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프로레슬러 역도산, 분단이 낳은 비운의 횡사 60주기

전정희 2023. 12. 1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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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긴 레슬러', 일본인의 영웅...명성 포기하고 '한국인' 밝혀
'수구초심' 고향 함경도 가족 접촉 후 의문의 죽음...日 우익, 美 CIA개입설

프로레슬러 역도산. 지금은 중년 세대에게도 가물가물한 이름이지만 1950~60년대 일본에서는 천황 다음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경찰에 붙잡힌 김일이 구치소에서 자신을 제자로 받아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겉봉에 ‘東京(도쿄) 力道山(역도산)’이라고만 적어 보냈는데, 역도산이 받아보고 정계에 부탁해 그날로 풀려나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전성기 역도산. 링 위에서 승리를 거둔 뒤 챔피언 벨트를 차고 환호에 답하고 있다. 

역도산의 본명은 김신락. 1924년 함경남도 홍원에서 태어났다. 그의 건장한 체격과 빼어난 씨름 솜씨를 눈여겨본 일본 경찰의 권유로 1940년 일본으로 건너가 스모 선수가 됐다. 

타고난 승부 근성과 지독한 연습으로 승승장구해 3등급 세키와케까지 올라갔다가 순수 혈통의 일본인이 아니면 최고등급인 요코즈나가 될 수 없다는 현실에 절망해 1950년 스모계를 떠났다.

공사판을 전전하던 그는 술집에서 우연히 미국인 프로레슬러를 만나 입문을 권유받았다. 1951년 미국인 보비 브란스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른 뒤 1952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기술을 익힐 기간이 충분치 않았는데도 1년 1개월 동안 260여 회의 시합을 치르며 5번밖에 지지 않는 놀라운 전적을 남겼다.   

그의 특기는 스모의 손바닥치기와 가라테의 손날치기를 결합한 가라테촙(당수치기)이었다. 미국 레슬러들보다 체구가 작아 보이는 단점을 커버하려고 입은 검은 타이즈는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미국에서 실전 경험을 쌓고 전미프로레슬링협회(NWA) 프로모터 자격까지 얻은 그는 1953년 3월 귀국해 그해 7월 일본프로레슬링협회를 결성했다.

월드 태그팀 챔피언 샤프 형제를 초청해 1954년 2월 19일 일본 최초의 국제 프로레슬링 경기를 열었다. 이들을 상대할 일본팀은 역도산과 ‘유도의 귀신’이라고 불리던 기무라 마사히코였다.  

당시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뒤 미국 콤플렉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국토 넓고 자원 풍부한 미국을 이길 수 없고, 덩치 크고 힘센 미국인을 당해낼 수 없다는 패배감이 짓눌렀다.
스모 선수 시절의 역도산

샤프 형제도 키가 2m에 가까운 거구였다. 예상대로 1라운드에서는 기무라가 형 샤프에게 맥도 못추고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2라운드 들어 반전이 일어났다. 역도산이 가라테촙으로 동생 샤프를 거꾸러뜨리자 경기장 안의 관중은 일제히 일어나서 환호성을 질렀다.    

때마침 일본 민영 니혼TV가 6개월 전 개국해 일본 열도는 역도산 열풍에 휩싸였다. 역도산 경기를 보려고 앞다퉈 TV 수상기를 구입했고, 집에 TV가 없는 사람은 전파상 앞에 몰려들었다. 이날 도쿄 신바시역에 설치된 대형 TV에는 무려 2만여 명이 운집했다.
일본 프로레슬링 팬들이 도쿄 신바시역에 설치된 TV로 역도산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1958년에는 자신에게 여러 차례 쓴잔을 안긴 세계 최강 루테즈를 기어코 꺾고 NWA 인터내셔널 챔피언을 차지했다. 1962년에는 유혈이 낭자한 역도산의 경기를 TV로 보던 시청자 두 명이 심장마비로 숨지는 일까지 있었다. 학교나 거리에서는 역도산의 가라테촙을 흉내 내는 아이가 넘쳐났다.   

역도산은 외모와 실력뿐 아니라 쇼맨십에 사업 수완까지 갖춰 부와 인기와 명예를 누렸다. 김일, 자이언트 바바, 안토니오 이노키 등 제자들을 스타로 키워내는가 하면 자신의 이름을 딴 전용 경기장 겸 레포츠빌딩 리키(力)스포츠팰리스를 세웠다.    

