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정치 인맥株' 고공행진…또 급등락 반복하나
대선도 아닌 총선 앞두고 이례적 움직임…과거 정치 테마주 변동성 커지며 급등락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4개월 앞두고 국내 주식시장에서 정치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치권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총선 출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관련 테마주가 연일 불을 뿜고 있다. 한 장관이 배우 이정재와 함께 서울 서초구의 한 식당에서 식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상홀딩스 우선주와 와이더플래닛 등이 급등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증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테마주로 수급이 쏠리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정치 테마주 흐름을 고려했을 때 주가 변동성이 커지면서 급등락을 반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서 이달 들어 가장 많이 오른 종목은 와이더플래닛으로 9거래일 동안 263.9% 올랐다. 지난달 말 2910원에서 전날 1만590원으로 주가가 뛰었다. 이달에만 다섯번 상한가를 기록했는데 지난 8일부터 13일까지 나흘 연속 상한가 행진을 기록했다.
앞서 와이더플래닛은 지난 8일 제3자 배정방식 유상증자로 운영자금과 채무상환 자금 등을 마련한다고 공시했다. 배우 이정재를 비롯해 정우성, 위지윅스튜디오와 박관우·박인규 위지윅스튜디오 공동대표 등이 증자에 참여하기로 했다. 와이더플래닛은 오는 20일 유상증자 대금 납입을 완료하면 최대주주가 이정재 씨로 변경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 장관과 현대고 동창인 것으로 알려진 이 씨가 투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와이더플래닛 주식을 사려는 개인이 몰렸다. 임세령 대상홀딩스 부회장과 오랜 연인 사이로 알려진 이 씨가 한 장관과 저녁 식사를 같이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대상홀딩스 우선주와 대상홀딩스 주가가 요동쳤다. 대상홀딩스 우선주는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6일까지 7거래일 연속 상한가 행진을 이어갔다.
대상홀딩스 우선주 주가는 지난 8일 장중 한때 5만9600원까지 올랐다가 사흘 만에 4만1650원까지 하락했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이 보유 중인 우선주를 매각하면서 급등 랠리에 제동이 걸렸다.
이 씨가 직접 투자하는 와이더플래닛은 전날 매수 잔량 395만주를 기록했다.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했지만 아직 차익을 실현하려는 주주가 많지 않다. 전날 거래량은 32만5000주에 불과했다. 상장 주식 691만주의 5%도 안 되는 수량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상홀딩스 우선주가 급등하면서 정치 테마주에 대한 기대 수익률이 높아졌다"며 "대통령 선거도 아닌 총선을 앞두고 정치 테마주가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이례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과거 정치 테마주 주가 흐름을 복기해보면 테마주 주가는 예측하기 어렵다. 대상홀딩스 우선주 사례만 보더라도 급등하던 주가가 대주주의 지분 매각으로 갑자기 급락했다. 유력 정치인의 선거 불출마 선언으로 주가가 급락한 사례도 있다.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2021년에도 무수히 많은 정치 테마주가 등장했다. NE능률은 2021년 3월부터 6월까지 3개월여 만에 900% 올랐다. 3000원선을 머물던 주가가 3만원을 돌파했다. 최대주주인 윤호중 HY회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파평 윤씨라는 이유로 테마주로 분류됐다. 비슷한 시기에 사외이사가 윤 대통령과 대학 동문이라는 이유로 덕성과 서연 등의 주가도 급등했다. 노루홀딩스는 자회사인 노루페인트가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운영했던 코바나컨텐츠를 후원한 사실이 알려진 후 주가가 급등했다.
NE능률 주가는 당시 역사상 최고점을 기록했지만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현재 주가는 5000원선으로 추락했다. 덕성 주가는 2021년 6월2일 3만2850원까지 올랐다가 지난 7월26일 3375원까지 떨어졌다. 윤 대통령 테마주로 분류되기 전보다 주가가 낮아졌다. 최근 다시 한 장관 테마주로 거론되면서 주가는 8000원선을 회복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해 2월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정치 테마주 현상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남길남 선임연구위원은 "유력 후보와의 막연한 관계를 명분으로 주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정치 테마주 현상이 재연됐다"며 "20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후보 두 명의 정치 테마주로 언급되는 83개 종목 가운데 지인 테마가 44%로 가장 많았다"고 분석했다. 이어 "해당 기업의 사업과 직접적 관련성이 없는 매우 막연한 관계가 대다수였다"며 "관련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 등락이나 정치적 이벤트에 따라 주가가 급등락했다"고 덧붙였다.
18대 대선과 19대 대선 당시에도 정치 테마주가 등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약속했던 저출산 문제 해결과 관련해 육아용품 관련주가 급등했다. 아가방 주가는 2010년 말 2100원선에서 2012년 1월 2만2000원을 넘었다. 이후 주가는 내리기 시작했고 2014년 6월 4000원 이하로 하락했다.
19대 선거 당시에도 사진 한 장이 주목받았다. 여성의류 브랜드 업체 대현 경영진 가운데 한 명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함께 등산하고 찍은 사진이 퍼졌다. 대현은 정치 테마주로 분류됐고 한 달 만에 주가가 3배 올랐다. 하지만 해당 사진 속 인물이 대현 경영진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주가는 급락했다.
이처럼 정치 테마주 주가는 일시적으로 급등하지만 해당 선거가 끝나고 테마주 분류 이전 주가로 회귀하는 경우가 많았다. 위니아를 비롯한 대유위니아그룹 계열사는 최근 경영 악화와 대규모 임금 체불로 잇따라 법정관리 절차를 밟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박영우 대유위니아 그룹 회장은 근로기준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18대 대선이 치러진 2012년에 테마주로 주목받았고 이후로도 인수합병(M&A)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영향으로 해외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등 위기가 찾아왔다.
투자자가 기대하는 유력 정치인과 인연이 사업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지 않고 간접적으로 도움을 받더라도 성장을 보장하지 않는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치 테마주가 언제까지 기승을 부릴지 알 수 없다"면서 "주가 변동성이 커지면 투자를 유치하는 데 변수가 많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형수 기자 parkh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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