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갑자기 사라진 아내... 처음 보는 '아내'가 나타났다
[김형욱 기자]
▲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사라진 그녀> 포스터. |
ⓒ 넷플릭스 |
중국영화 하면 여전히 '국뽕'이 떠오른다. 현대 중국이 강조하는 국가, 민족, 집단주의 등의 개념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핵심 주제로 삼아 영화를 만들고 국가적으로 지원, 홍보하는 것도 모자라 관객은 역대급 흥행으로 보답한다. 하여 중국 내에선 웬만한 할리우드 흥행 영화의 월드와이드급 흥행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선 힘을 못 쓰는 중국영화들이 많다.
그런 와중에 '볼 만한 중국영화가 없다'는 식의 인식이 팽배해졌다. 과거 중국에도 1980년대 이후의 '5세대(첸카이거, 장이모우 등)'와 1990년대 이후의 '6세대(장위안, 지아장커 등)' 감독들이 보여준 반체제적이고 독립적인 이야기들이 있었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격제지감을 느낀다. 그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볼 만한 중국영화'를 만들고 있지 않을까? '국뽕 아닌 볼 만한 중국영화' 말이다.
넷플릭스 영화 <사라진 그녀>가 나름의 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올해 6월에 중국에서 <소실적타(Lost in the Stars)>라는 제목으로 극장 개봉해 역대급 흥행을 이룩했다. 남편이 결혼기념일 여행 중에 갑자기 사라진 아내를 찾는다는 내용의 미스터리 스릴러로, 로버트 토머스 작가의 < Trap for a Lonely Man >을 리메이크한 동명의 1990년작 러시아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 영화 이야기에 실화 이야기를 얹었다. 재미 없기 힘들 듯.
갑자기 사라진 아내, 그리고 가짜 아내
허페이와 리무쯔는 결혼을 기념해 동남아의 발란디아로 여행을 온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내 리무쯔가 사라졌다. 보름이 지나 경찰서를 찾아가는 남편 허페이, 하지만 문전박대를 당할 뿐이다. 이제 비자 만료까지 5일 남았다. 그때 그의 앞에 중국어를 할 줄 아는 화교 정청 형사가 나타나 도와주겠다고 한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는 허페이,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자신이 리무쯔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누워 있다.
알지 못하는 여자의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허페이는 경찰에 신고하고 정청 형사가 온다. 그런데 자신을 허페이의 아내 리무쯔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리무쯔의 여권도 갖고 있고 리무쯔의 상처도 갖고 있으며 허페이와 어떻게 만나 어떻게 결혼해 이곳까지 왔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게 아닌가? 더군다나 허페이에게 정신질환이 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허페이로선 황당하기 이를 데 없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다.
그때 그의 앞에 실력 좋은 국제 변호사 천마이가 나타나 도와주겠다고 한다. 현지 사정을 매우 잘 아는 듯, 허페이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도와주고 결정적으로 허페이가 아내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가짜 리무쯔의 행각을 파헤치려는 움직임에도 동조한다. 그럼에도 일련의 사건을 5일 만에 해결하는 게 쉽지 않다. 자꾸 꼬여만 갈 뿐이다. 과연 허페이는 비자가 만료되기 전에 리무쯔를 찾는 한편 가짜 리무쯔의 거짓말을 입증할 수 있을까?
꽤 유려한 미스터리 스릴러 한 편
대략의 줄거리, 아니 한 줄 요약만 봐도 흥미가 돋는다. 결혼기념일 여행에서 아내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이내 아내를 사칭하는 여자가 나타나 모두가 속을 정도로 감쪽같이 진짜 행세를 한다니. 이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겪는 일련의 일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행 가기가 꺼려지는 일차원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만큼 영화가 만든 분위기에 빠져들었다는 말이 아닐까?
분위기에 젖어 다 보고 나면 중국영화라는 느낌이 딱히 들지 않는다. 흔히 연상되는 그런 중국영화 말이다. 비록 여기저기 빈곳과 억지가 눈에 띄지만 전체적으론 처음부터 끝까지 불안 어린 긴장감을 유지하니 만큼 꽤 유려한 스릴러 한 편이다. 더군다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니 추리하는 재미도 상당하다.
일련의 상황이 허페이의 정신질환에서 비롯된 허상인지, 리무쯔가 진짜로 사라진 것인지, 또 다른 뭔가가 있는 것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알 수 없어지고 헷갈리기만 할 뿐인 묘미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저런 요소가 툭 튀어 나오고 저게 맞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요소가 툭 튀어 나온다. 재미를 중간쯤에서 흐지부지하지 않고 끝까지 끌고가는 동력이다.
단단한 중심을 이루는 평범하고 단순한 것들
정확히 밝힐 수 없는 영화의 또 다른 동력들은 등장인물들의 또는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에 있다. '도박'과 '복수' 정도만 언급하겠다. 도박이 한 인간을 얼마나 구렁텅이로 몰고가는지, 복수가 한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행동까지 하게 만드는지. 나아가 '돈'과 '사랑'의 복잡하지만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방정식도 주요하게 작용한다. 즉 이 영화는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것들이 중심을 이룬다.
더군다나 주지했듯 군데군데 개연성이 떨어지고 어설퍼 보이는 곳들이 있다. 이 정도 퀄리티의 영화에서 유독 튀는 부분들인데, 다분히 의도적으로 느껴져 이상하다 싶었는데 극후반부에서 어느 정도 설명된다. 그럼에도 이야기와 캐릭터가 입체적일 수 있었던 건 서사가 사방으로 튀는 듯하면서도 중심이 꽤 탄탄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전체를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전이 거듭되는 영화일수록 영화 전체를 통제하는 중심이 있어야 하고 단단해야 한다.
이런 류의 소소하지만 이야기와 캐릭터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이 최근 중국 영화계에 종종 출현해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괜찮은 퍼포먼스를 내고 있다. 연극적인 매력이 다분한 영화들인데, <사라진 그녀>야말로 또 다른 중국영화들을 찾아볼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 '재미'가 있어야 영화를 보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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