그러던 1963년 1월, 일본인들은 요미우리신문에 실린 ‘역도산, 모국 방문’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역도산이 거구의 미국 선수에게 주특기 가라테촙을 날리려 하고 있다. 

대리만족감을 안겨주고 패배감에서 벗어나게 해준 영웅이 일본인이 아니라니. 그것도 자신들이 그토록 멸시해오던 식민지 조선인이라니. 독자들은 눈앞에 닥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역도산과 친분이 깊은 사람 가운데 일부는 그가 한반도 출신임을 알고 있었다. 프로레슬링계와 언론계에서도 극소수만 공유하는 비밀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입 밖에 내지 않았고, 주변에서도 진위를 캐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역도산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다. 미국인을 이긴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일본인이어야만 했다.

역도산 자신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측근은 물론 아들에게조차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한국인 제자 김일과 둘이 있을 때도 일본어로만 얘기했다. 세 번째 부인 다나카 게이코에게도 약혼할 즈음에서야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한국 방문을 결심한 것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인기가 급락하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모국에 어떤 역할을 하려고 결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북한에 가족을 둔 역도산은 1961년 11월 니가타항에 정박한 만경봉호 선상에서 딸 김영숙과 작은형 김공락을 만났다. 이듬해 김일성에게 벤츠 승용차를 선물하기도 했다. 

신문에 난 것처럼 1963년 1월 한국을 방문해서는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난 뒤 판문점을 찾아 북녘을 향해 “형님!”이라고 외쳤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일본과 북한도 국교가 없었으나 1959년부터 재일동포 북송사업이 이뤄져 배가 니가타와 원산을 오가고 있었다.

측근들은 역도산이 남북한과 일본 사이에 가교 구실을 하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한일 수교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 훗날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노키는 스승의 유업을 이루려고 북한을 35차례나 방문하며 북일 수교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역도산은 1963년 12월 8일 도쿄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25살 야쿠자(일본 폭력조직) 청년과 시비가 붙어 배에 칼을 맞았다. 치명상은 아니어서 봉합 수술을 받고 회복을 기다렸으나 갑작스레 상태가 악화해 재수술을 받다가 절명했다.

역도산이 39살의 나이에 어이없는 죽음을 맞자 배경을 둘러싸고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남북통일의 메신저로 나서려 하자 미국 CIA가 개입했다, 한반도 출신임을 밝히는 것이 두려워 일본 권력층이 살인을 교사했다, 북한으로 귀환하는 것을 막으려고 일본 우익이 음모를 꾸몄다, 정계 진출을 방해하기 위해 누군가 손을 썼다. 북한에 거액을 지원하려 하자 측근 사이에 재산 다툼이 불거졌다, 야쿠자의 미움을 받았다 등이 지금껏 회자된다.
한국에 프로레슬링 붐을 일으킨 김일이 스승 역도산의 사진 앞에서 챔피언 벨트를 선보이고 있다.(대한체육회 제공)

직접적인 사인을 두고도 누군가 배에 찔린 환자에게 치명적인 사이다를 마시게 했다거나 몰래 산소호흡기를 제거해 호흡장애를 일으켰다는 소문도 있고, 마취제 과다투입에 따른 의료사고라는 견해도 있다. 병원은 복막염 발병에 따른 장폐색이 사인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7일 일본 도쿄의 고라쿠엔홀에서는 역도산 60주기를 맞아 추모 레슬링대회가 펼쳐졌다. 기일인 15일에는 역도산의 무덤과 동상이 있는 도쿄 이케가미혼몬지(池上本門寺)에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듯하다. 제자 김일도 17년 전 눈을 감았고, 이제 팬들은 프로레슬링 대신 이종격투기에 열광하고 있다. 

그래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0년 되는 날엔 전후(戰後) 일본 최고 영웅이자 스포츠 톱스타가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재일 한국인들의 수난사를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희용
연합뉴스에서 대중문화팀장, 엔터테인먼트부장, 미디어전략팀장, 미디어과학부장, 재외동포부장, 한민족뉴스부장, 한민족센터 부본부장 등을 역임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 경영이사를 지냈다. 저서로는 ‘세계시민교과서’ 등이 있다.

hoprav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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