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아이들은 왜 엎드려 잘까, 노교수의 답변

김병하 2023. 12. 1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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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교사를 길러내는 일에 헌신하고 어느듯 80줄에 들어선 김민남 교수(경북대 명예교수)가 자신의 마지막 저서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면 교육이 되는가?> (2023)를 냈다.

 저자가 몸담은 <지식과세상> 사회적 협동조합 기획시리즈(8)로 출판된 이 책은, 그간 저자가 세종시 교사연수를 비롯해 강의한 것을 엮은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교육이 되는지를 거듭 물음으로써, 교사는 자신의 교육활동을 '인술(art)'로 고양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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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민남의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면 교육이 되는가?>

[김병하 기자]

평생 교사를 길러내는 일에 헌신하고 어느듯 80줄에 들어선 김민남 교수(경북대 명예교수)가 자신의 마지막 저서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면 교육이 되는가?>(2023)를 냈다.
 
▲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면 교육이 되는가?> 책 표지 이 책은 평생 교사를 길러내는 일에 헌신해온 김민남 교수(경북대 명예교수)의 '교육학 강의' 마지막 저서다.
ⓒ 김병하
 
저자가 몸담은 <지식과세상>사회적 협동조합 기획시리즈(8)로 출판된 이 책은, 그간 저자가 세종시 교사연수를 비롯해 강의한 것을 엮은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종 교사들과 20여 차례 강의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굉장한 행운을 누렸다. 그들의 교육적 관심사를 현안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근본이 되게 풀어내는 논리로 강의안을 만들었다. 강단에 서 있기보다는 광야에서 '거칠게' 말을 쏟아내는 그런 기분이었다.

한 강의를 끝내고 다음 강의를 기다리며, '물음'에 젖어든 내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나는 물음을 앞에 둔, 물음에 직면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그때 그 시절 나의 존재방식을 지금 다시 자각하고 있다."

교육 문제는 사람의 문제, 곧 사랑의 문제

결코 흔치 않는 그런 생생한 경험의 연장에서 이 책이 기필되었다. 저자는 미래 세대에 상속할 자산으로 교육의 힘을 강조한다. 교육문제를 사람문제로 의제화해, 그것을 체계적으로 기획하고 실천하는 특별한 장소로서 '학교'에 주목한다.

하지만 오늘날 학교에서 왜 엎드려 자는 아이들은 늘어만 갈까? 저자는 '학교교육'(schooling)은 '학습의욕'을 매개로 해 성립한다면서, 이렇게 문제제기한다.

"왜 엎드려 자는지, 답을 찾아야 한다. 그게 답이 되게 풀어낼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들 모두가 함께 나설 수 있다.

이렇게 출제하면 어떨까? 지식전수의 장이면 잔다. 청강생이 되면 잔다. 의미를 부여하는 살아 있는 아이들의 지식활동의 현장이라면 모두 깨어 있지 않을까? …(중략) 낯설은 걸 연습해 익숙한 것으로 다지는 배움의 과정이 학교에서 사라졌다. 애씀의 내적 보상인 즐거움이 없다."

이런 맥락에서 김민남 교수는 지식을 대상화하는 시험나라에서 빚어진 오랜 교실교육 관행을 질타한다.

저자에 따르면 교육문제가 사람문제라 할 때 그 문제는 곧 '사랑'이다. 여기 '사랑'은 생물학적인 것을 넘어 사랑의 '사회화'로 그 넓이를 펼친다. 사랑의 사회화 과정을 밑변으로 삼아 교육은 정신적 성장을 꼭지점(목표)으로 설정한다.

밑변이 길수록 꼭지점은 안정되게 올라간다. 저자는 "정신이 성장한다는 것은 사람을 분별하는 관계에 마음이 아프고 분해, 그 마음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이랬다. 해서 사람문제로서 교육문제는 인재(人才)가 아닌 인재(人材)로 다시 개념화 되어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강조한다.

시인 이문재는 나무는 끝이 시작이기에 "지금 여기가 맨 끝이자 시작"이랬다. 교사는 지금 여기를 정면으로 문제 삼아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교육이 되는지를 거듭 물음으로써, 교사는 자신의 교육활동을 '인술(art)'로 고양시킨다.

여기 '인술'은 생명체의 자기 치유력(면역력)에 의거해 생명을 '온 것'으로 보는 합목적의 세계관이다. 해서 페스탈로치는 "생명이 치유하고, 삶이 도야(陶冶)한다"고 했다.

노자는 되돌아보는 것이 도(道)의 움직임(반자反者, 도지동道之動)이랬다. 전문직으로서 교사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면 교육이 되는가?>를 계속 반추하는 과정에서 교과를 교과답게, 교육을 교육답게 연출한다. 이게 교사의 운명이자 특권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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