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북클럽 3기] 스스로 애매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보세요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편집자말>
[김지은 기자]
여름을 좋아하는 친구가 뜬금없이 '이젠 겨울이 좋아'라는 카톡을 사진 한 장과 함께 보냈다. '나의 겨울 방학 이야기'란 부제가 달린 책 사진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나도 그 책을 찾아보았다.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어 – 나의 겨울 방학 이야기>는 영화감독, 변호사, 소설가 등 다른 영역에 종사하는 8명의 작가들이 들려주는 자신의 겨울 방학 이야기이다. 겨울 방학 기억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을 하나씩 들려준다.
각각의 에피소드도 좋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편지도 감동적이다. 대부분 '열아홉, OO에게', '열다섯 살의 OO에게' 처럼 예전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가 많다. 쉽게 책장이 넘어갔던 에피소드와 달리 편지 부분에서는 조금 더 머무르게 됐다. 편지를 읽다 자꾸 어느 겨울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떠올라서다.
▲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어> 표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어 -나의 겨울 방학 이야기> 앞 표지 |
ⓒ 책폴 |
겨울은 나이가 바뀌는 계절이다. 설에 친척들에게 '몇 학년이니?'라는 질문을 받으면, 지난 학년으로 얘기해야 하나, 올라갈 학년으로 얘기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기억이 난다. 마무리와 시작이 있는 계절. 그래서 낙담도 다짐도 많이 하는 계절. 그 모든 마음이 추위와 함께 기억된다. 결산과 결심의 그 겨울이 또 왔다.
겨울에 겨울 책을 읽으니 더 좋았다. 사실 한 번에 다 읽을 생각이 아니었는데 감동적인 부분을 체크도 하지 않은 채 휘리릭 읽어버렸다. 서평을 쓰기 전에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표지를 살펴봤다. 뒷표지 날개에 '청소년과 어른이 함께 읽고 공감하는 영어덜트 서사의 새로운 프리즘'이라고 이 시리즈를 소개하고 있다. 이 시리즈 이름은 '위아영(We are young)'이다.
'그렇다면 열세 살 우리 딸에게 추천해주어도 되겠군.'
텔레파시가 통했을까. 그날 저녁, 딸이 "엄마, 나 읽을 책 없어?"라고 물어봤다. 난 기다렸다는 듯 이 책을 아이에게 내밀었다. 아이가 책을 찾은 이유는 이미 받은 용돈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인상 깊었던 부분을 필사하고 간단한 소감을 쓰면 보너스 용돈을 준다. 잘못된 방법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우리 집 사춘기 아이는 이래야만 책을 읽는 것이다. 아이는 책을 가져가 인상적인 부분에 인덱스를 붙이며 읽는다. 그러고는 바쁘게 필사를 한다. 곧이어 나에게 노트 검사를 받고 용돈을 가져간다. 발걸음도 가볍게, 총총총.
▲ 아이와 내가 책에 붙인 인덱스 아이의 인덱스는 굵고, 내 인덱스는 얇다. 겹치는 부분은 겨우 두 부분. |
ⓒ 김지은 |
'영원할 줄 알았던 관계가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변하는 관계 안에서 좋은 사람들을 사귀게 되는 기쁨도 알았다. 나도, 다른 사람도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도.'(p.29)
아이는 초등학교 친구들과 다른 중학교에 가게 된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저 부분에 인덱스가 붙은 걸 보니 안심이 되었다.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재능이라 믿었던 것은 비루하게 느껴졌고 반짝임은 사라졌다. 나는 정말 작은 우물 속의 개구리였다. 그럭저럭인 재능을 감싸던 영혼 없는 칭찬에 힘입어 한껏 도도했던 아이가 자라서,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애매한 나이 즈음에 처음으로 마주한 커다란 벽. 그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p.140)
'너무 힘들어. 너무 무서워. 나, 정말 해 볼 만큼 해 보고 있는데, 그랬는데도 안 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이렇게 뭔가를 간절히 원해 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 그만큼 최선을 다했는데. 이렇게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면, 그럼 어떻게 해야 해?' (p.144)
위의 내용에서 아이의 인덱스를 발견하고 혹시 아이가 스스로 애매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최선을 다해도 안 될까 봐 겁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아이에게 격려해 줄 말을 찾다가 깨달았다.
사실 이건 내가 자주 하는 생각이다. 스스로 애매하다 여기고, 그래서 남들보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하는 최선이 과연 최선인지, 더 최선을 다할 수는 없었던 건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 앞에서 매번 나를 질책한다.
애매한 게 뭐 어때서
'애매한 엄마가 애매한 딸을 낳았네.' 하며 자조하다가 퍼뜩 '애매한 게 뭐 어때서!'란 생각이 들었다. 애매해서 여러 분야에 도전할 수 있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애매함 속에서 자기 길을 찾아가다 보면 분명히 얻는 것이 있다.
특출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애매하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진 걸 탓할 게 아니라 애매해도 잘 사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걸으며 청소기를 돌리며 설거지를 하며 생각한다. 애매해도 잘 사는 방법이 뭘까. 천재로 태어나지 않은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내게 주어진 애매한 재능을 낭비하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
아이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애매하니 그걸 불평할 게 아니라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고. 남과 비교할 필요 없다고. 아이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한다.
"엄마, 그게 돼? 알면서도 비교하게 되지."
"아, 그런가? 그치."
난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치기보다 내가 먼저 변하는 게 가장 훌륭한 교육이겠지. 쉽지 않은 일이다.
질책보다는 격려를
그래도 작가들이 사춘기의 자신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아이가 위안을 얻었길 바란다. 전전긍긍하는 대신 좀 더 관대하게 삶을 즐겨도 괜찮다는 말, 반복이 괴롭고 지겨워도 변화가 있다는 말, 좋아하는 일들을 마음껏 즐겼으면 좋겠다는 말. 지금은 잘 모르겠어도 이 말들이 콩나물시루에 주는 물처럼 아이의 몸 어딘가에 스며들어 아이를 자라게 하기를.
이 책은 겨울에 읽기 딱 좋은 따뜻한 책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자신을 질책하지 않고 격려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심지어 힘들었던 어릴 적 자신에게 또는 고단한 현재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청소년 아이가 있다면 함께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이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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