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홍길동이 슈퍼 히어로처럼 미화된 이유
[이준목 기자]
▲ 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의 한 장면. |
ⓒ tvN STORY |
홍길동은 고전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의 주인공이자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견본용 이름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소설 내용은 알지 못 해도 홍길동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할 만큼 가장 유명한 이름 중 하나다.
그런데 소설 속 가상인물로 알려진 홍길동이 사실은 실존 인물이었다는 것, 심지어 소설에서는 백성을 구원하는 의적으로 활약했던 그가 현실에서는 악당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12월 13일 방송된 tvN 스토리 역사스토리텔링 <벌거벗은 한국사> 86회에서는 '소설밖 홍길동의 충격 실체, 도적 홍길동은 어떻게 국민 영웅으로 탈바꿈했나' 편을 통하여 홍길동 신화의 실체와 숨겨진 메시지에 대하여 조명했다.
오늘날 대한민국 관공서 등에서 흔히 쓰이는 각종 민원 서류의 견본용 문서양식에는 십중팔구 '홍길동'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왜 한국인의 그 수많은 이름들 중 하필 홍길동일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면서도 호감도가 높아서 설사 동명이인이 있더라도 (이름 도용 등으로) 항의할 확률이 가장 적은 인물이 바로 홍길동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홍길동하면 서자라는 신분의 한계를 딛고 백성을 구원한 '의적'의 이미지로 유명하며, 이른바 '한국형 슈퍼히어로'의 원조이자 간판으로 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 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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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익숙한 이러한 '의적 홍길동'의 이미지는 원작 고전소설을 시작으로 대중문화를 통하여 구축됐다.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인물은 허균(1569-1618)으로 조선 중기의 문장가이자 사상가다. 현재 허균이 집필한 <홍길동전>의 원본은 아쉽게도 전해지지 않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이본(異本)만 무려 90여 종에 달한다.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원작 소설이 높은 인기를 끌면서 시대를 거쳐가며 많은 이들의 각색이 추가된 내용들이다.
원작 소설 <홍길동전>의 창작 연도는 알려지지 않지만, 학자들은 허균의 생전인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며, 작중 시대 배경은 조선 초기인 세종(1418-1450) 시절부터 시작된다. 주인공의 이름인 길동(吉童)의 의미는 말 그대로 '길한 아이'라는 뜻으로, 현대적으로 풀이하면 굿보이(Good boy)라고 할 수 있다.
<홍길동전>은 권선징악, 입신양명, 역경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주인공 등, 고전소설의 전형적인 구성을 지니고 있다. 소설속에서 홍길동은 양반인 아버지 홍문(홍판서)과 하층민 출신의 첩인 춘섬 사이에서 얼자(서자)로 태어났다. 유교적 질서하의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에 따라 어머니가 노비 소생의 자녀는 모계(母系)의 신분을 따라야만 했다. 어릴적 관상가로부터 '왕이 될 운명'이라는 예언까지 들었던 홍길동은 정작 현실에서는 호부호형(呼父呼兄)도 출세도 허락되지 않는 시대의 모순에 절망한다.
홍길동은 결국 집을 떠나 혼자 독립하기로 결정한다. 홍판서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허락을 받는 장면은 소설의 대표적인 명장면중 하나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만화나 드라마에서 재창작된 작품들의 영향으로 홍길동이 호부호형을 하지 못한 데 실망하여 부득이하게 집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초기 원작에서는 펼치지 못한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적극적인 야심에 더 가까웠다.
세상 밖으로 나온 홍길동은 학문과 무술은 물론, 도술에도 통달하여 초인적인 능력을 갖추게 된다. 홍길동은 세상을 등진 도적떼의 마을을 접수하여 그곳의 우두머리가 된다. 정상적으로 입신양명이 불가능했던 조선 사회에서 도적이 되어서라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했던 '다크 히어로'로서의 행보는 중국 소설 <수호전>의 내용과 흡사하다.
홍길동은 도적단을 백성을 구제하는 의적단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하며 '가난한 사람을 돕는 무리'라는 의미를 지닌 활빈당(活貧黨)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홍길동의 무리들은 탐관오리와 벼슬아치의 곳간을 털어 백성들에게 나눠줬고, 약탈한 곳에는 '활빈당 장수 홍길동'이라며 항상 과시하듯 자신의 이름을 인증하는 글을 방명록처럼 남기고 떠났다. 백성들은 홍길동과 활빈당을 영웅이자 은인으로 칭송하며 열광했다.
홍길동과 활빈당의 명성이 높아지자 왕은 홍길동을 체포해오라는 어명을 내린다. 홍길동이 홍판서의 얼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홍판서는 의금부에 구금된다. 당시 이조판서였던 홍길동의 이복형 홍길현은 동생을 잡아오라는 엄명을 받게 된다. 궁여지책으로 홍길현은 홍판서가 아프다는 소식을 방을 붙여서 알리고, 이를 본 홍길동은 눈물을 흘리며 자수한다.
이는 얼핏보면 홍길동의 지극한 효심을 부각하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 사회제도에 저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효와 충'이라는 사회 윤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홍길동의 이중적 모순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홍길동은 몇 차례나 자수했었음에도 그때마다 분신술과 축지법 등 놀라운 초능력을 발휘하여 조정과 관군을 농락하며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는 홍길동이 얼자라는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절대권력인 왕조차도 어쩌지 못할 만큼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과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세상에 증명하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 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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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홍길동은 자수의 조건으로 병조판서(오늘날의 국방부 장관)라는, 얼자 출신에게는 절대 허용되지 않던 고위관직을 제수해줄 것을 왕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이는 신분의 한계를 넘어 능력에 맞는 관직을 달라는 것으로 당시 조선시대의 관점에서는 엄청난 파격이었다.
