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꺼내봤자 나만 쓰레기"…고립∙은둔 청년 75% "자살 유혹" [고립·은둔청년 54만명]

장서윤 2023. 12. 1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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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면 그냥 포기해 버린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말해도 어차피 내가 쓰레기가 된다. 그냥 혼자 감추고 있다가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실태조사)에 참여한 한 청년이 남긴 답변이다. 조사 결과 고립·은둔 상태에 빠진 청년 10명 중 7명 이상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반 이상 ‘객관적 위험’ 상태…‘직업 관련 어려움’ 가장 커


정부가 고립·은둔 청년만을 대상으로 전국단위 실태조사를 벌인 건 이번 조사가 처음이다. 지난 5월 국무조정실이 주관해 발표한 ‘2022 청년 삶 실태조사’의 후속 조치다. 지난 조사 때는 고립·은둔 청년의 전국 규모(54만 명)만 추산했다면, 이번 조사에는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실태를 집중 조사했다. 복지부가 7~8월 진행한 이번 실태조사에선 스스로 고립·은둔 상태에 있다고 느끼는 2만1360명이 응답을 완료했다. 분석 결과, 이들 중 56.7%(1만2105명)가 ‘객관적 고립·은둔 위험’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8874명은 심층 조사에 응했다. 고립·은둔 기간은 1년 이상 3년 미만이 26.3%로 가장 많았지만, 10년 이상도 6.1%에 달했다. 또 자신의 방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 ‘초고위험군’도 5.7%였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연령별로는 25~29세가 37%로 가장 많았다. 30~34세가 32.4%로 뒤를 이었다. 고립·은둔을 시작한 시기 역시 20대(60.5%) 때가 가장 많았다. 성별은 여성의 비중이 72.3%로 남성보다 높았다.

이들은 고립·은둔의 가장 큰 이유로 취업 실패를 비롯한 직업 관련 어려움(24.1%)을 꼽았다. 대인관계(23.5%), 가족관계(12.4%), 건강(12.4%) 등도 작용했다. 대신 고립·은둔 생활 중엔 주로 OTT 등 동영상을 시청(23.2%)하거나 온라인 공간에서 활동(15.6%)하고, 잠(14.1%)을 자면서 시간을 보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객관적 고립·은둔 위험 상태에 있는 청년들의 56.1%는 ‘신체 건강이 좋지 않다’(‘매우 좋지 않다’ 포함)고 답했다. 72.4%가 불규칙하게 식사를 했고, 52.3%는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었다. 또한 10명 중 1명 이상은 일주일 이상 옷을 갈아입지 않거나(15.8%), 목욕 및 샤워를 안한다(10.5%)고 답했다.

정신 건강 상태 역시 63.7%가 ‘좋지 않다’고 답했다. 특히 자살을 생각해 봤다고 답한 비율이 75.4%에 달했다. 26.7%는 실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전체 청년층 중 자살을 생각해 본 사람이 2.3%(‘청년 삶 실태조사’)인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김영옥 기자

10명 중 8명 “고립ㆍ은둔 상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도 응답자 대부분이 고립·은둔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객관적 고립·은둔 위험 청년 중 80.8%가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길 원한다고 답했고, 67.2%는 탈고립·탈은둔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전체 응답자 중 45.6%가 일상 복귀를 시도했다가 다시 고립·은둔을 경험했다. 주된 이유는 돈·시간이 부족해서(27.2%), 힘들고 지쳐서(25%) 등이었다.

전문가들은 고립·은둔 청년을 방치할 경우 사회적 비용 손실이 연간 약 7조 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청년재단과 연세대 연구진이 8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의 경제활동 포기로 인한 손실이 연간 6조7000억 원, 건강 악화·빈곤으로 인해 투입되는 복지 비용도 연간 2000억 원가량이 소요된다.

신재민 기자

복지부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관계부처와 함께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13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 이를 보고했다. 우선 위험 인원 조기 발굴을 위해 온라인 자가진단시스템을 구축하고, ‘원스톱 도움 창구’를 마련한다. 또 공모를 통해 4개 광역시·도를 선정, 고립·은둔 청년들을 지원하는 가칭 ‘청년 미래센터’를 설치하고 예산 13억 원을 투입해 지원사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장서윤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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