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닛, AI 기업 볼파라 인수로 美 전진기지 확보…"확보 데이터만으로도 상당한 비용 절감"(종합)
2525억에 인수…매출 97% 미국에서
루닛의 FDA 승인 제품 3종도 진출 탄력
"보유 데이터, 단순히 따져도 3~4천억 가치"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이 뉴질랜드 기반의 다국적 기업 볼파라 헬스 테크놀로지(Volpara Health Technologies) 인수를 통한 미국 AI 의료 시장 직접 진출에 나선다.
루닛은 미국 내 2000곳 이상 의료기관에 AI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는 볼파라를 1억9307만달러(약 2525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14일 밝혔다. 계약 대상은 호주증권거래소(ASX)에 상장된 볼파라의 발행주식 2억5437만주 전체로 볼파라는 루닛의 100% 자회사로 편입된다. 주당 가격은 호주달러(AUD) 기준 1.15호주달러로, 이는 볼파라의 전일 종가 0.78호주달러 대비 프리미엄 47.4%가 붙은 가격이다.
이번 인수는 루닛이 창립 이래 처음으로 해외 유망 의료AI 기업을 인수하는 것으로, 루닛은 이번 인수를 통해 세계 최대 의료시장인 미국에서 매출을 본격적으로 올리는 동시에 미국 내 자체 AI 솔루션 판매망을 확보하게 됐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루닛의 볼파라 인수는 루닛이 미국시장에 진출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자 루닛이 암 조기 진단을 위한 강력한 솔루션 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는 기회"라며 "올해 3분기에 시작된 볼파라 인수 추진 과정에서 암 정복에 대한 양사의 굳은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는 향후 양사가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글로벌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데 큰 밑거름이 될 거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번 볼파라 인수는 앞서 루닛이 지난 8월 창립 10주년을 맞아 기존의 전통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인수합병(M&A) 방식의 '무기적(inorganic)' 성장을 모색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서 대표는 주주서한을 통해서는 "특히 의료 AI 분야에서 스타트업 기업이 다른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며 "국내 상장기업이 글로벌 기업을 인수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 8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양사 경영진이 만나 첫 제안이 이뤄진지 불과 4개월여 만에 신속하게 진행된 인수였다. 서 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저희만 (인수를) 제안한 게 아니라 경쟁적인 과정이었다"며 "3~4개월 내에 마치는 게 힘든 일이었는데 지금까지 왔다"고 설명했다. 이날 간담회장을 직접 찾은 데이비드 메초프레트 볼파라 글로벌 사업개발 부사장도 "많은 회사가 컴퓨터 보조 진단(CAD) 기술을 내놨지만 충분한 제품을 내놓고 연구 실적까지 도출하기에는 투자가 충분치 않았다"며 "반면 루닛은 기술뿐만 아니라 고객을 위한 제품을 내놓고 있고 연구 실력도 뛰어나다는 차이를 갖고 있다"며 다른 인수 희망대상 기업 중에서도 루닛을 택한 이유를 전했다.
다만 이번 인수 계약 후에도 볼파라가 내년 2분기 이내에 주주총회를 열고 주주 75% 동의를 얻고, 관련한 행정 절차까지 진행되야 인수가 최종 마무리된다. 회사 측은 내년 4월께 관련 과정이 모두 종료될 것으로 전망했다. 루닛은 볼파라 최종 인수 이후, 자원 효율화 및 사업개발 집중을 위해 볼파라를 호주시장에서 상장 폐지할 계획이다.
루닛은 이번 볼파라 인수를 위한 자금을 외부 차입 등을 통해 충당할 계획이다. 박현성 루닛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보유 현금, 부채 조달, 유상 증자 등 세 가지 분류를 균형감 있게 조달하는 게 목표"라며 "현재 보유 현금이 있고, 인수금융으로 포커스해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CFO는 최근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2000억원의 자금은 이번 인수자금으로 활용이 어렵다고 전했다. 유증 자금을 인수에 활용하려면 준비 단계에서 이에 대한 부분을 금융감독원에 증빙해야 하지만 유증 당시에는 볼파라 인수가 궤도에 오른 상태가 아니었던 만큼 이 같은 증빙이 어려웠던 한계가 존재했다는 설명이다.
