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트리의 비극... 지금 한라산에 가보세요 [임성희의 환경리포트]

임성희 2023. 12. 1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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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희의 환경리포트] 기후 위기 현장을 기록하는 사람들① 집단 고사하고 있는 구상나무

[임성희 기자]

 한라산 구상나무의 떼죽음
ⓒ 녹색연합
 
크리스마스트리가 죽어간다. 연말이면 수려한 몸에 빛을 밝히고 작은 종과 방울을 걸고, 선물꾸러미로 장식을 하며, 소망과 마음을 보듬어주는 나무. 매섭게 바람이 불어도 온기 있는 연말로 만들어주는 나무. 우리를 잠시 동화 속으로 밀어 넣어주는 나무. 그러나 이 나무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 멸종위기 적색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우리에게 크리스마스트리로 친숙한 이 나무의 이름은 구상나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자생한다는 한국 특산종이다. 영국 식물학자 어니스트 헨리 윌슨이 한라산에서 구상나무를 채집하고 1920년 하버드 대학교 식물연구소에 '한국의 제주도 한라산에서 서식하는 한국특산종'으로 보고했다. 정식 학명 아비에스 코리아나(Abies Koreana)를 부여받았고 이후 품종 개량을 거쳐 전 세계적으로 연말을 장식하는 나무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이 구상나무가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국제멸종위기종 목록을 관리하고 1994년부터 적색목록을 발표하고 있는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은 구상나무를 위기근접종(NT)으로 지정했다가 2010년 멸종위기종(EN)으로 위험등급을 두 단계나 상향시켰다. 위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구상나무 적색목록 등급.? 출처 : IUCN Red List of Threatened Specieshttps://www.iucnredlist.org/species/31244/9618913
ⓒ IUCN
 
국내에서 구상나무는 아고산 생태계에 주로 분포하며,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에 넓은 면적으로 군락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이들 국립공원에서 우리는 이미 살을 발라낸 가시처럼 하얀 뼈대만 남은 채 죽어있는 구상나무를 어렵지 않게 마주한다. 집단 고사 현장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반도 육지에서 기후위기로 사라지는 첫 번째 생물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제 크리스마스트리는 플라스틱 트리가 아니고선 볼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고산침엽수 고사 원인은 다름 아닌 기후변화

한라산에서 백록담 정상으로 오르는 해발 1700~1800m 일대의 구상나무 고사는 처참할 지경이다.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혀 앙상한 뼈만 남은 구상나무는 고사목 전시장 그 이상이다. '유골이 나뒹구는 공동묘지'라는 표현이 절로 나오는 이유다. 지리산 구상나무의 멸종도 가시화되긴 마찬가지다.

1500m에서 1900m 아고산대에 집단서식해 온 고산침엽수들이 죽어가는 이유는 다름 아닌 서식환경, 기후환경의 변화다. 구상나무는 1월과 2월에 내린 눈으로 4월 말에서 5월 초순까지 수분을 공급받는데, 겨울철 적설량이 부족해 봄철 수분 공급 불량에 의한 스트레스와 동결 건조에 시달리게 된다. 건조한 겨울과 봄, 적설량 부족으로 마름병을 앓는 것인데, 눈이 내린다고 해도 증발산 속도가 빨라서 수분 스트레스와 건조에 시달린다. 나아가 여름철이면 폭염과 강풍으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가해진다.

침엽수 밀집지가 집단 고사하면 더욱더 빈번해진 장마철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 역시 우려된다. 악재가 악재를 만나는 이유는 필연이며, 기후위기와 고산침엽수 고사, 생물다양성 훼손, 산사태 모든 것이 다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국립공원공단이 설악산, 덕유산, 지리산 국립공원을 대상으로 주요 아고산대 상록침엽수(구상나무, 분비나무) 고사 현황(2021년)을 조사한 내용을 보면, 지리산국립공원은 거의 모든 조사구에서 구상나무 고사목이 매년 발생하는데, 특히 2014년과 2015년에 발생한 고사목 비율이 높아 평균 19%에 이르는 고사율을 보이고 있었다.  

녹색연합의 지리산 구상나무 집단 고사 모니터링 결과(2020년부터 약 2년 6개월간 진행)에서도 정상봉인 천왕봉, 중봉, 하봉 등의 집단 서식지 중 최고 90%까지 고사가 나타난 곳도 있었다. 기후위기로 인한 생물다양성 위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생물다양성 유지 및 보전 정책에 기후위기 취약종에 대한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멸종위기종 관리에서 기후위기 대책이 함께 수반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리산 중봉 서남면의 (대표적 고사 극심 지역) 집단 고사 현장
ⓒ 녹색연합
 
 지리산 중봉 서남면 구상나무 집단 고사 현장
ⓒ 녹색연합
 
시민들도 목도했고, 기록하고 있다. 녹색연합은 기후위기로 인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한국의 침엽수(구상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주목, 잣나무, 소나무, 전나무) 고사 실태를 사진으로 기록해서 업로드 하는 모니터링 활동에 참여할 시민들을 모집해 왔다. 아픈 현장을 방문한 시민들이 증인이 되어 기록을 하는 것이다.

시민들은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소백산, 설악산 등에서 '기후위기 시민과학 지킴이'가 되어 백두대간의 산림보호구역과 국립공원에서 기후위기의 참혹한 실상을 직접 보고 느끼는 모니터링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온적인 태도, 안일한 환경부

국제적으로도 빨간불이 켜진 생물종이고, 특히 국내에서도 점차 심해지고 있는 구상나무 집단 고사 현상을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고 보전대책을 수립,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환경부는 인위적인 훼손에 의한 멸종위기종만 리스트에 포함시키는 것이 원칙이라며 '기후위기로 인한 생물종 쇠퇴나 고사'를 멸종위기종 등재의 기준과 원칙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결국 지난해 말 환경부는 구상나무를 멸종위기종이 아닌 관찰종으로만 지정했다. 멸종위기종은 5년 단위로 지정 목록을 바꾸고 있고, 목록이 개정되어 다시 등재되는 시점은 2027년이다. 그사이 빠르게 늘어가고 있는 집단고사를 제어할 수 있을지, 이미 집단 자생지가 집단 고사지로 변모한 이후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정부가 주춤거려서는 곤란하다. 시간이 없다.

덧붙이는 글 | 녹색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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