 이후의 세계’(헨리 키신저 외), ‘권력과 진보’(대런 아세모글루 외) 등이 출간됐고, AI가 제공할 편의와 위험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AI를 이용한 저술과 번역도 시도됐다. 출판사 스노우폭스북스는 챗GPT가 영어로 쓰고 인공지능 번역기 ‘파파고’가 한글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책을 출간했다. 한국문학번역상을 받은 일본인 주부가 파파고를 이용해 번역했다는 논란이 벌어졌고, 한국문학번역원은 ‘AI 번역 현황과 문학 번역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만화 ‘슬램덩크’ 250만부 판매
농구만화 ‘슬램덩크’는 올해 출판계 최대의 히트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이 원본 만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슬램덩크 신장재판편’ 시리즈(전 20권)는 단행본 기준 250만부가 판매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슬램덩크 리소스’는 알라딘 독자들이 선정한 ‘2023년 올해의 책’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만화 전문 출판사 대원씨아이는 올해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최애의 아이’ 등을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으며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다. 교보문고는 만화가 전체 도서 판매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2020년 2.7%에서 2023년 4.7%까지 늘어나며 시·에세이 분야와 동률을 이루었다고 밝혔다.
출판·독서 지원 예산 삭감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 예산안에서 출판·독서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출판·서점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문체부는 ‘문학나눔’ 사업을 폐지해 ‘세종도서’ 사업에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두 사업을 통합하면서 예산을 축소한다는 방침이다. 동네서점 지원 예산 11억원 가량도 전액 삭감될 위기에 처했다. 한국 문학 작품의 해외 번역·출판을 지원하는 한국문학번역원 예산도 삭감된다. 출판계 대표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지난 8월 11년 만에 장외 집회를 열고 출판 지원 예산 삭감을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서점계도 작가 초청 북토크, 책 모임, 글쓰기 수업 등에 지원하던 예산이 사라지면 동네서점의 문화공간 기능이 사라진다며 온라인을 중심으로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저작권 논란… 캐릭터·전자책·AI 저작권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 고무신’ 원작자인 이우영 작가가 출판사 측과 애니메이션 캐릭터 저작권을 둘러싼 법적 공방을 벌이다 지난 3월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창작자의 불공정 계약 문제가 주목을 받으면서 문체부가 특별조사에 나섰고, 일명 ‘검정 고무신 방지법’(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 발의됐다. 지난 5월에는 한 고등학생이 온라인서점 알라딘이 보유한 전자책 약 72만권을 해킹해 유포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전자책 저작권 보호의 취약성이 드러났고, 문제 해결을 둘러싼 출판사들과 알라딘의 갈등이 이어졌다. AI 시대를 맞아 AI 저작권 문제도 부상하고 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는 방대한 데이터 학습이 필수적이고, 책도 AI의 주요 학습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AI 저작권이 주목되고 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국민일보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아이, 병원 데려가 보라”는 이웃의 말…무례한 건가요
- ‘서울의봄’ 영화관에 두더지게임… 조국 “내 제안 받았나^^”
- 훠궈 먹다 머리에 ‘쥐 벼락’… 中 또 위생 논란 [영상]
- ‘40㎏ 감량’ 오프라 윈프리 “사실은 비만치료제 복용” 고백
- “‘판생’ 생각하면 당연히 보내야죠… 푸바오, 영원히 행복하길”
- ‘마약’ 박유천·‘쌍칼’ 박준규, 고액 세금 체납자 명단에
- 행진 중 웨딩드레스 터져 속살 노출… 업체는 “저출산이라”
- 82년생 남교수-01년생 여제자 불륜 폭로…대학가 발칵
- “현! 다신 안 올게, 한 번만…” 울부짖는 전청조 체포 장면
- 포르쉐 차주의 갑질… 민폐주차 딱지에 ‘경비원 잘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