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트렌드]일본서 배우는 100세시대 인프라①

2023. 12. 14.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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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세대와 자주 만나다 보면, 보통은 나이 듦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학창시절 입시를 준비하듯, 혹은 회사에서 승진하듯 정해진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들 이야기한다. 어디서 어떻게 정보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고도 한다. 종종 주변에서 일어나는 단편적인 사례들을 통해 ‘살아갈 방법’에 대해 결론을 짓고, 그 길을 따라가거나 피하거나 한다. 필자는 시니어로서 앞날이 잘 그려지지 않을 때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맞이한 곳들을 살펴본다. 일본 사례는 언제나 좋은 참고서적이다. 짧은 일정으로 방문했지만, 미리 약속을 정하고 가서 두루 알아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서점이다. 1927년에 설립된 키노쿠니야 서점(株式?社紀伊國屋書店)은 도쿄 번화가인 신주쿠 지역에 있는 9층 건물 전체를 사용한다. 6층은 전부 간호&의학/ 자연과학(Medical & Nursing / Natural Science) 관련 서적으로 구성돼 있다. 가족 간병, 알츠하이머, 관절염, 노년기 정신 건강 등 주제가 세분화돼 있고, 다양하다. 갑작스레 부모나 부부 돌봄 상황이 닥치거나, 치매 관련 증상이 나타났을 때 찾아볼 수 있는 자료가 잔뜩 모여있었다. 손쉬운 만화 형식부터 해외 논문 번역본까지, 얇고 가벼운 내용부터 두껍고 심각한 책자까지 폭 넓었다. 간병 관련 코너에는 돌봄할 때 착용할 수 있는 앞치마부터 식단, 간편식까지 근처에 있었다. 돌봄 관련 일을 처음 맞닥뜨리고 대처하느라 경황이 없을 때를 세심하게 배려한 것 같았다.

1층 신간 서적, 잡지, 이벤트 구역은 가장 붐비는 곳이다. 눈에 잘 띄는 곳에 60대를 주요 고객으로 하는 시니어 잡지가 놓여있었다. 활기찬 시니어로서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운동, 패션, 식단 관리 등이 담겨있었다. 서점에서 인생 3막에 대한 설계를 잘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길라잡이를 만난 것 같았다. 베스트셀러 구역에는 100세 인생에 대한 에세이집, 80대 패션 따라하기도 있어 신기했다. 문화 공연 일정을 알리는 게시판에서 60대 현대무용가의 공연과 장수 준비에 대한 정보 관련 강연 일정을 볼 수 있었다. 시니어 세대의 일상생활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참고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약국도 들렀다. 약국 밖 입구부터 디지털 사인과 픽토그램을 활용해 문을 여는 시간과 닫는 시간, 그리고 근무하는 약사 얼굴을 표시했다. 1명의 약사가 10명의 고객만 돌보는 단골 약사 제도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매번 같은 약사가 방문자를 상담한다. 일본 정부는 가파르게 증가하는 의료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건강과 관련된 모든 것을 케어한다’는 목표 아래, 약국과 의료기관간 연대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내 의료개호 시설과 연계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또, '단골약국, 재택방문서비스'를 통해 입원 치료가 끝났지만 통원이 곤란한 경우, 퇴원 후 자택요양 때 약사가 조제한 약을 가지고 방문하는 서비스도 있었다. 약국 안에는 질병과 건강 관련 책자와 브로셔가 가득했고, 약에 대한 직원들의 사용 후기도 있었다. 각종 의약품, 건강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했다. 이에 더해 단골 약사는 환자와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평상시 건강 관리에도 도움을 준다. 약국 안과 밖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가 잔뜩 있었다.

일본 시니어 관련 스타트업 3곳도 만났다. 한 곳은 시니어 치매 및 고독 방지용 로봇을 만드는 회사였다. 성인의 손바닥만한 작은 사이즈라서 귀엽고, 휴대도 용이했다. ‘할머니 식사하실 시간이예요’, ‘오늘 운동을 위해 함께 힘내봐요’ 라는 다정한 말을 건네면서 응원하듯 두 팔을 위로 올려 흔들고, 엉덩이도 씰룩거린다. 보급형 로봇의 경우 30만원이 채 안되는 가격이고, 고급형은 구독 서비스를 통해 월별 요금제를 이용할 수 있었다. 또 다른 곳은 뇌졸중 관련 AI(인공지능)를 통해 재활을 돕는 스타트업이었다. 중풍은 전조 증상이 있고, 이후 신체 마비가 나타난다고 한다. 이 팀은 뇌파 패턴을 연구해 증세가 심각해지지 않도록 예방하고, 뇌 신경을 자극하여 재활 운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곳은 일본내 요양시설 40개를 운영하는데, 한국인 직원이 근무하고 있어 이야기가 편했다. IoT(사물인터넷) 제품을 활용해 시니어들의 생활 편의를 지원하면서 데이터를 모아서 효율화를 추구하는 곳이었다. 매출이 500억원 이상인데도, 일본 내에는 요양시설 프랜차이즈나 상장한 회사들에 비해 아직 작다며 할 일이 많고 더 잘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장소를 이동하면서 일상생활을 엿볼 수도 있었다. 일부러 버스를 이용했다. 전철보다 기본 가격이 비싸고 노선이 적으며 운행이 자주 있지 않아 불편했지만, 계단을 오르내릴 필요가 없는 점은 편리했다. 버스에 탑승하면 공간 전체의 반을 차지하는 앞쪽 좌석은 전부 노약자석이었다. 이때 휠체어를 놓는 구역의 좌석은 동반한 보호자가 등지지 않고 바라볼 수 있게 의자 배치가 옆으로 돼 있었다. 기대거나 끌기가 편리한 이동형 바구니와 함께 버스에 오르는 어르신이 제법 많았다. 지팡이를 짚은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정차 구역마다 시니어가 안전하게 내리는지 운전기사가 꼼꼼하게 점검하고 출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차를 안내하는 글씨도 큼지막하고, 방송도 반복해서 틀어주니까 어디인지 헤매지 않고 초행길인 필자도 안심하고 하차할 수 있었다.

평일 낮시간대 백화점, 가게, 지역센터는 시니어들로 가득했다. 그야말로 시니어 전성시대다. 시니어들의 여가활동을 위한 그림, 뜨개질, 노래 교실이나 지역 축제 기념품 판매 행사가 열렸다. 시니어 모임을 겨냥해 만든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전통 있는 카페의 특별 세트메뉴도 곳곳에 있었다. 보험사나 세무사가 제공하는 상속과 유산 처리 업무 홍보나 찾아가는 상담회 관련 정보도 접할 수 있었다. 칼슘 보강을 할 수 있는 센베 같은 과자나 다채로운 맛의 유동식, 건강기능성 약품들도 잔뜩 있었다.

시니어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점들이 이슈가 되고 준비해야 할지 미리 볼 수 있었다. 고령화 사회를 오랜 기간 준비하고 대응하며 변화하는 일본은 우리에게 미래를 예측하는 실증 모델이다. 좋은 점은 취하고, 아닌 것은 피하며 새로운 길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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