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급발진 의심 車제조사, 자료 제출 안하면 '결함'…법안 통과
결함 추정까진 합의…입증 책임 전환법 통과는 요원
자료 미제출 시 결함 추정 요건에 '급발진' 추가
사고기록장치 의무화·기록 표준 제정
입증 책임 전환 '제조물 책임법' 논의는 미뤄져
편집자주 - 차량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순간 가속력이 뛰어난 전기차 보급까지 늘면서 급발진 의심 사고는 우려를 넘어 공포가 되고 있다. 피해자는 차량 결함을 입증하기엔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고 비판한다. 제조사는 단순 운전자의 오작동까지도 급발진 사고로 둔갑할 수 있다며 제도의 오남용을 지적한다. 본지는 급발진 의심 사고 논란의 원인, 원인 규명 가능성, 궁극적인 대안과 대처요령을 정리해본다. 이를 통해 결론없이 되풀이되는 피해자와 제조사 사이의 논쟁을 해결할만한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앞으로 급발진 의심 차량의 제조사가 사고 차량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차량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결함으로 추정되면 정부는 제작사에 강제 리콜 명령을 내릴 수 있고 피해자 역시 민사소송에서 승소 가능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14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제10차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자동차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국토위 소위원회를 통과한 해당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이후 본회의를 거쳐 정부로 이송될 예정이다. 법안을 발의한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일정상 연내 입법 완료는 어렵겠지만 합의를 이뤄 소위를 통과했다는 점에서 법안 체계와 방향성은 잡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같은 자동차에서 사고가 반복적으로 일어날 경우 차량 제조사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제작 결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결함 추정 요건엔 화재, 반복적인 교통사고만 언급됐다. 이번 개정으로 '자동차 장치가 운전자의 의도와 다르게 작동해 발생한 사고'라는 급발진 관련 조항이 추가된다.
자동차관리법 제31조는 차량의 제작 결함 시정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제조사의 자료 미제출 시 결함 추정 조항은 2020년 2월 신설됐다. 2018년 BMW 화재사고 이후 사고 조사에서 독일 본사의 부실한 자료 제출이 논란이 되자 이같은 법안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최근엔 급발진 의심 사고가 사회적인 논란이 되면서 이번에 추가로 개정했다. 특히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량 대비 순간 가속력이 뛰어나다. 전자장비 탑재도 늘어 결함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급발진 의심 사고 관련 영상이 퍼지면서 차량 결함에 대한 소비자 불안은 극도로 높아진 상황이다.
이에 국회는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하면 제조사가 성능시험대행자(한국교통안전공단 산하 자동차안전연구원)에게 사고 관련 입증 자료를 반드시 제출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여기에 사고기록장치(EDR) 장착을 의무화하고 기록장치의 기록 내용과 분석 결과 보고서의 작성 기준·정보제공 관련 표준 지침도 마련하기로 했다.
다만 급발진 사고로 의심되는 건에 대해 성능시험대행자가 사고 조사를 의무화하자는 내용은 이번 개정안에선 빠졌다. 지금은 급발진 의심 사고에 대해 경찰청이 우선적으로 조사를 하고 원인이 차량 결함으로 의심될 때 자동차안전연구원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협업을 통해 지원한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현행법상 경찰청이 사고 조사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자동차안전연구원까지 사고 조사를 의무화하면 업무가 중복·충돌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급발진 의심 사고의 피해자들은 제조사에 비해 정보 접근이 제한적이라고 주장해왔다. 또한 일반인이 방대한 전문 지식을 가진 제조사와 싸우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여있다는 논리에서다.
이 때문에 이번 국토위에 상정된 개정안은 피해자와 제조사 간 정보의 형평성에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이밖에도 EDR 기준 항목에 브레이크 센서 압력 값 등 항목을 추가하고 EDR 기록을 읽을 수 있는 장비를 시중에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 관련 안건 5건은 여전히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은 자동차 등 제조물의 결함으로 피해자가 사고를 당했을 때 차량에 결함이 없다(손해배상의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제조사가 입증하도록 하는 법이다. 5개 법안은 담당 상임위 소위에서조차 논의되지 않고 있다. 21대 국회가 끝나는 내년 5월 29일을 넘기면 자동 폐기된다.
제조사들은 이같은 입증 책임 전환은 불필요한 분쟁과 소송 남발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입법을 반대한다. 또한 소송 제기 전 단계부터 증거 자료를 제출하게 되면 제도 남용의 가능성이 있고, 이는 곧 제조업체의 영업비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영업비밀의 유출 방지를 위해 '비밀유지명령 제도' 내용을 추가한 제조물 책임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제조사가 법원의 자료 제출 명령에 불응하면 피해자의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며, 영업비밀은 소송 이외에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공개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았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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