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린 클라크의 문화산책] 크리스마스 시즌, 선물의 참뜻

2023. 12. 1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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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많은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나도 중학교 시절에 오 헨리의 단편소설 ‘동방박사의 선물’을 배웠다. 어느 가난한 젊은 부부의 이야기로, 각자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소유물을 팔아 상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 준다. 아내는 길고 풍성한 머리칼을 팔아, 남편이 할아버지 때부터 물려받아 애지중지하는 금시계에 달 시곗줄을 산다. 결말에 이르면 남편이 아내의 긴 머리에 꽂을 보석이 박힌 대모갑 머리빗 세트를 사 주려고 시계를 팔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선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선물을 주는 사람의 의도가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빛난다.

「 오 헨리 단편 ‘동방박사의 선물’
선물 주는 사람의 마음 드러나
친구 아들 결혼 축하한 ‘춘향가’
가야금 12줄 잘라 매듭 만들어

한국과 미국, 선물관습서 큰 차이

지난 7일 미국 워싱턴 대법원 앞에서 재연된 아기예수의 탄생 이야기. [AP=연합뉴스]

미국과 한국은 선물 주는 관습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무슨 선물을 해야 할지는 미국에서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상황에 따라 현금을 주는 관습까지 더해져 더욱 까다롭다. 한번은 현금을 주면 되는 상황인데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물건을 선물로 주는 실수도 있었다.

1990년대에 세계적 유학연구가 투웨이밍의 강의를 함께 들은 동료가 자기 아들의 결혼식에 나를 초대했다. 그는 내 음악적 동료이자 친구, 고수(高手)인 신 선생과 함께 그 결혼식에서 연주해 달라고 요청했다. 보스턴에서 첫 돌을 맞은 남자아이의 돌잔치 때 연주를 한 것이 어제 같은데, 이제 그 아기가 의사가 되어 다른 의사와 결혼을 하는 것이다. 신 선생과 내가 축주(祝奏)를 하겠다고 승낙한 시점부터 나는 어떤 결혼 선물이 좋은지 고심하기 시작했다.

이 부부가 쉽사리 구하기 어려운 품목을 어떻게 고를 수 있을까. 한국식 관습으로는 결혼식에 초대받으면 축의금을 전달하지만 이 상황에는 맞지 않아 보였다. 축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연주하려는 ‘가야금 산조’가 상징하는 바가 있고, 이 상황에 완벽하게 들어맞기 때문이다. 가야금 12줄은 1년을 상징하고, 나아가 나이 들어가는 과정까지 의미한다.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는 산조는 느린 가락으로 시작해 (어린이에게 5분은 영원과 같다) 빠른 곡조로 끝을 맺는다.(노인에게 5년은 1분과 같다) 산조의 음색과 리듬은 기쁨·슬픔·분노·용서·이해 등 결혼 생활에서 겪는 정서적인 여정의 굴곡을 따라간다. 또 나는 ‘춘향가’ 속 ‘사랑가’도 부르게 되어 있었다. 가사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자(情字) 노래를 들어라… 너와 나와 유정(有情)허니 어찌 아니 다정하리. 담담 장강수(淡淡長江水) 유유 원객정(悠悠遠客情) 하교불상송(河橋不相頌)허니 강수에 원함정(江樹遠含情) 송군 남포불숭정(送君南浦不勝情) 한남태수(河南太守) 의구정(依舊情)… 니 마음 일편단정(一片丹情) 내 마음 원형이정(元亨利情) 양인심정(兩人心情)이 탁정(托情)타가 만일파정(滿溢罷情)이 되략이면 복통절정(腹痛絶情) 걱정되니 진정으로 완정(玩情)허자는 그 정자(情字) 노래라….’

노래가 아름다운 선물이기는 하지만 결국 무형적인 것은 유형적이고 영속적인 결혼 선물을 대체하지 못한다. 노래의 감동은 마지막 음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머무르지만, 음악은 그 특성상 흘러가고 만다.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오를 때까지 나는 여전히 적당한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 공연이 끝난 후 신 선생은 그가 장구를 치면서 쓰던 궁글채와 열채를 신혼부부에게 선사했다. 그는 땅을 향해 치는 궁글채는 신부를, 하늘을 향해 치는 열채는 신랑을 상징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음(陰, 궁글채)과 양(陽, 열채)은 함께 굽이치는 태극 문양을 형성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음양 기호이다. 음과 양은 두 개의 페이즐리 모양으로 얽혀, 둥근 태양이 반달에 파고들고 달은 태양을 부분적으로 덮음으로써 서로의 일부를 포용한다. 모두가 곧바로 이 지혜로운 선물을 이해했다. 그 선물에 담긴 상징 이상으로, 신 선생은 오 헨리의 작품에 나온 부부처럼 그가 그의 예술과 일에 필요한 물건, 자신이 개인적으로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포기한 것이다.

자기가 가장 아끼는 물건 선물

신 선생의 선물에서 영감을 얻은 나는 무대 뒤편에서 12가닥 가야금 줄을 잘라냈고, 부부의 영원한 결합을 의미하는 하나의 매듭으로 묶은 뒤 화려한 리본으로 포장해 선물했다.

오 헨리는 소설 말미에 이렇게 쓴다. “모두가 아는 대로 동방박사들은 지혜로운 자들이었다… 그들은 갓 태어난 아기인 그리스도에게 선물을 바쳤다. 그들은 첫 번째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넨 사람들이다… 이 글에서 필자가 들려준 두 젊은이의 이야기는… 선물을 주고받는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이들이다. 그들이 바로 동방박사인 것이다.”

나는 신 선생을 그런 동방박사와 같다고 생각한다. 함께 연주할 때마다 나는 신 선생에게서 지혜로운 본보기라는 선물을 받는다.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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