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尹정부 성공 절박" 사퇴…이준석 "金, 내게 불쾌감 토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전격 사퇴했다. 지난 3ㆍ8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로 선출된 지 9개월 만이다. 총선을 불과 4개월 앞둔 시점에서 현실화된 집권 여당 대표의 도중하차에 여권이 대혼돈에 빠졌다. 특히 김 대표가 사퇴 전 윤석열 대통령에 적대적인 이준석 전 대표와 1시간가량 회동한 사실이 알려지며 정치권 안팎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9개월간 켜켜이 쌓여온 신(新) 적폐를 청산하고 대한민국의 정상화와 국민의힘, 나아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이라는 막중한 사명감을 안고 진심을 다해 일했지만,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소임을 내려놓게 돼 송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국민의힘의 총선 승리는 너무나 절박한 역사와 시대의 명령”이라며 “‘행유부득 반구저기(行有不得反求諸己ㆍ일의 결과를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의 심정으로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고 했다.
여권 위기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밝힌 김 대표는 “더이상 저의 거취 문제로 당이 분열돼선 안 된다”며 “우리 당 구성원 모두가 통합과 포용의 마음으로 자중자애하며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힘을 더 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윤재옥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당을 빠르게 안정시켜 후안무치한 민주당이 다시 의회 권력을 잡는 비극이 재연되지 않도록 저의 견마지로를 다하겠다”며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당의 안정과 총선 승리를 위해 이바지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그러나 당 대표 사퇴 여부와 함께 관심이 집중됐던 총선 불출마나 험지 출마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친윤 핵심으로 꼽히는 장제원 의원이 12일 사퇴하며 김 대표의 대표직 사퇴는 시간 문제로 여겨졌다. 이에 김 대표는 12~13일 이틀간 공식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자신의 거취를 숙고했다. 김 대표는 잠행 중 일부 당 중진 의원 및 박성민ㆍ구자근ㆍ강민국 의원 등 측근과 만나 거취 관련 의견을 청취했다. 김 대표가 이날 당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대표직 사퇴를 암시하자 유의동 정책위의장과 이만희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도 사퇴 입장 표명 및 윤재옥 원내대표 대행 체제를 준비했다고 한다.
김 대표의 사퇴로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에 이어 두 번 연속 대표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게 됐다. 2년 임기의 김 대표가 총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 사퇴함에 따라 당 지도 체제 역시 급변할 전망이다. 국민의힘 당헌에 따르면 대표의 잔여 임기가 6개월 이상일 경우 60일 이내 임시 전당대회를 열어 새 대표를 뽑거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총선이 임박한 만큼 전당대회는 열 수는 없고, 비대위로의 전환이 유력하다. 다만, 당내 일각에선 대표 궐위 때 ‘비대위를 둔다’는 규정만 당헌에 있을 뿐 비대위 전환을 언제까지 마무리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어 총선 전까지 윤재옥 원내대표 대행 체제로 갈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윤 원내대표를 비롯한 현 지도부 대부분은 일단 “원칙대로 비대위로 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윤 원내대표는 “14일 아침 8시에 3선 이상 중진 연석회의 및 최고위를 열어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당이 비대위 체제로 전환할 경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비대위원장을 맡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당 핵심관계자는 “비대위 전환은 누구를 내세워 총선을 치를 것이냐와 직결된다”며 “현재 당원의 가장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이 한 장관이다. 본인이 고사하더라도 지지자들이 끌어내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된다. 이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건 이제 4개월도 남지 않은 총선”이라며 “어수선한 당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한 장관과 원 장관 처럼 당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인사가 조기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안대희 전 대법관도 비대위원장 후보군이다. 경우에 따라 이들 중 한명이 공관위원장을 맡을 수도 있다.
전격적인 당 대표 사퇴만큼 이날 정치권에 파문을 몰고 온 건 김 대표가 이날 오전 1시간가량 이준석 전 대표와 회동했다는 사실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당내 중진 의원이 주선했다고 한다. 이 전 대표는 중앙일보 통화에서 “원래 내 거취를 논의하려 미리 잡은 일정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서 오히려 김 대표 거취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돼버렸다”고 했다.
이날 회동에서 김 대표가 자신이 거취 압박을 받게 된 과정에 대한 불쾌감을 토로했다는 게 이 전 대표의 주장이다. 이 전 대표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김 대표는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라 지금 시점에서 본인이 자리에 집착하는 사람처럼 비치는 상황 자체가 너무 화가 난다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회동을 공개한 것에 대해선 “두 사람의 공통된 의사”라고 했다.
김 대표와 가까운 인사는 “여권 위기를 불러온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를 김기현이 냈느냐”며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이 아닌 페이스북을 통해 사퇴 의사를 전달한 점은 여권 위기를 자신에게 몰아가는 세력에 대한 김 대표의 일종의 항의 표시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김 대표는 추가로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 “오늘 저는 이준석 신당 창당을 만류했다”며 “당이 분열돼선 안 되고, 신당에 참여할 생각도 전혀 없다”고 했다. 이 전 대표도 ‘김 대표와 정치적 행보를 같이 하려는 것이냐’는 질문엔 “전혀 그럴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 김 대표는 이 전 대표와 회동 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이상민 의원을 만나 국민의힘 입당도 제안했다고 한다. 정상적인 당무를 수행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두 사람의 회동에 대해 친윤 핵심 그룹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여당과 윤 대통령에게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으며 창당 및 탈당까지 예고한 이 전 대표와 사퇴 직전 만난 건 선을 넘은 행동”이라며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당내 친윤계는 김 대표가 사퇴문에 출마 여부를 언급하지 않은 데 대해선 “울산 남을 지역구를 지키려고 대표직을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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