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수록 위험한 ‘청년 고립·은둔’…정부, 첫 종합대책 추진
1년 이상 3년 미만 고립·은둔 26.3%
고립·은둔 가장 큰 이유 ‘직업 관련 어려움’
81% 벗어나길 원한지만 46% 재고립·재은둔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남까지 힘들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계속 회피했다. 지금 너무 지쳐있다. 다시 일어나고 싶고 그럴 필요와 의무도 크게 느끼지만 힘이 없고, 힘도 안 난다.” (고립·은둔 청년 A씨)
“마음 놓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상담이든 뭐든 받고 싶지만 어떻게, 어느 곳에 해야 하는지 찾아보다가 포기한다.” (고립·은둔 청년 B씨)
“휴대폰으로 걸려오는 전화가 두렵고 내가 타인에게 전화 거는 것조차 무섭다.” (고립·은둔 청년 C씨)
보건복지부의 ‘2023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참여한 청년들이 남긴 답변이다. 고립·은둔 청년들이 취업 실패와 대인관계의 어려움으로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보내고 있다. 이들 10명 중 7명 이상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움의 손길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보건복지부는 13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를 보고하고, 내년부터 발굴·지원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실태조사에서 개인 정보를 공개하며 도움을 요청한 1903명은 즉시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가 고립·은둔 청년만을 대상으로 전국단위 실태조사를 벌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5월 국무조정실이 주관해 발표한 ‘2022 청년 삶 실태조사’의 후속 조치다. 지난 조사 때 고립·은둔 청년의 전국 규모(54만명)만 추산했다면, 이번 조사에선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실태를 집중 조사했다. 실태조사는 고립·은둔 청년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링크를 걸어 설문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복지부가 지난 7~8월 스스로 고립·은둔 상태에 있다고 느끼는 2만1360명의 응답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이들 중 1만2105명인 56.7%가 ‘객관적 고립·은둔 위험’ 상태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신체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72.4%)에서 불규칙하게 식사를 했고, 52.3%는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었다. 10명 중 1명 이상은 일주일 이상 옷을 갈아입지 않거나(15.8%), 목욕과 샤워를 안 한다(10.5%)고 답했다.
연령별로는 25~29세가 37%로 가장 많았다. 30~34세가 32.4%로 뒤를 이었다. 성별로는 여성 비율(72.3%)이 남성(27.7%)의 2.6배에 달했다. 고립·은둔 생활 중엔 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을 시청(23.2%)하거나, 온라인 공간에서 활동(15.6%)하고, 잠(14.1%)을 자면서 시간을 보냈다.
고립·은둔은 대개 20대부터 시작됐다. 60.5%가 20대 때, 23.8%가 10대, 15.7%가 30대부터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고립·은둔 생활을 하게 된 계기로는 24.1%가 취업 실패를 꼽았다. 대인관계(23.5%), 가족관계(12.4%), 건강(12.4%) 문제가 뒤를 이었다. 고립·은둔 기간은 1년 이상 3년 미만이 26.3%로 가장 많았지만, 10년 이상도 6.1%에 달했다. 또 자신의 방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 ‘초고위험군’도 5.7%였다.
이들 가운데 63.7%는 스스로의 정신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답했다. 특히 고립·은둔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살 위험은 커졌다. 전체 응답자의 75.4%가 자살을 생각했고, 26.7%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10년 이상 된 고립·은둔 청년은 이 비율이 각각 89.5%, 41.9%로 높게 나타났다. 지난 ‘청년 삶 실태조사’에서 청년층 중 자살을 생각해 본 사람이 2.3%인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조사에 참여한 고립·은둔 청년 D씨는 “차근차근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자립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D씨처럼 응답자 대부분이 고립·은둔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객관적 고립·은둔 위험 청년 중 80.8%가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길 원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패를 경험했다. 67.2%는 탈고립·탈은둔을 시도한 적이 있고, 45.6%가 일상 복귀를 시도했다가 다시 고립·은둔에 빠졌다.
재고립 이유로는 외출할 돈과 시간이 부족(27.2%)하고, 힘들고 지쳐서(25%)라고 했다. 필요한 지원을 묻는 중복질문에 88.7%는 ‘경제적 지원’을 꼽았다. 뒤이어 △취업과 일 경험 지원(82.2%) △혼자하는 활동 지원(81.7%) △일상생활 회복 지원(80.7%) 순이었다.
정부는 이와 같은 결과를 토대로 관계부처와 함께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이 방안은 고립·은둔 청년만을 대상으로 한 국가 차원의 첫 지원방안으로, 4개 주요 과제를 추진할 계획이다. 4가지 주요 과제는 △고립·은둔 조기 발굴체계 마련 △고립·은둔 청소년 지원 시범사업 실시 △학령기, 취업, 직장초기 일상 속 안전망 강화 △지역사회 자원연계 및 법적근거 마련 등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9월 발표한 ‘청년 복지 5대 과제’ 내용을 발전시켜 고립·은둔 청년만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첫 종합대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고립·은둔 청년들이 스스로를 자책해 사회로부터 유리되지 않도록 다양한 청년 복지정책을 통해 폭넓게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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