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꺼내봤자 나만 쓰레기"…고립∙은둔 청년 75% "자살 유혹" [고립·은둔청년 54만명]
“실패하면 그냥 포기해 버린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말해도 어차피 내가 쓰레기가 된다. 그냥 혼자 감추고 있다가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실태조사)에 참여한 한 청년이 남긴 답변이다. 조사 결과 고립·은둔 상태에 빠진 청년 10명 중 7명 이상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반 이상 ‘객관적 위험’ 상태…‘직업 관련 어려움’ 가장 커
정부가 고립·은둔 청년만을 대상으로 전국단위 실태조사를 벌인 건 이번 조사가 처음이다. 지난 5월 국무조정실이 주관해 발표한 ‘2022 청년 삶 실태조사’의 후속 조치다. 지난 조사 때는 고립·은둔 청년의 전국 규모(54만 명)만 추산했다면, 이번 조사에는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실태를 집중 조사했다. 복지부가 7~8월 진행한 이번 실태조사에선 스스로 고립·은둔 상태에 있다고 느끼는 2만1360명이 응답을 완료했다. 분석 결과, 이들 중 56.7%(1만2105명)가 ‘객관적 고립·은둔 위험’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8874명은 심층 조사에 응했다. 고립·은둔 기간은 1년 이상 3년 미만이 26.3%로 가장 많았지만, 10년 이상도 6.1%에 달했다. 또 자신의 방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 ‘초고위험군’도 5.7%였다.
연령별로는 25~29세가 37%로 가장 많았다. 30~34세가 32.4%로 뒤를 이었다. 고립·은둔을 시작한 시기 역시 20대(60.5%) 때가 가장 많았다. 성별은 여성의 비중이 72.3%로 남성보다 높았다.
이들은 고립·은둔의 가장 큰 이유로 취업 실패를 비롯한 직업 관련 어려움(24.1%)을 꼽았다. 대인관계(23.5%), 가족관계(12.4%), 건강(12.4%) 등도 작용했다. 대신 고립·은둔 생활 중엔 주로 OTT 등 동영상을 시청(23.2%)하거나 온라인 공간에서 활동(15.6%)하고, 잠(14.1%)을 자면서 시간을 보냈다.
객관적 고립·은둔 위험 상태에 있는 청년들의 56.1%는 ‘신체 건강이 좋지 않다’(‘매우 좋지 않다’ 포함)고 답했다. 72.4%가 불규칙하게 식사를 했고, 52.3%는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었다. 또한 10명 중 1명 이상은 일주일 이상 옷을 갈아입지 않거나(15.8%), 목욕 및 샤워를 안한다(10.5%)고 답했다.
정신 건강 상태 역시 63.7%가 ‘좋지 않다’고 답했다. 특히 자살을 생각해 봤다고 답한 비율이 75.4%에 달했다. 26.7%는 실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전체 청년층 중 자살을 생각해 본 사람이 2.3%(‘청년 삶 실태조사’)인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10명 중 8명 “고립ㆍ은둔 상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도 응답자 대부분이 고립·은둔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객관적 고립·은둔 위험 청년 중 80.8%가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길 원한다고 답했고, 67.2%는 탈고립·탈은둔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전체 응답자 중 45.6%가 일상 복귀를 시도했다가 다시 고립·은둔을 경험했다. 주된 이유는 돈·시간이 부족해서(27.2%), 힘들고 지쳐서(25%) 등이었다.
전문가들은 고립·은둔 청년을 방치할 경우 사회적 비용 손실이 연간 약 7조 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청년재단과 연세대 연구진이 8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의 경제활동 포기로 인한 손실이 연간 6조7000억 원, 건강 악화·빈곤으로 인해 투입되는 복지 비용도 연간 2000억 원가량이 소요된다.
복지부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관계부처와 함께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13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 이를 보고했다. 우선 위험 인원 조기 발굴을 위해 온라인 자가진단시스템을 구축하고, ‘원스톱 도움 창구’를 마련한다. 또 공모를 통해 4개 광역시·도를 선정, 고립·은둔 청년들을 지원하는 가칭 ‘청년 미래센터’를 설치하고 예산 13억 원을 투입해 지원사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장서윤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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