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함, 경외감... 80년 음악, 피아노와 함께한 삶
[박순영 기자]
▲ 포스터에 '80'주년이 강조되어 있고, 리사이틀이 아니라 '장혜원 음악회'이다. |
ⓒ 박순영 |
지난 12월 10일 예술의 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피아노와의 삶 80주년 장혜원 음악회'는 관객으로 온 예술계 인사들의 면면에서도 느껴지는 바, 참으로 성대하고 고귀한 음악회였다.
연주회 시작 전부터, 공연명의 '80주년'이라는 타이틀 앞에서는 그저 경외감 외에 그 어떤 설명도 필요치 않았다.
장혜원은 1939년생으로 5세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 이화여대 피아노과를 졸업, 독일 프랑크푸르트 최초의 한국인 유학생이고, 이화여대 음대학장, 초대 음악연구소장을 지냈다. 세계적인 국제콩쿠르의 심사위원도 50여 회 맡아왔으며, 50대가 되어서는 개인플레이가 강한 피아노 연주자들을 모아 단체로 한국피아노학회를 설립하고, 이원문화원(천안)을 만들어 해외캠프 없이 국내에서도 훌륭한 교수진과 학생이 만날 수 있도록 배움의 장을 이끌어왔다.
▲ 피아니스트 장혜원 교수가 연주 후 인사중이다. |
ⓒ 박순영 |
연주회장을 울리는 명징한 음색은 다음 순서들에서는 더욱 휘황찬란해졌다. 세 번째 G. Pierne의 15 Pieces Op.3의 다섯 곡을 연주했는데, 그녀가 세계적인 음반회사인 Naxos에서도 이 곡의 음반을 냈었기 때문에 더욱 웅장함과 정확성이 드러났다.
물레 잣는 것 같은 서정적인 'Romance Sans Paroles', 웅장함과 격정적인 선율이 86세 어른으로부터 더없이 황홀하게 울려퍼져서 놀라웠던 'A l'Eglise', 왈츠의 우아함과 수줍움이 감미로웠던 'Valse', 이어진 'Feuillet d'Album'에서 이야기는 격정적으로 꽃피워지고, 'Tarantelle'까지 옛이야기는 부드러운 선율과 명징한 화음으로 우리에게 정답게 인사했다.
전반부 마지막 G. Pierne의 Etude de Concert는 앞 Pierne에 이어 황홀함의 극치였다. 마찬가지로 Naxos음반으로 장혜원이 녹음을 냈던 곡으로, 빠른 아르페지오 상하행과 역동적인 피아노의 기교로 클라이막스에서는 양손 빠른 옥타브와 별빛같은 영롱한 아르페지오를 거쳐 강렬하게 끝내는데, 감동의 물결이었다. 짧은 4분 20초 안에 녹여진 최상의 기교가 끝나자마자 이 곡을 비롯해 이날 모든 곡을 암보로, 완벽히, 온 열정을 다해 연주하는 장혜원의 음악에 관객들은 박수 환호에 브라보를 외치며 기립하였다.
2부는 피아노와 현악 4중주를 위한 소협주곡(Concertino) 순서였다. 2022년부터 한국피아노학회(이사장 장혜원)가 시작해 피아노를 더욱 친숙하게 대중에게 전파하기 위한 노력 일환으로, 우리 동요와 민요를 현악사중주와의 창작곡으로 공연해오며 호응을 얻었다. 이날도 네 명 작곡가의 감성이 듬뿍 담긴 여섯 개의 작품들로 피아니스트 장혜원에게 헌정되며 의미 있었다.
첫 곡 신동일의 <오빠 생각>은 여러 번 연주되었는데, 언제 들어도 참 담백하고 믿음직스럽다. 피아노(장혜원)로 먼저 '오빠 생각' 주제가 정답게 연주된 후, 리움현악사중주단(이진성, 옥자인, 박용은, 김다솔)이 선율을 장식하며 악기간 자연스런 변주가 자진모리 장단으로도 이어진다. 다음으로 정보형의 <새야새야>는 영화음악 같은 운치있는 화성과 감성의 전개가 돋보이고, 현악기와 피아노가 주고받는 뚜렷한 주제가 '새야새야'라고 애틋하고 절절하게 외치는 것만 같았다.
▲ 리움현악사중주단과 장혜원이 공연후 관객들의 박수환호에 답하고 있다. |
ⓒ 박순영 |
나인용의 '나운영 달밤' 주제에 의한 피아노소협주곡 <로망스 2>(초연)는 나인용 작곡가가 존경하는 스승 나운영 작곡가의 '달밤'을 주제로 했다. 전체적으로 피아노와 현악사중주의 넓은 음역을 동시에 사용한 음장감을 주었는데, 많이 애창되는 '달밤'의 굽이치는 선율선의 깊이를 드러내는 의도로 보였다. 중간부에 현대음악적 움직임으로 이 땅의 현대음악 작곡가 1세대다운 음향관을 피아노소협주곡에도 잘 녹여주었다.
마지막으로 김은혜의 <오 탄넨바움>(초연)은 우리나라에서는 '소나무야'라 불리는 '오 탄넨바움' 주제 전체가 여러조로 활기차고 웅장하게 전개되어, 크리스마스 캐럴로도 잘 불리는 이 곡의 의미를 잘 살리면서 연주회 대미를 장식하였다. 또한 관객의 환호와 앵콜세례에 장혜원 교수는 리움현악사중주단과 슈베르트 < An Die Musik(음악에) >를 잔잔하게 연주하여 이 날 연주회를 돌아보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30년여를 한국피아노학회 이사장으로 올해도 어김없이 AIPAF(Asia International Piano Academy & Festival)을 개최하고, 피아노 소협주곡 콘서트로 작곡가와의 창작음악 발굴에도 앞장서 온 피아니스트 장혜원 교수다.
▲ 장혜원이사장의 공연 후 피아노학회 임원진이 로비촬영중이다. |
ⓒ 박순영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플레이뉴스에도 함께 송고됩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바다로 가던 길에 만난 여자
- '골때녀' 원더우먼, 창단 785일만에 슈퍼리그 진출 성공
- 보험금 노리고 딸 유괴 공모... 잔인한 아빠의 최후
- 이순신의 마지막 그린 '노량', 실제 역사와 비교해 보니
- 전두환 군사독재 우화적 비판 영화 '태', 37년 만에 재평가
- 와이파이-TV 먹통... 일가족의 호화로운 휴가 덮친 재난
- 권위자 실명으로 풍자하는 세계 영화, 한국은 뒤처졌다
- 2019년 이태원에서 재탄생한 퀴어들의 '은신처'
- 어이없는 죽음... 요절한 천재 기타리스트가 남긴 보물
- 아기와 반려견 함께 키울 수 있을까? 강형욱의 해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