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핀 창고에 불화 숨긴 박물관장…대웅전 도난 문화재였다

최서인 2023. 12. 14.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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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당한 불교문화재를 곰팡이 핀 창고에 숨겨온 전직 사립박물관장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부장 강규태)는 최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82)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01년 7월부터 12년간 서울 종로구에 있는 무허가 주택에 불화 4점을 숨긴 혐의로 지난 4월 재판에 넘겨졌다.

그가 숨겨왔던 불화 4점은 문화재보호법상 일반동산문화재다. 일반동산문화재는 제작된 지 50년 이상 지났으며 상태가 양호하고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 중 희소성이나 명확성, 시대성이 있다고 판단된 것을 뜻한다.

A씨는 각 작품을 신문지나 비닐 등으로 포장해 습기나 온도 조절 장치가 없는 창고에 보관했다.

경찰이 이곳을 수색했을 때는 사방에 곰팡이가 피고 먼지가 쌓여 있었으며, 작품 4점은 모두 화기(불화 가장자리에 조성 시기, 봉안 장소, 화공의 이름 등을 기재한 부분)가 훼손된 상태였다.

작품 중에는 1993년 대구 달성군 유가사 대웅전에서 도난당한 ‘영산회상도’도 있었다.

A씨는 1990년대에 고미술상으로부터 이 작품들을 샀으며, 미술상이 도난문화재라는 사실을 숨겨서 자신은 몰랐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한 A씨가 오랜 기간 불교문화재를 수집했고, 1993~2017년 서울 종로구에 사립 박물관을 운영한 점을 고려하면 도난 문화재임을 모를 리 없었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재판부는 “A씨는 학력과 경력상 그 누구보다 불교문화재 전반에 관해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고 있으므로 각 불화의 상태를 보고 도난문화재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을 것임에도 ‘도난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변명할 뿐”이라고 꾸짖었다.

다만 “박물관을 운영하며 불교문화 대중화에 기여했고 고령인 점, 이들 불화를 보관하기 시작한 시점엔 일반동산문화재 은닉을 처벌하는 규정이 없던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앞서 A씨는 비슷한 범행으로 이미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3차례 선고받았다.

경기도 성남시의 한 건물 지하에 불교미술품 16점과 지석 315점을 은닉한 혐의, 종로구 창고에 불교문화재 39점을 은닉한 혐의, 같은 창고에 다른 불교문화재 34점을 은닉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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