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단체관람 방해와 비너스 누드 사건
[김행수 기자]
▲ 서울의 한 영화관에 표시돼 있는 <서울의 봄>의 상영 안내. 2023.11.26 |
ⓒ 연합뉴스 |
12·12. 전두환을 필두로 한 정치 군인들이 하나회라는 육사 출신 장교들의 사조직을 기반으로 전방을 지키는 군부대까지 동원하여 정권을 탈취한 군사 쿠데타가 발발한 날이다.
마침 이를 소재한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이후 흥행을 이어가 700만 관객을 기록하고 곧 천만을 넘어설 전망이다.
12·12 군사 쿠데타에 대한 법적 심판은 끝났다. 애초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던 검찰의 논리는 6월 항쟁 이후 들어선 국회에서 의결한 소위 5·18 특별법에 의해 파기되었고 이 쿠데타를 주도했던 전두환·노태우 뿐 아니라 가담했던 군인들이 형사 법정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뒤이어 김영삼 대통령이 15대 대선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과 합의하여 국민 대화합을 명분으로 특별사면을 하기는 했지만 이 사건이 불법적 군사 쿠데타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으며 전두환·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 정치 군인들이 범죄자라는 사실 또한 확정된 사실이다.
모든 학생은 학교에서 이런 사실을 역사 수업 시간에, 사회 수업 시간에 배운다. 역사적으로, 법적으로 엄연히 사실로 확정된 뉴라이트 교과서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12·12 군사 쿠데타를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교사가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교육 과정이다.
그 방법이 교과서든, 영상이든 그건 수업하는 교사가, 학교가 결정할 몫이다. 가르쳐야 하는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가르칠지 결정하는 것은 교사의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권리다. 이를 좀 고상한 말로 수업권이라고 하고, 교권이라고 한다.
보수 단체, <서울의 봄> 단체 관람 방해
그런데 이걸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많은가 보다. 사회적 열풍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서울의 봄> 인기와 함께 여러 학교가 학생들에게 교육의 일환으로 이 영화를 단체 관람하기로 했다. 그것이 체험 활동의 일환이든, 교과 수업의 일환이든 아니면 학급 활동의 일부이든 학생들이 단체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연말이면 어느 학교 할 것 없이 흔히 있는 일이다.
▲ 12.12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을 이어가는 가운데 학생들에게 단체 관람을 하게 한 학교와 교사들이 보수단체와 일부 학부모의 항의와 집단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
ⓒ 인터넷캡쳐 |
특히 서울의 S중학교는 이 영화를 학생들이 단체로 관람하려고 계획했다가 논란이 걱정되어 선택 관람으로 변경하였다. 그런데 "선택으로 보는 것도 안 된다. 1명도 보게 할 수 없다"는 알 수 없는 항의가 이어지고, 급기야 이에 항의하는 어느 단체 명의로 학교 앞에 집회 신고를 내고 일과 중에 집회까지 했다.
이들의 논리는 <서울의 봄>이 좌편향, 흔히 말하는 좌빨(좌익 빨갱이) 영화라는 것이다. 학교와 교사는 이런 사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얼마 전 서울의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수학여행 여러 코스 중 하나로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가 포함된 것에 대해 인근 교회를 중심으로 일부 학부모가 집단으로 항의해 망월동 국립묘지를 수학여행 코스에서 빼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논리는 똑같다. 망월동 국립묘지(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대한민국 법으로 인정한 '국립' 묘지다)에 학생들이 가는 것이 좌편향 교육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망월동에 묻힌 영령들을 광주 폭도 어쩌고, 북한 특수부대 남파 공작원 어쩌고 하면서 전두환 등 신군부의 쿠데타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이들의 난동이다.
그런데 교사는, 학교는 너무나 무기력하다. 일부 보수 단체의 집단 민원과 항의에 교사와 학교들은 수학여행 코스를 변경해야 했으며, 학생들과 합의한, 그것도 희망자만 보게 하는 영화도 못 보는 것이 대한민국의 2023년 학교이다. 이게 대한민국 교권의 현실이다.
비단 2023년 대한민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이런 교권 침해가 전 세계적 현상이라는 객관적 사실이 교사나 학교에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한다.
▲ 프랑스 한 학교에서 르네상스 화가의 그림을 수업 시간에 보여준 교사와 학교를 둘러싼 논란을 보도한 기사 |
ⓒ BBC |
프랑스에서도 수업 시간에 등장한 한 장의 그림을 두고 학교가 들썩인다. 지난 11일 AFP, BBC 등 외신을 종합해 보면 상황은 이렇다.
프랑스의 한 중학교(Jacques-Cartier)에서 한 교사가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그림 한 장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인 주세페 체자리(Cesari Giuseppe)가 그린 '디아나와 악타이온'(Diana and Actaeon)이라는 그림으로 프랑스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다. 목욕 중인 사냥의 여신과 요정들을 몰래 봤다가 사슴으로 변해 자기 사냥개에 죽임을 당한 악타이온을 소재로 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티프로 한 그림이다.
문제의 발단은 이 그림이 그 당시 그림들이 흔히 그랬던 것처럼 등장인물들이 나체로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여신들이 나체로 그려진 그림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일부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에 항의했고, 교사를 인종차별적이며 반종교적이라 고발하는 지경에 이른다.
