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붓'이 된 인공지능, 이젠 영상으로 시를 쓰네
세계 미디어아트 12팀 16점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쏟아지는 시대에 예술 영역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통해 미디어 아트의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31일까지 열리는 '럭스: 시적 해상도'전이다. 독일 작가 카르스텐 니콜라이의 '유니컬러'부터 중국 작가 카오 위시(Cao Yuxi)의 'AI 산수화' 등 미디어 아티스트 12팀의 현대미술 작품 16점을 소개한다. 세계 각 예술가가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을 자신의 '붓'으로 삼아 완성한 작품들이다.
이 전시는 지난 2021년 영국 런던에서 15만 명이 관람한 미디어 전시 '럭스: 현대미술의 새로운 물결(LUX: New Wave of Contemporary Art)'의 두 번째 해외 전시다. 전시 제목인 럭스(LUX)는 ‘빛’을 뜻하며, 부제 '시적 해상도(Poetic Resolution)'는 빛과 소리를 해상도와 주파수로 수치화해 활용하는 미디어 아트를 뜻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 중 하나는 첨단 기술과 동양화를 결합한 'AI 산수화'다. 작가가 인터넷에 있는 수많은 동양 수묵화 이미지를 활용해 완성한 8폭짜리 디지털 풍경화 병풍이다. 수많은 픽셀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그려낸 동양화인 셈이다. 화면 입자들이 물결치듯 모였다가 흩어지는 이미지에 산과 구름, 암석의 모습이 환영처럼 스쳐 간다.
MLF(마시멜로 레이저 피스트)의 '발견되지 않은 숲의 성역'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이미지를 현실 속 장면처럼 구현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아마존 우림 속 거대한 양목면 나무의 밑동과 뿌리가 인체를 닮은 모습으로 생존을 위해 땅속에서 영양분을 쭉쭉 빨아들이고 나무 전체에 전달하는 광경을 섬세한 소리와 영상으로 펼쳐 보인다. 인류와 함께 지구에 공존하는 대자연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시각화한 작품으로 손꼽을 만하다. MLF는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탐구하는 런던 기반의 아티스트 팀이다.
화면 속 걷는 모습의 사람 형상이 돌, 나무, 금속, 액체 등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담은 '트랜스피겨레이션'은 디지털 기술로 쓴 한 편의 시(詩) 같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 자체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생명의 순환을 암시하는 듯하다.
기계로 만들어진 꽃송이들이 관람객 머리 위에서 아래를 향해 끊임없이 피고 지는 '메도우(Meadow)'도 기술이 자연의 모습을 모방함으로써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돌아보게 한다.
16점의 작품은 각각 첨단 기술을 활용하고 있지만 '자연'과 '생태'에 초점을 맞춘 작업이 유독 많다는 점도 흥미롭다. 시대는 변화하지만, 예술은 자연의 경이로움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전시는 '명상적 풍경', '새로운 숭고함', '기술적 미니멀리즘', '안식처' 등 크게 4가지 주제로 나뉘어 있으며 작품은 각각 별도의 방에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현 현대미술 전시 플랫폼 ‘숨엑스’와 뽀로로 제작사로 유명한 ‘오콘’이 공동 주최했다. 이지윤 숨 대표는 "지난 30년 동안 미디어는 현대 미술의 중요한 재료로 쓰이며 예술 창작의 지평을 넓혀 왔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디지털 예술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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