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할 때만 '동지'...이런 관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삼권 2023. 12. 1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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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잡러 노조하다⑦] 서울시 산하 민간위탁기관에 일하는 노동자가 겪는 부조리

20년차 노동자로 여러 일을 경험했습니다. 편집자와 대리운전을 거쳐 현재 노동조합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왜 결국 노동조합이냐고요? 일 하는 사람들에게 왜 노조가 필요하고, 노조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이제부터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기자말>

[김삼권 기자]

A는 졸업 후 진로를 모색하다 노무사 시험에 도전했습니다. 노력도 했고 운도 따라줘 다행히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는 합격 후 노동법률 전문가로서 여러 선택지가 있었지만, 노동자 편에서 노동인권을 옹호하는 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생활인으로서 사는 문제도 중요하기에 근로조건과 근무 환경이 좋은 직장에서 일하기를 바랐습니다.

소비자학을 전공한 B는 홍보·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양육과 일을 병행하는 여성 노동자('직장맘')들을 지원하는 기관 홍보팀에서 계약직으로 사회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일반 사기업에 비해 급여가 낮아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자신의 업무가 공익적 활동에 기여한다는 보람도 있었습니다.

서울시 산하 민간위탁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서울시 산하 민간위탁기관에서 일하는 A와 B는 일하는 동안 겪는 모순을 토로했습니다.
ⓒ 픽사베이
두 사람 모두 현재 서울시 산하 민간위탁기관에서 일합니다. 각각 법률팀과 홍보팀에 속해 있습니다. 이들이 일하는 곳은 감정노동자와 플랫폼노동자 등 취약노동자를 지원하는 기관입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곳은 아니기에 일반적인 기업체보다는 공공기관과 유사점이 많습니다.

운영은 민간이 맡지만, 예산은 서울시에 100% 의존합니다. 서울시와 이들이 소속된 기관은 원·하청 구조입니다. 따라서 운영기관 선정과 예산 편성 권한을 쥔 사실상 원청인 서울시와는 종속적 관계에 놓입니다. 그렇다고 운영기관이 경영의 독립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지자체의 관리·감독을 받지만, 채용과 승진 등 인사행위를 비롯해 사업 집행에 있어 자율성을 갖습니다.

시로부터 이 기관을 수탁해 운영하는 곳은 비정규직 노동자 권익 활동을 하는 노동단체입니다. 그렇다 보니 사용자들은 대부분 노동운동과 관련된 인사들입니다. 흔한 말로 (노동)운동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지요. 물론 그 자체가 문제 될 건 없습니다. 오히려 취약노동자 지원 목적의 민간위탁기관을 운영하기 위한 경험이 축적된 전문가들이기도 하니까요. 이들은 노동운동 현장 경험을 살려 지자체가 위탁한 노동자 대상 교육 및 정책, 법률지원 사업 등을 운영합니다.

다만, 이들이 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기관이 곧 노동단체는 아닙니다. 또한 취약노동자를 지원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A나 B가 신념만으로 먹고사는 것은 아닙니다. 노동자 대상 업무를 한다는 것뿐이지, 이 기관에 채용된 이들은 모두 급여를 받아 생활하는 월급쟁이 노동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때로 일터에서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지워진다고 느낍니다. 

"입사 후 호봉 책정 때문에 경력산정을 하는데 노동자로서 일한 경력이 아니라, 노동단체 활동을 얼마나 했는지를 보더라고요. 노동단체 활동은 그 직무에 관계없이 경력을 100% 쳐주는데, 현재와 동일한 업무를 했더라도 사기업에서 일한 경력은 40%만 인정해 줬습니다." 

