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지문" 가림막도 소용없다…반복되는 음대 입시비리
경찰이 숙명여대에 이어 서울대 음악대학의 입시 비리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대학가에서는 이러한 비리가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반응이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암암리에 이뤄져 온 관행을 뿌리 뽑지 않으면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수 불법 레슨, 모두 눈 감아온 관행”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12일 서울대 음대를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서울대 음대 입학시험에 외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교수들이 자신이 가르친 입시생에게 추가 점수를 주는 등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앞서 10월 경찰은 숙명여대 음대 입시 비리 의혹과 관련해 입학처를 압수수색하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학가와 음악계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교수들이 겸직 금지 의무를 어기고 고교생들을 가르치며 돈을 받고, 직접 심사에도 들어가는 관행이 오랫동안 계속됐기 때문이다. 한 지역 음대 강사는 “서울 유명 사립대 교수들은 뒤로 개인 레슨도 하고, 학교에서는 ‘들키지만 마라’는 식으로 눈감아 준다고 한다”며 “스포츠로 치면 심판이 선수로도 뛰는 불공정 행위”라고 말했다.
일부 대학은 공정성을 위해 실기시험 때 수험생을 볼 수 없게 가림막을 치지만, 이 것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음대 성악과를 졸업한 정모씨는 “우리는 목소리가 지문이다.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의 음색을 모를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요 음대 기악과 졸업생도 “특정 부분에서 숨을 쉰다든지, 템포를 ‘루바토(rubato·자유로운 템포)’로 조절하면 연주자를 금방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교수들이 심사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시험 정보를 알려주는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예고 출신인 정모씨는 “학교 선배가 연습하던 곡이 나중에 보니 모 대학 실기 시험의 지정곡으로 나오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6월엔 자신이 가르친 입시생에게 실기 지정곡을 알려준 연세대 음대 교수가 1심에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교수가 별도의 개인레슨을 하고 고액의 레슨비를 받는 경우도 있다. 가격대는 전공이나 교수별로 천차만별인데 학생들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한다. 입시 반주 경험이 있는 한 피아노 강사는 “몇 년 전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학생을 보니 교수 레슨 한 번 갈 때마다 30만원을 현금으로 가져가더라”고 말했다. 레슨이 통상 1시간 정도 진행된다면 1분에 5000원씩 지불하는 셈이다.
“워낙 음악계 좁아, 내부고발 기대도 힘들어”
그런데도 입시 비리 의혹이 음대에서 계속 나오는 이유는 음악계가 좁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음대 전임교수는 427명(실용음악과, 교회음악과 제외)으로, 전체 교수 7만1937명의 5.9%에 불과하다. 전공별, 악기별로 나누면 더욱 적은 수가 된다.
서울의 한 음대 관계자는 “관악기나 국악기 등 전공자가 소수인 악기는 대학 내 전체 인원을 합쳐도 겨우 두 자릿수다. 한두 다리 건너면 학생, 교수 모두 연이 닿는다”고 말했다. 한 서울대 음대 졸업생은 “입학 후에도 자신을 레슨해 준 교수와는 지도교수로 연을 이어가는 게 대부분”이라며“미래엔 지도교수가 자신의 교수 임용에 또 관여할 수 있는데, 누가 이런 관행이 잘못됐다고 고발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서울 한 사립대의 교수는 “워낙 내부에서 이뤄지는 거래이기 때문에 비리를 잡기도 어렵고 내부 고발을 기대하기도 어렵다”며 “정부에서 강력한 단속 의지를 갖고 뿌리 뽑아야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작곡과 출신의 강애리 법무법인영민 변호사는 “과거에도 음대 교수들이 입시 비리로 처벌 받았지만 대부분 실기 시험의 특성상 정답이 없고 최종 합격엔 입시생의 실력이 반영될 수 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쳤다”며 “음대 입시 비리를 근절하려면 형사처벌의 수위를 높이는 한편 학교 역시 관련 제도를 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사 상황이 진척되는대로 음대 입시 비리를 막기 위해 필요한 현황 조사나 제도 개선 등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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