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시선]어쩌면 명품 핸드백은 작은 문제일지 모른다
대통령 부인의 행보는 대선 때부터 논란이었다. 민간인 사업가 시절 행태야 새삼 다시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대통령 부인이 된 후엔 세금 내는 국민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실은 물론 언행에도 조심해야 한다. 스스로 제어를 못 하면 대통령실 참모진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문제 재발을 막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론의 여지 없는 상식이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에선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임기 초 김건희 여사 주변의 비선 논란이나 수천만 원대 액세서리 착용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궤변 또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더니, 급기야 자칫 뇌물로 비칠 수 있는 수백만 원대의 화장품·핸드백 수수나 불필요한 인사·정무 개입 의혹 제기에도 여전히 모르쇠 전략을 이어가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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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기 내용 측면 심각한 영상 공개
큰 파괴력 불구 대통령실은 침묵
부메랑으로 오기 전 해법 찾아야
」
대통령실은 지금 논란이 수그러들기만 기다리는 모양인데, 세상이 그리 간단치 않다. 잘못한 일에는 겸허히 사과하고 과장이나 왜곡엔 깔끔하게 해명해두지 않으면 결국 이게 발목을 잡아 윤석열 대통령, 아니 보수 진영 전체가 낭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가 몰카 함정취재를 통해 2주 전 공개한 30분 길이 영상 안에 다 들어있다. 지난 박근혜 정부의 탄핵 국면에서 튀어나온 최서원(최순실) 씨의 의상실 CCTV 장면을 통해 온 국민이 체감했듯이 영상의 파괴력은 매우 크다. 서울의소리 취재 의도와 방식이 워낙 저열하고 불법적이라는 건 명백하다. 그 자체로 죄를 물어야 한다. 웬만한 레거시 미디어가 이 문제를 가급적 다루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명품 선물 정도는 곁가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한 장면이 많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런 영상이 만천하에 공개된 이상 대통령실이 침묵한다고 언제까지나 수면 아래로 가둬둘 수 없다. 게다가 대선 기간 녹취록에 이어 벌써 두 번째 당하는 일이다 보니 이런 영상과 녹음이 언제 어디서 또 튀어나올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영상 속 김 여사는 김일성 생일 행사 참석 등을 위해 수차례 방북해 국가보안법 위반 조사를 받았던 친북 목사를 앞에 두고 거리낌 없이 속내를 드러냈다. 여기엔 "제가 (문재인 정부에 대해) 엄청난 충성심이 있었던 사람이라…어쨌든 보수의 힘으로 탄생한 정부니까 그들의 비위를 살짝 맞추는 건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렇지 않고"라는 식의 보수 조롱으로 여겨질 법한 발언도 포함돼 있다. 윤 정부 탄생에 힘을 모은 보수 진영 입장에선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백번 양보해 비공식 자리의 사적 대화라 치고 눈 한번 질끈 감을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김 여사는 "저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끊어지면 적극적으로 남북문제 (해결에) 나설 생각"이라며 "우리 목사님도 한번 크게 저랑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했다. 면담을 마치면서 한 번 더 "일정 잡을 테니까 북한 문제에 대해 저랑 얘기하자"고 했다.
누가 실질적인 V1이니 V2니 하며 김 여사의 국정 개입 의혹에 군불을 때는 야당 측에 좋은 먹잇감을 던져준 거나 마찬가지다. 부부지간에 무슨 영역이든 사적 조언은 할 수 있고, 이런 간접적 방식으로 대통령에게 영향을 끼칠 수는 있다. 하지만 대통령 부인이 대체 무슨 법적 권한과 자격이 있길래 본인이 직접 남북문제에 나서겠다는 얘기를 거침없이 하고, 검증되지 않은 특정 인사에게 같이 일하자는 제안까지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데도 대통령실이 아무 해명을 내놓지 않는 건 진위 확인조차 못 할 정도로 여사님이 무섭거나 아니면 국민이 우습거나, 혹은 둘 다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까닭이든 국민 눈높이에선 이런 무책임한 대통령실을 더는 용납하기 어렵다.
이 영상은 시기 면에서도 매우 우려스럽다. 영상이 찍힌 지난해 9월 13일은 김 여사 주변 특혜 의혹으로 더불어민주당이 국정조사 으름장을 놓던 때다. 김 여사가 운영하던 코바나컨텐츠를 여러 차례 후원했던 H 건축 대표가 윤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은 데 이어, 대통령 관저 인테리어와 용산 대통령실 청사 리모델링 설계·감리용역을 수의계약으로 수주한 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당시 적잖은 언론이 이런 잡음을 없애기 위해 김 여사를 공식적으로 보좌할 제2부속실과 대통령 친인척 비위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 임명을 제안했다. 그런데 이런 조언에 귀 기울이는 대신 세간의 관심이 잦아들면 국가의 주요한 정책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니 말문이 막힌다.
그간 대통령실 참모진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하다. 만약 서슬 퍼런 대통령 부부 눈 밖에 날까 두려워 손을 놓고 있던 거라면 녹을 먹는 공직자의 자세가 아닐뿐더러, 언젠가 돌아올 후폭풍에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지금이라도 명심했으면 한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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