A와 B가 공통적으로 전한 호소입니다. 과거에 내가 어떤 노동을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단체나 기관에 소속됐는지에 따라 호봉이 많게는 60% 차이가 난다는 겁니다. 현재와 같은 분야라도 10년간 일반기업에서 일한 사람은 경력이 4년만 인정되지만, 다른 직무라도 노동단체에서 활동했던 사람은 10년을 모두 인정받습니다. 당연히 그에 따라 급여액도 많이 차이가 납니다. 호봉 책정 과정에서 이들은 '차별'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사기업에서 일했다고 해서 내 경력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 직원들이 사용자에게 개별적으로 제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선택적 '동지'  
 
 민간위탁노동자공대위 노동자들이 지난 2021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열린 오세훈표 반시민·반노동 예산 반대 민간위탁 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사용자의 입장은 어떨까요. 다소 모순적입니다. 비정규직 운동을 하는 노동단체이면서도, 정작 조직 내 노동자들의 불합리한 호봉 책정 등 근로조건 개선에는 소극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제기에 사용자들은 종종 "권한이 없다"고 답합니다. 시의 통제를 받는 원·하청으로 나뉜 조건이라 사용자들도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같은 기관에서 이동노동자 지원 업무를 하는 C의 호소도 떠오릅니다. 그는 "외부에 나가서 말할 때는 비정규직 권리 보호나 차별 시정을 읊조리지만, 정작 내부에선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직군을 갈라 불평등한 처우를 한다"고 토로했습니다. 실제로 기관 설립 초기에는 직군에 따라 휴가 일수도 달랐습니다.

노동을 위계화해 근로조건에 차등을 두면서도 기관 대표인 사용자는 직원들을 '동지'로 칭했습니다. 또 직원들에게 전체메일을 보내 "서울시를 상대로 노사가 다 '을'이니 우리끼리 힘겨뤄서 얻을 게 없다"라거나 "통상의 노사관계와는 다른 대안적 노사관계를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사용자는 때로 직원들을 '동지'라고 부르며, 사용자·노동자 관계를 부정하려 합니다. 전체 직원을 모두 '동지'로 칭하는 건 아니고, 선택적으로 '동지'라는 호칭을 씁니다. 동지로 호명되지 않는 직원들과 동지인 사람들의 차이는 무얼까 종종 생각해 봅니다. 적어도 나는 그 '동지'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사용자는 필요할 땐 '뜻을 같이한다'는 의미의 동등한 동지로 직원들을 호명합니다. 하지만 임금이나 근로조건 등을 말할 때는 사용자로서의 본모습을 보여주려는 듯 좀 전까지 동지로 칭한 이들을 노동자로 대하며 대립각을 세웁니다. 지난해 시의회에서 수탁기관의 운영 예산을 삭감하자 사용자가 나서서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에 자발적으로 동의해야 한다"며 취업규칙을 변경하려 한 일도 있습니다. 

물론 운영자로서 애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수십억 원 예산이 투입되는 민간위탁기관 운영권을 두고 3년마다 시와 재계약을 해야 하는 처지니, 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위치지요. 그렇게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등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할 때마다 원·하청 구조적 한계를 언급하며 피합니다.

그러나 하청 기관 사용자라도 권력의 크기가 개별 노동자와 같다고 할 순 없습니다. 제한적이더라도 사용자들은 많은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노동자들은 이런 원·하청 구조 속에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했습니다. 올해도 하청 사용자들과 단체교섭을 진행했지만, 노사 양측 입장 차이가 커 교섭은 결렬됐습니다.

"사용자들은 외부에선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 이중구조나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운영하는 민간위탁기관에선 정작 원청 눈치를 살피느라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원·하청 구조의 한계도 이해되지만, 노동을 대하는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볼 때마다 실망이 큽니다."

C의 호소입니다. 물론 자신이 선 자리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노동운동가로서 노동인권의 가치를 외치는 일도 중요하지만, 발 디딘 현실에서 민주적이고 평등한 일터를 일구는 게 보다 실천적 의미가 있는 일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을"이라거나 "동지"라는 말로, 현실에 존재하는 사용자·노동자 간 다양한 긴장과 적대를 눙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노동민간위탁분회 분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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