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난 사람]"1등 생각 없구나 소리까지"…'정도경영' 택한 고지식한 내향인 대표

서믿음 2023. 12. 1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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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호 전 (주)LG 대표이사 사장 인터뷰
1986년 사원 2009년 사장
직장인으로 최고 자리 올라
'처세'보다 '실력'에 올인
같은 성향 젊은 친구들과
편법 안 하는 삶 고민하고파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수료했다. 1986년 LG그룹에 입사해 해외영업, 전략기획, 경영혁신 업무를 담당했다. 그룹 내 대표적 전략통으로 최연소,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입사 13년 만인 1999년 40세의 나이로 상무를 달았고, 2001년 LG전자 부사장, 2009년 ㈜LG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직장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 자리에 올랐지만, 역설적으로 ‘사회생활 잘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내향인이자 개인주의자로 '처세'보다 '실력'에 올인했다. 노력을 아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커, 결국은 자신만의 방식대로 승부했고, 다행히 실력이 처세의 부족함을 메워 성과를 냈다. 물론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다. 나다움과 충돌할 때마다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쓰러졌기에 깨달음의 순간마다 자신을 조율했다. 그 결과 LG그룹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단 평가를 받고 2020년 자연인 조준호로 돌아왔다. 일터에서 보낸 40여년의 세월을 매듭지은 그는 이제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기질을 바꾸려 무리하게 애쓰지 말고 나다움을 인정하고 자신만의 일의 태도를 만드세요.” 조준호 전 ㈜LG 대표이사 사장에게 그런 깨달음의 과정에 관해 질문했다.

조준호 전 ㈜LG 대표이사 사장이 로봇 코딩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조준호 저자]

- 2020년 40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아침에 운동을 갔다가 오전 10시쯤 작업실로 출근한다. 글도 쓰고, 사람도 만나는데, 주로 취미로 로봇을 공부하며 시간을 보낸다. 파이썬과 C++ 등의 코딩언어를 배워 딥러닝을 강화했더니, 이제는 돌아다니면서 공간 지도를 스캔하고, 절 인식하고 쫓아와서 명령을 대기하는 정도는 한다. 콜라캔을 가져오라고 하면 짚어오기도 하는데, 사실 열 번 하면 여섯 번 성공하고 네 번 실패한다. 코딩을 하면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입문 단계에서는 여기저기 도움 주는 곳이 많은데, 조금만 단계가 올라가도 도움받기가 어렵다. 그런 점에서 분야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덕후나 마니아들이 많아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때 사람을 모아 훈련시키면 늦는다. 저변에 많이 깔려 있어야 한다.

- 과거 신사업을 할 때 삼성은 인재를 외부 영입하는 반면 LG는 내부 인재를 키운다는 말이 있었는데...

▲어느 정도는 맞는 듯하다.(웃음) LG는 한번 등용하면 오래 같이 간다는 인식이 있다.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빠르게 정리하고 다시 사람을 찾고 그러지 않는다. 삼성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스카웃 비중이 많이 늘었다.

- 대기업 대표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정무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른 사법리스크도 존재한다. 위기는 없었나.

▲LG그룹 콘트롤타워를 맡으면서 생각한 사명 중 하나가 ‘정도경영’이다. 기업경영이란 경계선에 선 것과 같다. 유혹과 압박도 많고, 권력자에게 밉보였을 때 걸리기만 하면 죽는다는 위협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장 재직 당시 접대비나 홍보비, 교섭비용 등을 줄였는데, 여기에는 구본무 회장님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 오죽하면 ‘1등할 생각이 없구나’라는 소리도 많이 들려왔다. 전임자분들 얘기 들어보면 선거 때면 회장님이 해외에 나가계셔야 했다고 하는데 저 때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뭔가 편법을 하도록 암시를 받은 기억도 없다. 내야 할 세금은 다 내겠다는 생각이었으니 마음은 편했다. 회장님께 주말에 불려 가 본 적도 없다.

-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이었나.

▲내향적이고 개인주의적 성향이어서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제가 제 성향에 아주 만족했던 건 아니다. 저도 즐겁게 술자리하고 골프도 치고, 잘 어울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됐다. 입사 당시 회사 내에서 가장 술 잘 먹는 부장이 제게 술을 가르치겠다며 1년 시도한 끝에 포기했다. 결국 술자리 끝나면 계산하는 총무 역할을 맡기더라.(웃음) ‘실력’으로 만회하자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했지만, 많이 힘들었다. 일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노력했고, 주변에서도 인간관계에 크게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에너지 소모가 커서 주변에 양해를 자주 구했다. “미안한데 저녁에는 혼자 좀 있을게.”

- 일 잘하는 많은 인재를 보아왔을 텐데. 어떤 공통점이 있던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책임감이다. 일 그리고 조직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임무를 완수해 내는 것. 둘째는 향상심이다. 뭐든지 잘해보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작은 일을 줘도 몇 개월 지나고 보면 ‘언제 저렇게 컸지’라는 생각이 든다. 성취동기보다 더 중요하다. 셋째는 인성이다. 다른 사람이 안 볼 때도 변함이 없어야 한다. 다 되는 사람이 드물지만 기준에 맡게 쓰려고 노력했다.

- 일 잘하는 사람 중에서도 소수가 임원이 될텐데, 그들만의 공통점이 있을까.

▲임원이 되는 경우를 극단화하면 두 가지다. 어떻게든 성과를 내거나, 윗사람한테 잘하거나...회사는 믿고 맡길 사람을 찾는데, 사실 충성심이란 것도 위험하다. ‘회사에 뼈를 묻겠다’고 안 했으면 좋겠다. 자기 맡은 일을 잘 해내는 사람들이 많아 나왔으면 좋겠다.

