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난기류? ‘엔솔 2.0 시대’ 이상 없다 [CEO LOUNGE]
국내 1위 배터리 업체 LG에너지솔루션이 새 사령탑을 맞게 됐다. ‘44년 LG맨’ 권영수 부회장이 떠난 빈자리에 ‘배터리 전문가’ 김동명 사장(54)이 수장으로 올라서면서 재계 관심이 뜨겁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열풍을 타고 배터리업계 대표 주자로 급성장했지만 최근 글로벌 전기차 수요가 둔화된 데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의 도전이 거세지면서 김 사장 어깨가 한층 무거워졌다.
그룹 내 배터리 전문가 두각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이사회를 열고 김동명 자동차전지사업부장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했다.
김동명 신임 사장은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재료공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 LG화학 배터리 연구센터로 입사해 연구개발(R&D), 생산, 상품기획 등 배터리 사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2014년 모바일전지개발센터장, 2017년 소형전지사업부장을 거쳐 2020년부터 자동차전지사업부를 이끄는 등 배터리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다. 특히 GM, 포드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의 합작법인을 추진하고 수주를 확대하며 성과를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생산 공법 혁신, 제품 포트폴리오 다양화 등 배터리 사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힘써왔다.
김동명 사장은 취임사를 통해 “지난 3년이 양적 성장과 사업 기반을 다진 ‘엔솔 1.0’ 시대였다면 이제는 강한 실행력을 바탕으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압도적 경쟁 우위를 확보하겠다. 이를 통해 진정한 질적 성장을 이루는 ‘엔솔 2.0’의 시대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취 지향 프로페셔널 조직 문화’를 만드는 한편 신기술, 신공정 도입으로 근본적인 원가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김 사장 지론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 LG화학에서 분사된 이후 3년간 급성장한 LG그룹 핵심 계열사다. 2020년 당시 매출 12조3720억원, 영업손실 1667억원을 기록하며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지만 최근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지난해 매출 25조5985억원, 영업이익 1조2144억원으로 단숨에 1조원 넘는 수익을 올렸다. 올 들어서도 분위기가 괜찮다. 3분기 누적 매출 25조7441억원, 영업이익 1조8250억원으로 새 기록을 다시 썼다. 3분기 만에 2020년 연간 매출보다 2배 이상 성적을 올린 셈이다.
생산능력도 껑충 뛰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글로벌 배터리 생산능력은 2020년 140GWh에서 올해 300GWh로 2배 넘게 커졌다. 고성능 전기차(1대당 80㎾h)를 370만대 생산할 수 있는 용량이다. GM,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혼다, 포드, 볼보, 토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대거 고객사로 확보하며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전기차 수요 둔화, 中 LFP 배터리 부상
당장 수치만 놓고 보면 걱정 없어 보이지만 김 사장 앞길은 녹록지 않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배터리업계에도 한파가 들이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거침없이 질주하던 전기차 시장은 최근 잇따른 악재에 시달리는 중이다. 고금리 장기화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진 데다 내연기관차보다 비싼 가격, 줄어드는 보조금 혜택, 충전 인프라 부족 영향으로 부진한 흐름을 보이는 중이다. 글로벌 전기차 1위 업체 테슬라는 최근 전기차 감산 계획을 내놨고, GM은 내년 전기차 40만대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전격 철회했다. 자동차 데이터 회사 클라우드시어리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 딜러의 평균 전기차 재고량은 올 초 36일 치에서 9월 80일 치로 급증했다.
‘불황 무풍지대’로 불렸던 중국에서조차 ‘중국판 테슬라’로 칭송받던 니오가 대규모 감원 정책을 발표해 전기차업계가 뒤숭숭한 모습이다. 이 여파로 고속 질주하던 배터리업계에도 속도 조절,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예외는 아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에서 현장직 인력 약 170명을 해고한다고 밝혔다. 전체 생산 인력(약 1300명)의 13%에 해당하는 규모다.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 튀르키예 대기업 코치와 함께 튀르키예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한 계획도 전격 철회했다. 튀르키예 현지에 배터리 공장을 지어 포드에 배터리를 공급할 계획이었지만 경영 환경 악화에 한발 뒤로 물러난 셈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3분기 누적 가동률은 72.9%로 전년 동기(75.4%) 대비 2.5%포인트 하락했다. 1분기 77.7%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줄어드는 양상이다. 공격적인 투자로 생산 역량 확장에 힘써왔지만 최근 전기차 수요 둔화로 재고가 쌓이자 생산량 조절에 나선 결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미국 완성차 업체 GM으로부터 ‘과잉 청구서’ 복병을 맞게 돼 내부적으로 비상이 걸렸다. 업계에 따르면 GM은 LG에너지솔루션에 미국 배터리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를 통해 받은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보조금의 최대 85%를 배당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AMPC는 현지에서 배터리를 생산, 판매하는 기업에 미국 정부가 사실상 직접 보조금을 주는 제도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현지에서 생산, 판매한 배터리 셀(㎾h당 35달러)과 모듈(㎾h당 10달러)에 대해 세액공제 형태로 받는 보조금이다.
GM과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합작법인 얼티엄셀즈에 절반씩 투자했다. 지분율에 따라 두 회사의 AMPC 공유 비율도 5 대 5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GM이 최대 85%까지 요구하고 나서자 LG에너지솔루션은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재계 관계자는 “오랜 논의 끝에 합작법인까지 설립한 만큼 GM의 요구를 무작정 거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의 합작법인 프로젝트가 수익 확대는커녕 결국 손실 리스크를 키우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LG에너지솔루션은 “협상 중인 내용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리튬, 니켈 등 배터리 원재료 가격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도 빼놓을 수 없는 변수다. 지난 11월 29일 기준 탄산리튬 가격은 ㎏당 109.5위안(약 2만원)을 기록해 2021년 8월 27일 이후 2년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배터리업계는 보통 원재료 가격과 배터리 판매 가격을 연동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한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h당 152.5달러였던 배터리 팩 가격이 내년 120.4달러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배터리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급선무다. 중국 이외 시장에서 CATL, BYD 등 중국 배터리 업체와의 격차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강점이 있던 삼원계(NCM) 배터리 지위를 유지하는 동시에 중국 업체 공세가 거센 중저가 시장점유율을 빼앗아오는 것이 절실하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은 저가형 LFP 배터리를 2026년부터 양산하고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도 한창 개발 중이지만 중국이 이미 내수뿐 아니라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대거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과감한 기술 격차 확보가 절실하다”고 전했다. 김동명 사장이 숱한 악재를 이겨내고 LG에너지솔루션 구원 투수 역할을 해낼지가 재계 관전 포인트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8호 (2023.12.13~2023.12.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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