볼파라는 2009년 뉴질랜드 웰링턴에 창립된 유방암 검진 특화 AI 플랫폼 기업이다. 뉴질랜드 기업이지만 현재 매출의 96.5%가 미국 시장에서 나온다. 지난해 매출은 2610만뉴질랜드달러(약 210억원)였고, 2023년도 회계연도가 종료된 지난 3월말 기준 올해 매출은 전년 대비 34% 성장한 3500만뉴질랜드달러(약 282억원)이다. 연평균 63%의 성장(CAGR)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인수는 3종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제품을 보유했지만 아직 본격 진출을 하지 못한 루닛에게는 미국 공략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현재 루닛은 3차원(3D) 유방단층촬영술 AI 영상 분석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 DBT'가 최근 시판 전 허가(510k)를 받으면서 AI 응급질환 자동분류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 CXR', 유방촬영술 AI 영상 분석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 MMG' 등 총 3종의 FDA 승인 제품을 보유했다.
볼파라는 미국 전체 유방촬영술 검진기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00곳 이상 의료기관에서 제품이 쓰이고 있다. 볼파라의 제품을 한 종류 이상 사용하는 의료기관을 집계했을 때 지난해 기준 미국 내 시장점유율 42%를 차지할 정도로 미국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매출 구조가 병원과의 장기 계약을 통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등 연간 구독 형태로 발생하고 있는 만큼 추후 안정적인 매출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볼파라는 회사 설립 후 연구개발(R&D)에 상당한 자금을 투자하면서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다. 루닛 측은 "하지만 손실 규모는 지난해 1640만뉴질랜드달러(약 132억원)에서 올해 980만뉴질랜드달러(약 79억원)로 감소 추세에 있다"며 "볼파라 인수 후 양사의 사업적, 재정적 시너지를 통해 흑자전환 시기를 앞당기는 데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특히 볼파라의 사업 모델이 구독 위주라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상당한 재무 건전성을 갖췄다고 강조했다. 박 CFO는 "볼파라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는 계약구조"라며 "상당 부분의 계약이 5년짜리 계약을 하면 1년차에 모든 현금을 수취하고, (재무제표상으로는) 5년간 1/5로 인식하는 구조로 돼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금흐름을 고려하면 "현금 기준으로는 이미 손익분기점을 달성했다"는 설명이다. 이어 재무제표상으로도 내년께 어느 정도 손익분기점에 다가서고, 볼파라와 루닛의 통합 재무제표상으로도 2025년 흑자전환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인수는 단순한 시장 진출 외에도 루닛과 볼파라가 기존에 보유한 AI 의료기기 제품의 고도화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볼파라는 유방암 검진에 특화된 정밀한 AI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미국 등 서양권 여성 약 1억장의 유방촬영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지속적인 추가 데이터 확보까지 가능하다. 서 대표는 "(볼파라는) 모든 고객 기관으로부터 데이터를 얻는 게 허용된 상황으로 이 를 구축한 회사는 루닛도 그렇고 거의 없다"며 "매년 2000만장의 데이터가 계속 쌓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루닛이 유방암 진단 AI 솔루션 개발을 위해 30만장의 데이터를 학습한 것으로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만큼 볼파라의 데이터를 활용한다면 경쟁 제품과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는 기대다. 루닛은 이 같은 데이터를 루닛 인사이트 MMG 및 루닛 인사이츠 DBT 제품 고도화에 활용하는 한편 초거대 AI에 적용을 통한 자율형(Autonomous) AI 구축에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특히 이 같은 데이터를 고려하면 인수 자금을 지출하더라도 루닛 입장에서는 상당한 비용 절감 효과가 일어난다고도 강조했다. 박 CFO는 볼파라 데이터의 가치에 대해 "데이터 한 장당 3000~4000원이라고 하면 단순 계산하더라도 3000~4000억원"이라며 "관련 부대비용까지 감안해야 하고, 솔직히 1억장의 데이터를 인수 없이는 갖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볼파라가 가진 데이터만으로도 실질적으로 인수 자금을 모두 회수하는 효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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