- 과거에 요구되는 인재상과 현재의 인재상에 차이가 있을까.

▲과거 LG에서는 우리 회사에서만 잘 통용되는 인재를 만들자라는 게 있었다. 우리 문화에 특화된 인재를 만들면 최선을 다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계에 도달했다. 다양한 백그라운드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잘 활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LG 문화는 괜찮은 편이다. 기업 문화가 강해서 LG맨이 아니면 튕겨내고 그러지 않는다.

-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다고 해도 많은 조직이 인재난에 시달린다, 왜 그럴까.

▲승진시켜서 일을 맡기려고 할 때 무의식적으로 이미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게 된다. 그 사람들은 이미 몇 년째 경험을 쌓은 건데, 그런 사람들과 비교하니 어려 보일 수밖에 없다. 비교하면 안 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때로는 퇴임시키고 변화를 줘야 하는데, 지금 사람들이 괜찮아 보여서 망설이는 경우도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인사권자가 불안해서 그럴 수 있다.

- LG는 겸손 마케팅으로 유명하다. 오히려 사용자가 앞장서서 홍보에 나서기도 한다. 그것도 기업 문화의 영향일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웃음) LG에는 실체보다 말이 앞서는 걸 지양하는 내부 문화가 있다. 실체를 만들고 연구하는 걸 높게 평가받는다. 잘 팔아서 돈 많이 벌면 칭찬받겠지만, 오히려 괜찮은 걸 만들어 내는 걸 인정해준다. 그런 사람들 위주로 경영진이 구성되다 보니 아무래도 영향이 있지 않나 싶다.

- 젊은 시절 성과를 내는 본인의 동기는 무엇이었나.

▲규율을 강하게 세우고 자신을 몰아붙였다. 아내는 그걸 집착이라고 했다. 일주일에 몇 번은 현장에 나가야 하고, 뭘 해야 하고 이런 룰을 빡빡하게 세우고 지켰다. 그때는 약한 모습 보이는 게 그렇게 싫었다. 뭐든 아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했고, 알기 위해 노력했다. 40대 중반까지 그렇게 살았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고 숨 막혀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긴 하다. 술도 안 마시지, 뭐 물어보면 두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지... 그땐 그게 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 G5 등 휴대폰 사업에도 깊이 관여했는데, LG의 핸드폰 사업 철수는 아쉽게 느껴질 듯도 하다.

▲안타깝다. 2000년대 초반, 국내 휴대폰 사업을 해외로 확장할 목적으로 TF를 꾸렸다. 나름 보람 있는 결과가 나와 미국에서 자리를 잘 잡았다. 하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빨리 들어갔어야 했는데 너무 쟀다. 제품은 시장에서 온갖 상황을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노하우를 쌓아야 하는데, 경쟁사가 3~4년 앞서는 동안 LG는 실험실에서 연구만 했다. 당시 스마트폰이 느리고 완성도가 낮아 아직 충분한 인프라가 조성되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경쟁사가 욕 먹고, 배상해가면서 노하우를 쌓아 제대로 된 제품을 내놓을 시점이 되어서야 LG는 시장에 들어갔다. 이런 저런 시도를 했지만, 이미 시장 90%를 차지한 애플과 삼성을 앞지를 수 없었다. G5에 큰 공을 들였는데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유지하는 게 큰 의미가 없어졌다.

- 쓰라린 실패의 경험이었겠다.

▲선점효과를 무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대신 LG는 전가차에서 남들보다 3~4년 빨랐다. 까다롭다는 GM 검증을 통과해서 초기 유럽 물량을 다 잡아왔다. 뒤늦게 뛰어든 경쟁사들이 쉽지 않았을 거다. 실험실에서는 다 만들 수 있겠지만, 막상 상황을 넣어보면 어려우니까. 그런 이면에 스마트폰(실패)의 암묵적인 공감대가 있었다고 본다.

- 줄곧 LG에만 있다가 은퇴했다. 독립이나 이직을 생각한 적은 없었나.

▲너무 여러 분야를 맡다 보니 젊었을 때는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치열한 경쟁에서 방어 임무 맡았다가, 결국 실패하면 사업을 잘 매각하는 임무를 맡고, 이후에는 망한 사업을 살리는 일도 맡으면서 다른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 일 스트레스는 일로 해소해야 한다는 대목도 흥미롭다. 다른 것으로는 스트레스를 망각할 뿐이라고 했다.

▲일 스트레스는 일로 풀어야 한다. 제가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은 일단 바닥이 어디인지를 파악하는 거다. 제 표현대로는 ‘낙동강 전선이 어디인지 아는 것’이다. 상황이 나빠질 때 최악을 상정한다. 불안하고, 기분이 가라앉는 상황이 며칠을 지속해도 일단 버틴다. 그러다 낙동강에 도달하면 다 내려놓고 치고 올라간다. 그럼 뭐라 해도 안 들리던 주변 소리도 들리기 시작한다. 이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40대에 막 상무가 됐을 때, 검사를 했더니 공격성이 상위 3%라고 하더라.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성이 아니라 자극이 왔을 때 움츠리기보다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유형이라고 하더라.

- 은퇴 이후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나.

▲나처럼 고지식한 어린 친구들이 사회생활을 해나갈 때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에 잘 대처하도록 돕고 싶다. 몸담은 교회에서도 내년부터 대학부를 맡을 것 같다. 성실하게 일하고 성과를 낸다면 고지식한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분명히 주변에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있다. 편법을 안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이런 것도 같이 고민하고 싶다.(웃음)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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