교사는 학생과 학부모의 이런 항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에서도 수없이 벌어지는 교권 침해의 한 장면 같다. 그런데 그다음이 우리와 다르다.
이런 학생과 학부모의 항의가 부당하다며 동료 교사들이 이 교사의 옆에 서주었다. 해당 학교 동료 교사들이 집단으로 수업 거부에 나선 것이다. 즉, 그 반에 수업을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제로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교사들은 이런 부당한 상황에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불쌍한' 이 교사에게는 함께 수업을 거부해 주는 동료 교사들이 있었다.
이 학교의 사태가 쟁점이 되자 교육부 장관이 직접 이 학교를 방문했다. 직접 학교를 방문한 가브리엘 아탈(Gabriel Attal) 프랑스 교육청소년부 장관은 "학교의 의무는 공화국 시민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학생들이 이 그림을 거부하는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교사의 편에 섰다. 나아가 이 항의와 민원을 주도한 학생을 징계하겠다고 했다.
다비드 조각상이 외설적이라고 학교에서 쫓겨난 교장
▲ 미국의 한 학교에서 벌어진 다비드 상 포르노 논쟁을 다룬 기사. |
ⓒ 인터넷 캡쳐 |
프랑스와 비슷하지만 더 황당한 일이 미국에서 벌어졌다. 지난 3월 미국 플로리다의 탤러해시 클래식 스쿨(Tallahassee Classical School)에서 수업 시간에 미술 교사가 학생들에게 다비드상을 보여주었다는 이유로 교장이 쫓겨나는 일이 벌어졌다. 취임 1년도 채 안 된 교장이 강제로 쫓겨난 것이다.
6학년의 르네상스 예술 시간에 미술교사가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아담의 창조' 그리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을 보여주었다.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그 당시의 실제 예술 작품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일부 학부모가 교사가 수업 시간에 보여준 이미지들이 "외설적"(pornographic)이고 "학생들에게 혼란을 주었다"(upset their children)라면서 학교에 항의했다. 다비드 조각상이나 비너스 등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나체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더 황당한 사태가 이어졌다. 학부모들의 집단 항의에 긴급 학교 이사회가 소집되었다. 여기서 내려진 결정은 어이없게도 교장이 물러나라는 것이었다. 이 학교의 호프 캐러스킬라(Hope Carrasquilla) 교장에게 자진 사임과 해고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최후통첩이 내려졌고 결국 교장은 학교에서 반강제로 쫓겨났다.
이 소식을 접한 이탈리아의 피렌체 시장과 미술관장(다비드 상이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음)은 직접 나서서 "예술과 포르노를 혼동하지 말고 작품의 순수함을 보라. 다비드를 포르노로 보는 건 성경은커녕 르네상스 예술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며 이 학교의 학부모, 학생, 학교이사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아무리 이 학교가 학부모들의 입김이 센 보수적인 기독교 성향의 학교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황당할 뿐이다. 세계 최고의 조각상 중 하나라는 다비드상이 누드 조각상으로 모욕받고, 세계 최고의 그림 중 하나인 '비너스의 탄생'이 누드화로 조롱당하는 일이 2023년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학교는 교사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쫓아냈다.
교권이 사라진 학교에 교육의 자리는 없다
2023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영화 <서울의 봄> 단체 관람 방해 사태, 프랑스와 미국에서 수업 시간에 교사가 보여준 예술 작품을 둘러싸고 벌어진 수업 거부와 교장 해고 사건 등은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교권 침해의 양상을 잘 말해주고 있다.
특히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면서 교사를 임금이나 부모와 같은 지위라고 해왔던 '유교의 나라' 대한민국, 개인의 자유를 그 무엇보다도 존중한다는 '자유의 나라'인 미국 그리고, 관용(톨레랑스)을 혁명의 기치로 세워진 국가인 '관용의 나라' 프랑스에서 이런 갈등이 학교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 보여주는 바가 상징적이다.
때마침 독일에서 교권 침해를 다룬 <티처스 라운지>(Teacher's Lounge)라는 영화가 비평가들의 호평 속에 곧 우리나라에서도 개봉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교권 침해는 글로벌한 현상으로 보인다. 각 나라의 사정이 다르고, 이유도 조금씩 다르겠지만 학교 안에서 교사의 권리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며, 어디까지가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인지에 대한 논쟁 그리고 이를 둘러싼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학생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도 맞다. 학부모 역시 학교 교육에 일정 정도의 권리가 있는 것도 맞다. 그러나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에 대한 권리가 무한정으로 보장될 수는 없다.
특히, 수업의 내용을 정하고 결정된 수업의 내용을 가르치는 방법에 있어서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는 교사의 가르칠 권리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수업 시간에 보여준 그림을 둘러싼 논쟁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서울의 봄> 영화 단체 관람을 둘러싼 분란은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 속 서울의 봄이 군인들의 군홧발에 짓밟혀 긴긴 겨울이 계속되었듯이 2023년 12월 대한민국의 학교는 참 쓸쓸하다. 영화 <서울의 봄> 단체 관람 방해 사태는 쓸쓸한 학교를 더 슬프게 한다. 교육당국은, 정치인들은 이 사태에 말이 없다. 내린 겨울비보다 더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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