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펼친 필리핀 특급 에스페호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찾아온 필리핀 특급 마크 에스페호(26·필리핀)가 날갯짓을 시작했다.
대한항공은 13일 수원에서 열린 한국전력과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1로 이겼다. 3연패에 빠졌던 대한항공은 이날 승리로 2위로 올라섰다. 이날 승리의 주역은 에스페호였다. 올 시즌 두 번째 선발 출전 기회를 얻은 에스페호는 개인 최다인 19점을 올렸다.
강력한 서브가 돋보였다. 승부처인 3세트에선 에스페호의 강력한 서브가 연달아 들어가면서 순식간에 점수를 10-1로 벌렸다. 이날 전체 경기 서브 득점도 4개나 됐다. 적장인 권영민 한국전력 감독도 "서브가 너무 강하게 들어왔다. 우리 리시브가 버텨주지 못하면서 하이볼 공격만 하다보니 이길 수 없었다"고 했다. 토미 틸리카이넨 대한항공 감독도 "에스페호의 서브가 경기 흐름을 바꿨다"며 칭찬했다.
에스페호는 필리핀 국가대표 출신이다. 23세 이하 대표 시절엔 팀 동료가 된 정지석과 네트를 두고 겨룬 적도 있다. 필리핀 리그 뿐 아니라 태국, 일본, 바레인 등 해외 리그 경험도 많다. 아시아쿼터가 생기면서 한국 V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아시아쿼터 3순위로 대한항공의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대한항공엔 에스페호의 포지션에 좋은 선수가 많다. 전현직 국가대표인 정지석, 곽승석, 정한용이 있다. 여기에 수비력이 뛰어난 이준까지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다 보니 대한항공이 올 시즌 15경기를 치르는 동안 두 번 밖에 선발출전하지 못했다.
웜업존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지만, 에스페호는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에스페호도 국내 선수들과 똑같이 훈련하고, 경쟁했다. 기회를 잡길 바랐는데 1세트에 잘 했기 때문에 계속 기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에스페호는 "어깨가 정말 좋다. 묵직하다. 하이파이브를 할 때도 통증이 느껴진다"고 웃었다.
에스페호는 "대한항공에 오기 전부터 좋은 선수가 많은 걸 알았다. 건강한 경쟁이라 받아들인다.감독님의 시스템을 믿었고, 저를 기용해주셨다"며 미소지었다. 이어 "첫 선발 출전 때 잘 못했다. 한 번 더 기회가 오면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했다. 경기 전날 밤에 혼잣말로 '이길 것'이라는 주문을 외웠다"고 했다.
필리핀은 농구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에스페호도 농구선수 출신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는 농구를 했다. 왼손잡이였는데 덩크를 하다 팔꿈치를 다쳐 그만뒀다. 대학에 진학한 뒤엔 공부(인류학 전공)를 하려 했는데, 배구를 접하게 됐다. 경기에 나가 계속 이기다 보니 배구 선수가 됐다"고 말했다.
프로농구는 배구보다 먼저 아시아쿼터 문호를 열었다. 올 시즌엔 아시아쿼터 9명의 선수가 모두 필리핀 출신(이중국적 포함)이다. 에스페호는 "필리핀에서 같은 대학(아테네오대)을 나온 샘조세프 벨란겔(대구 한국가스공사), 데이브 일데폰소(수원 KT)와 렌즈 아반도(원주 DB), 이선 알바노(원주 DB)와 아는 사이다. 연락도 한다"고 말했다.
낯선 타향살이에 압박감도 있지만 힘들어하진 않는다. 에스페호는 "대한항공은 지난 시즌 우승팀이다. 잘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하지만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잘 도와준다. 최대한 웃으면서 그런 것들을 잊고, 경기를 즐긴다"고 했다.
수원=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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