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차별 당한 적, 아니 차별을 한 적이 있습니까

김홍규 2023. 12. 1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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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전혼잎 기자가 쓴 <가장 보통의 차별> 을 읽고

[김홍규 기자]

▲ <가장 보통의 차별> 표지 <중간착취의 지옥도>를 함께 썼던 전혼잎 기자가 새 책 <가장 보통의 차별>을 펴냈다.
ⓒ 느린서재
남보라, 박지은과 함께 2021년 <중간착취의 지옥도> 썼던 전혼잎 기자가 책 <가장 보통의 차별>을 펴냈다.
 
"너무도 당연하기에 깨닫지 못했던 '가장 보통의 차별'이다." (책, 19쪽)
 
책 <가장 보통의 차별>을 읽는 동안, 교사인 내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 있는 '차별'을 마주하게 됐다. 그것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너무 노골적이어서 '설마'하는 마음을 품고 다시 돌아본 적도 있다. 때로는 은근하게 숨어서 틈틈이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을 이 책에서 만나 깜짝 놀랐다.
변신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차별을 만나는 일은 의외로 잦았다. 책의 글쓴이는 그동안 내가 알면서도 모른 척 지나치거나 미처 깨닫지 못했던, 과거의, 그리고 진행형인 학교 안 차별을 떠올리게 했다. 대개는 내가 가해자 집단에 속했던 것 같다. "교사의 변화가 절실하다"라는 그의 말에 토를 달기가 어렵다.
 
"아무리 교권이 예전만 못하다지만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분명한 위계가 있다." (책, 75쪽)

"선생님의 나이가 된 지금은, 학생이 아니라 교사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느낀다." (책, 76쪽)

학교 안에서의 차별 
박근덕 평화인권교육센터 대표가 지난달 <2023 아동인권 보고대회>에서 발표한 '학교규칙 실태조사' 결과도 위 인용 내용을 뒷받침한다(국가인권위원회, 2023년 11월 23일~25일. '학교규칙 실태조사', <2023 아동인권 보고대회 자료집>, 125~150쪽).
 
"학생이 학생을 지도하는 기존의 선도활동 규정은 … 27%가 학생회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등학교의 경우 36%에 이른다." (<2023 아동인권 보고대회 자료집>, 134쪽)
 
"(용모/복장에 대한) 모호한 표현의 제한이 있다. … 모호한 표현이 있는 경우가 59%로 상당히 높다. … 두발에 관련된 제한을 두고 있는 학교가 많다. … 제한을 두고 있는 학교가 63% …." (같은 자료집, 135쪽)
 
"(휴대폰의) 학교내 반입을 금지하거나 일괄 수거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는 학교가 57%로 상당히 많은 학교에서 소지 자체를 제한…" (137쪽)
 
"등교시 교문지도를 한다는 비율이 79% … 학생이 교문지도를 하는 경우도 69%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 규정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다른 반 출입을 제한한다는 답변이 68%에 이르고 있다." (144쪽)
 
학생들은 일단 교문을 지나는 것부터 눈치를 봐야 한다. 아주 일찍 오지 않는 이상, 머리와 복장을 확인하는 교사나 동료 학생의 눈을 거쳐야 한다. 세 개나 되는 교문 가운데 유독 정문을 이용해야 한다. 교직원 화장실에는 '학생 출입금지' 표지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시험 기간이면 교무실 창문에는 어김없이 반말이나 영화나 포스터를 패러디한 '출입금지' 경고가 문을 지킨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복도 정숙', '다른 반 출입금지'라는 레트로 감성 물씬 풍기는 단어가 공간을 차지하기도 한다. 덥거나 추우니까 냉난방 되는 교실로 들어가서 이야기하라는 것인지,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학교는 교사들만의 개인 공간이 아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학생들의 다양한 학교생활을 지원하라고 만든 구조물이다. 사립학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개인 취향이나 필요를 우선해서 국고를 사용하는 때도 있다. 비 새는 벽면은 놔두면서 학교 안 조형물이나 교문을 바꾸는 데 돈을 쓰는 학교도 있다.

가끔은 책상과 의자도 각종 공간 배치에서도 차별의 그림자가 보인다. 교장실, 교감실은 물론, 교무실 안 자리 배치도 위계를 드러낸다. 문과 거리가 경력과 지위를 드러낸다. 교실 안 교사와 학생의 의자도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합격과 개인정보 그 사이

이제 대학입학시험 수시 결과가 본격적으로 발표되는 시기다. 벌써 어떤 학생이 특정 대학에 합격했는지가 입에 오르내린다. 개인이 어느 학교에 지원했는지는 보호해야 할 개인정보 영역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서울대에 어느 학교 누가 입학했는지 지역은 물론 도내 일간지까지 널리 퍼치고는 한다. 그 정보는 어디서 왔을까?

강원교육청에는 더나은교육추진단이란 조직이 있다. 정말로 '더 나은' 교육을 위해서는 세상에 태어날 때, 또는 자라면서 만난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의 보장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챙겨야 하는 학생, 청소년들이 얼마나 있는지 그 실태부터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어떤 지원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돈은 안 들이고 교사들만 쥐어짠다면, 지금과 비슷한 현재가 반복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국가는 모든 사람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헌법이 정한 약속이며, 국가의 책임이다. 여성, 가난, 성적,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는 부자, 돈, 치열한 경쟁, 파시즘을 향한 동경으로 이어진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모두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상대평가인 수능에서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없다. 9등급은 나올 수밖에 없다.

우월감은 열패감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본다. 미국 대학 – 서울대 – 서울 사립대 – 지역 국립대 – 지역 사립대로 이어지는 서열에서 진정한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특정 대학이 아니어서, 어떤 학과가 아니어서, 어떤 나라가 아니어서 누군가는 반드시 패배감을 느끼게 된다. 열등감은 혐오로 이어지기 쉽고, 그런 사회는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학교에서 선의로 건네곤 하는 '공부 잘한다'라는 칭찬, 별뜻 없이 건넨 '좋은 대학에 가서 대단하다'라는 격려가 알고 보면 '우승열패'의 치열한 전쟁터를 부추기는 건 아닐까. '당신은 차별을 당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학교는 오늘도 부끄러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학교 이야기만 했지만, 책은 훨씬 더 다양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다. 깔끔한 문장과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가 돋보인다. 다음은 책 뒷면 표지에 있는 소개 글이다. 이보다 더 잘 소개할 자신이 없어 그대로 옮긴다.
 
"페미니즘과 백래시,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 이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이중의 시선, 부동산으로 갈라지는 계급 전쟁, 학벌 사회에서 루저가 되는 이십 대, 노키즈 존과 노인에 대한 차별까지. 우리 사회에 공공연하게 퍼져 있지만 누구나 모른 척하고 싶어하는 불편하고 시끄러운 차별과 혐오의 민낯들." (책 뒷면 표지)
 
글쓴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쓴 <중간착취의 지옥도>(남보라·전혼잎·박지은, 2021, 글항아리)만큼이나 이 책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가슴에 박히는 가시들을 견디고 '다정'(多情)을 함께 하려는 이들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또 치사한 나지만, 제 일만 하며 살기에도 피곤한 세상에서 다정을 굳이 행하려는 이들과 나누고 싶은 글을 썼다." (책, 10~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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