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美 IAI 분석관 된 두 경찰..."CSI 보며 꿈 키웠다"

신혜연 2023. 12. 1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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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청 과학수사대 이지연 경위가 13일 서울 광진경찰서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암실에서 혈흔과 지문을 검출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이 경위의 모습. 우상조 기자

“혹시 냄새가 심한가요? 부패 시신이 있는 사건 현장에 들렀다 오는 길이라서요.”
13일 만난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 이지연(37) 경위는 자리에 앉기 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동료인 최병하(47) 경사와 함께 미국 국제감식협회(IAI·International Associatino for Identification) 현장감식 분석관 인증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두 사람은 IAI 분석관 자격을 취득한 최초의 한국 경찰관이다.

“미국 드라마 CSI 라스베이거스편에 나오는 ‘길 그리섬’을 보면서 과학수사관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는 이 경위는 2015년 순경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동경했던 과학수사관이 되기 위해 학업을 병행,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과학수사대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3년 6개월간 과학수사관으로 현장을 누볐고,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공부도 병행한 끝에 이번 시험에 합격하며 국제감식협회가 인증하는 과학 수사관이 됐다. 꿈을 이룬 것이다.

그는 “늦은 나이에 공부하려니 처음엔 힘들었다.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고, 교대 근무까지 마친 뒤 다시 수업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드라마 속 길 그리섬처럼 열정이 넘치는 과학수사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서울 광진경찰서 과학수사대 사무실 앞에서 자세를 취하는 이지연 경위. 이 경위는 경찰에 입사하기 전 일반 직장에서 5년간 회사 생활을 했다. 이 경위는 "이전 직장과 달리 경찰은 내가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보람이 크다"며 "과학수사대에 온 이후 하루 하루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이 경위와 함께 한국 1호 ‘IAI 인증 분석관’이 된 최 경사는 경영학부를 졸업한 문과 출신이다. 과학수사 관련 학위를 취득한 적은 없지만, 대신 현장에서 13년간 과학수사관으로 일하며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다. 최 경사는 “현장에서 일한지 오래됐고 그만큼 현장 경험은 많았지만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었던 상황이라 도전 정신이 발동했다”며 “사건을 처리하며 쌓은 실력을 국제 기관의 인증 시험을 통해 증명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IAI 자격시험은 현장감식, 혈흔 형태 분석, 잠재 지문 현출 등 8개 분야의 전문 자격을 인증하는 시험이다. 1915년 설립된 IAI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범죄 감식 관련 단체로 꼽힌다. 한국 경찰관의 경우 현재까지 서울청 과학수사과 소속 경찰관 14명이 1차 시험에 통과해 ‘조사관’ 자격을 취득했다. 1차 시험에 합격한 이들만 응시할 수 있는 2차 시험까지 통과하면 ‘분석관’ 자격이 주어진다. 이 경위와 최 경사가 국내에선 처음 2차 시험의 문턱을 넘었다. 마지막 3차 시험의 경우 5년 이상의 실무 경력과 대중 강연 경험 등 추가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하며, 합격시 ‘선임 분석관’ 자격을 얻는다.

IAI 인증 시험 문제는 과학수사 이론을 다룬 영어 원서 2권을 기반으로 출제된다. 합격을 위해선 4시간 동안 300문제를 풀어야 해 체력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다. 그만큼 힘든 시험이지만, 이 경위는 “주변 동료들에게도 시험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험공부를 하며 현장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도 많이 배웠기 때문이다. 그는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과학 수사에 대한 국제 표준을 배울 수 있었고, 특히 미국의 경우 O.J.심슨 사건과 같이 변호사들이 증거 능력을 깨버리기 위한 시도도 많이 하기 때문에 증거물 보존에 특히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됐다”고 말했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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