홍길동이 정승-판서 등 수많은 고위 관직 중에서 굳이 병조판서를 요구한 배경도 주목할 만하다. 원작 소설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조선 중기로 양난(임진왜란-병자호란)을 거치며 이순신같이 국난을 극복해낸 무인들이 민중들에게 더 각광받던 시대였다. 또한 실제로 관직에 임용된 얼자들에게도 문과보다는 무과 벼슬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무예와 지략을 겸비한 홍길동이 병조판서직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얼자도 능력으로 세상에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왕도 결국 힘으로는 홍길동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제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사실상의 항복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홍길동은 정작 본인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고 나자, 왕에게 감사의 하직인사를 남기고 조선을 홀연히 떠나버린다. 그가 이끌던 삼천 명의 활빈당 무리도 함께 사라졌다. 차별받던 얼자의 한은 풀었지만, 어차피 조선에서는 병조판서 이상의 지위에 오를 수 없었던 홍길동은 자신의 능력을 더욱 마음껏 펼칠 수 있을 만한 더 넓은 세상을 찾아나선 것. 홍길동의 무리는 제도라는 한 섬에 정착했다.
6년 뒤 아버지 홍판서가 세상을 떠나자 잠시 조선으로 돌아온 홍길동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어엿한 집안의 둘째 아들로 인정받고 제사까지 모시게 됐다. 당시 조선에서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권리는 장남에게 승계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는 홍길동이 적장자에 버금가는 위상에 올랐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다.
이후 홍길동은 이웃나라인 율도국을 정복하고 스스로 왕의 자리까지 올랐다. 혈통이 아닌 자가 왕위 계승을 주장한 것은 당대로서는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홍길동은 그토록 꿈꾸던 얼자의 차별도, 백성을 핍박하는 탐관오리도 없는 유토피아를 자신의 힘으로 건설해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수명이 다하자 신선이 되어 하늘나라로 승천하는 것으로 화려하게 이야기의 마무리를 장식했다.
홍길동은 자신이 꿈꾸던 유토피아를 왜 나고 자란 고향인 조선에서 이루려고 시도하지 않았을까. 극중에서 보여준 홍길동의 능력을 감안할 때 조선에서 왕위에 오르는 것도 마음만 먹었다면 불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이 지어진 시기는 조선시대였고 아무리 소설이라도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건설한다는 발상은 명백한 반역이었다. 결국 작가도 홍길동도, 조선이 아닌 가상의 국가인 율도국을 통하여 이상을 이루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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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토록 차별없는 세상을 부르짖던 홍길동이 병조판서나 왕위같은 자리를 탐낸 것을 두고, 결국 그도 처음부터 대의보다는 개인의 '입신양명'만을 추구한 이기적이고 모순된 인물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현대인의 관점에서만 해석한 것이다.
소설이 처음 집필될 당시 조선을 비롯한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신분계급에 대한 차별은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여졌고 민주주의나 평등에 대한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기존의 신분질서를 무시하고 오직 능력만으로 출세하고 심지어 왕위까지 오를 수 있음을 보여준 <홍길동전>의 내용은, 이미 당시 사회 통념상으로는 충분히 급진적인 사상에 가까웠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국을 떠나서 타지에서 이상국을 건설해야만 했던 홍길동을 통하여 '영웅 한 명의 힘만으로는 세상은 바꿀 수 없다'는 한계를 보여준 것은, 오히려 현대 대중문화 속에서 그려지는 슈퍼히어로들의 고뇌와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실록에는 조선 시대에 소설의 모티브가 된 홍길동이라는 이름의 도적이 실존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다만 소설속의 미화된 의적과는 거리가 먼 악명 높은 인물이었다. 실제 홍길동은 연산군 시대에 활동했으며 1500년(연산군 6년)에는 "강도 홍길동을 잡았다 하니 기쁨을 견딜 수 없다. 백성을 위해 해독을 제거하는 일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후 13년 뒤인 1513년 <중종실록>에는 "충청도는 홍길동이 도적질한 뒤로 세를 거두기가 어려워졌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홍길동은 조정의 고위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기록도 존재하며, 체포된 지 한참 후에도 한 지역의 경제를 파괴하여 후유증이 오래 지속되었을 정도로 악명을 떨쳤다. 이처럼 실제의 홍길동은 백성의 고통에는 관심없이 그저 자신의 이익만 쫓는 도적이자 전형적인 악당에 불과했다.
그런데 작가는 왜 이러한 홍길동을 소설에서 영웅처럼 미화했고, 대중은 왜 그런 홍길동에게 열광했을까. 이는 원작자로 알려진 허균의 삶을 통하여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다.
허균은 당대 조선 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사회 비판적이며 자유롭고 급진적 사상의 소유자였다. 그는 사대부 출신임에도 서얼 출신의 스승을 두는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허물없이 교류했다. 학자들은 허균이 <홍길동전>을 통하여 유능한 인재들이 신분 때문에 차별을 받는 당시 조선의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고발하려 한 게 아니었을까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홍길동전>을 읽은 민중들은 신분을 초월하여 불가능한 꿈을 이뤄내는 홍길동의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자신을 가로막는 세상의 벽을 부수고 스스로 꿈을 쟁취해낸 홍길동의 캐릭터는, 오랜 세월 대중문화를 통하여 다양한 재해석을 거듭하면서 오늘날까지도 시대를 초월한 한국의 '국민영웅'으로 거듭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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