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노동개혁은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2023. 12. 14.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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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올 초 신년사에서 강조했던
3대 개혁 성과 누가 봐도 미흡

저출산, 입시 경쟁, 고용난 등
근본 원인은 노동시장 왜곡

개별 부처가 챙기기 너무 복잡
대통령이 기존 발표 연연말고
원점서 시작 자세로 주도하길

정부의 국정 수행능력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 파행 이후 서울 강서구 보궐선거 패배와 엑스포 유치전 실패가 이어졌다.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뿐 아니라 국가 리더십 전반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졌다. 내년 총선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지도 않다. 총선은 오히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치명상을 입힐지도 모른다.

여야가 이미 탄핵과 특검, 거부권 등 온갖 무기를 동원해 총력전을 펼치느라 경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연금·노동 개혁은 이런저런 위원회에 떠맡겨진 상태다. 총선 이후 정치 불안이 더욱 고조되고 리더십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한다면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대통령이 나서서 국정의 중심을 바로 세워야 한다. 올해 대통령 평가는 상반기에 좋았다가 하반기 들어 계속 내림세다. 법치주의를 내세워 노동개혁에 드라이브를 걸 때와 미국을 국빈방문해 협력기반을 강화할 때 좋은 평가를 받다가 지난여름 이후 리더십 위기에 몰렸다고 하겠다. 1년을 되돌아볼 때 중요한 포인트는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할 큰 과제에 집중하고 이를 구체적 성과로 보여줘야 여론이 반응한다는 점이다.

올해 신년사에서 대통령이 강조한 국정과제는 노동과 교육, 연금 개혁이고 2023년은 이들 3대 개혁의 골든타임이었다. 신년사는 작년 12월 15일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제1차 국정과제 점검 회의에서 걸러진 국정과제와 3대 개혁의 추진전략을 담고 있다. 올해 1년 국정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겠다. 목표 대비 개혁의 성과는 누가 보더라도 미흡하다. 그나마 상반기에 대통령이 직접 챙겼던 노사 법치주의 개혁과 사교육 카르텔 혁파는 양호하다. 하지만 하반기 이후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교육의 지방분권화, 교육과정 다양화 등 정책 이슈들은 각 부처에 맡겨진 상태다.

고용노동부가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던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편은 허공에 떠버렸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대화 테이블은 아직도 준비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수많은 연금개혁 시나리오를 국회 연금개혁특위에 통보하고는 할 일을 다했다는 태도다. 총선 쟁점이 되지 않도록 자물쇠를 채워놓은 셈이다. 교육개혁은 사교육 카르텔 혁파와 교사들의 교권확보 운동에 떠밀려 존재감을 잃었다. 3대 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집중력은 약화됐고 개혁동력은 분산됐다.

2024년 대통령이 국정을 쇄신하고 리더십을 재정비하려면 초심으로 돌아가 3대 개혁, 그중에서도 노동개혁부터 다시 챙겨야 한다. 노동과 연금개혁은 개별 부처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복잡한 국가적 과제다. 지금 당면한 인구위기나 청년고용 문제, 젠더·세대갈등, 과도한 입시경쟁과 무너진 공교육의 근본 원인은 노동시장 왜곡에 있다. 고용 지위에 따른 소득과 사회적 평판의 격차가 너무 커지면서 10년 전부터 결혼과 출산 기회의 격차도 커지기 시작했다. 입시경쟁이 더 가열되는 현실을 바꾸려면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한다. 이를 시작이라도 제대로 해보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흔히 노동개혁은 긴박한 경제위기 때나 가능하다고 하지만 우리가 당면한 초저출산과 과도한 입시경쟁, 연금고갈 등 사회적 위기는 저강도 위기라는 특성 때문에 바로 체감할 수 없을 뿐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가장 큰 위험 요소다. 복잡한 개혁 이슈들을 단순화하고 국민적 지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법치주의 노동개혁에서 보았듯이 대통령의 주도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만 그동안 벌여놓았던 노동시장 개혁 메뉴들에 연연하지 말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낫다. 그 출발점으로 2024년 신년사에서 대통령의 정리된 메시지가 나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마침 오늘 노사정 대표자 회동을 계기로 경사노위가 정상화 단계로 가는 듯하다.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동개혁은 한계도 있지만, 장점이 더 많은 한국형 개혁방식이다. 무엇보다 전문가그룹의 지혜를 모을 수 있고 공론화를 통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슈일수록 집단지성의 활용과 폭넓은 공감대 형성은 필수적이다. 총선 열기가 달아오르기 전에 대통령이 직접 노사정 대표와 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주재하여 노동시장 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기를 기대한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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