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겁먹은 병사 표정에서 죽은 아이가 보였다"
[김화빈 기자]
▲ 상관의 명령에 따라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일반 병사들의 모습 |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영화에 나오는) 장병들을 보며 우리 아이들을 떠올렸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명령을 따르면서 두려움에 떠는 그 표정에 가슴이 미어지는.." (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 박미숙씨)
"(아군 총에 맞아 숨진) 그 아이들의 죽음은 어떻게 '처리'됐을까요? 그때의 부모들은 자식의 죽음을 (신군부에게) 통보받았을 텐데 어떻게 살았을까요." (고 남승우 일병 어머니 박은정씨)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하나회'가 일으킨 '12·12' 군사 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은 군 사망 사고 유족(아래 유족)에게 군대에서 숨진 저마다의 자식들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를 보던 유족들의 눈물과 훌쩍임은 이름 모를 병사들이 상관 명령을 따르다 숨지는 장면들에서 터져 나왔다.
<오마이뉴스>는 44년 전 군사 쿠데타가 있었던 12월 12일 유족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한 뒤 신촌 소재 카페에서 집담회를 했다.
이날 집담회에는 군대에서 집단 괴롭힘(고 김상현 이병)이나 집단폭행(고 윤승주 일병), 상관의 성폭력과 2차 가해(고 이예람 중사), 군에서 급성 백혈병에 걸렸으나 제때 치료받지 못해 숨지거나(고 홍정기 일병), 훈련장에서 장갑차 사고로 숨진(고 남승우 일병) 군인들의 유족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이 참석했다.
▲ 12일 오후 3시께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과 10여 명의 군 사망 사고 유족들이 12.12 군사반란를 다룬 영화 <서울의봄>을 관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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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끝난 뒤 '병사들의 표정'을 언급해 주셨다.
박미숙(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씨: "2회차 관람인 오늘은 병사들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표정에서 두려움이 읽혔다. 상관들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의도를 갖고 행동하는데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고 들어간 아이들(일반 병사)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명령을 따랐다. (영화 속 학살은) 아군이 아군을 죽인 거다. 적군과 싸우다 우리 아이들이 죽은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죽인 거다. 죽어간 그 아이들에겐 어떤 의도도 없지 않나.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 남북 긴장이 커져 일촉즉발 전쟁 난다고 위기감이 고조됐을 때 우리 아들(고 홍정기 일병)한테 전화가 왔다. '너무 무섭다고, 잘 때도 완전군장을 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영화 속) 병사들 표정을 보며 그때의 생각이 떠올라서 너무 화가 났다. 지금도 윤석열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한 단계 더 긴장감을 고조시킬 이유가 무엇이 있나. 그러다 군대 내에서 사건 사고가 나면 결국..."
박순정(고 이예람 중사 어머니)씨: "군대가 상명하복인 건 진즉 알고 있었는데 다시 한번 '군대는 상관이 명령하면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영화 속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정우성 분)이 점점 고립되는 모습,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이 이렇게나 많았는데 점점 멀어지고 배신하는' 상황을 보며 군대는 고립되는 곳이구나 생각했다. 내 아이(고 이예람 중사)가 겪었을 고립감과 아무도 그 아이 편을 들어주지 않았을 때 느꼈을 좌절감을 떠올렸다. 언니들(군사망 유족)이 우는 소리를 옆에서 들었는데 속으로 '저 언니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울까' 생각했다."
안미자(고 윤승주 일병 어머니)씨: "3~4년 전만 해도 군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 심장이 벌렁거려서 (군을 다룬) 영화도 보질 못했다. 그래도 최대한 내가 겪은 일(현실)과 영화를 분리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반란군에 반기를 들었던, 의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했던 군인의 가족들은 불행하지 않았나.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 아들은 의문사했고, 그의 아내는 장 전 사령관 사망 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참 풍비박산 난 가정을 보며 눈물이 났다. '아 우리도 저기에 속해 있는데' 생각하면서 우리 가족의 일처럼 (감정)이입하게 됐다."
▲ 군사 반란을 저지하려는 이태신 수경사령관 역할을 맡은 배우 정우성(가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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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자(고 윤승주 일병 어머니)씨: "솔직히 (구명조끼 없이 폭우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급류에 휩쓸려 숨진) 채 상병 사망사건을 수사하다가 항명죄로 재판받고 있는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떠올랐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정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또 위기에 놓여있다. 다시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신 차려야 한다. 우리(군사망 유족)끼리 농담 삼아 20~30년 후에는 '용산의 봄'이 나오지 않을까 얘기했다."
김기철(고 김상현 이병 아버지)씨: "전두광(황정민 분)이 처음 쿠데타를 작당모의 할 때는 약했다. 위기도 여러 번 맞지 않았나.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회) 무리는 한통속으로 똘똘 뭉치지만, 이태신(정우성 분) 쪽 사람들은 사분오열됐다. 총만 없다 뿐이지 지금도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박 대령이 이태신처럼 정의를 지키려는 사람 아닌가. 우리가 힘을 보태 박 대령을 지켜야 한다. 대비도 못 하고 속수무책으로 (비극의) 역사가 반복되면 바보 같은 일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영화에서 국방부 장관이 '이태신은 수경사령관에서 해임됐다'고 마이크 잡고 크게 말하지 않나. 박정훈 대령도 마찬가지로 보직 해임됐다. (영화에서) 헌정 질서와 법을 지키려 반란군과 싸운 사람이 역적이 돼 고문당했다. 박 대령이 만약 '별의 순간'을 보는 사람이었다면, 소신을 지킬 수 있었을까. 박 대령은 '채 상병에게 네 죽음에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하지 않았나."
▲ 이태신에 맞서 바리케이드 앞에 나온 전두광(황정민 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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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봄>이 개봉 20일 만에 누적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대중의 선택을 받은 영화는 '시대정신'이 녹아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왜 <서울의 봄>을 볼까.
박은정(고 남승우 일병 어머)씨: "지금 온 나라가 검찰공화국 아닌가.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국민의) 마음이 영화(흥행)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미자(고 윤승주 일병 어머니)씨: "영화 속 장면 중 일부가 사실과 다르지만, 그래도 항상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을까. 정의를 지키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에는 작은 희망이 있다."
박미숙(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씨: "이번 영화로 (국방부 지하벙커를 지키다 반란군 총격에 숨진) 고 정선엽 병장과 (특전사령관실에 들이닥친 반란군에 맞선) 김오랑 중령이 재조명되고 재평가를 위한 움직임이 있다고 들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들의 무덤과 모교를 찾고 기리는 건 참 다행이다.
그런데 12·12 군사 반란으로 숨진 사람이 두 사람뿐이었을까? (이름 모를) 병사들도 참 많았을 텐데 그 유족들은 영화를 보긴 할까? 여전히 우리처럼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 (자식 잃은 슬픔을) 가슴에 묻고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유족들이 있다. 다들 군대가 전보다 나아졌다고 하는데 당한 사람 입장에선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느낀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선진국인데, 2016년 죽은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나는 아직도 군과 싸우고 있다. 제발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국가의 태도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2017년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계엄령 문건이 나왔고 디데이도 3월 8일로 적시돼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 촛불 집회를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불법 계엄령 문건 의혹 핵심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은 미국으로 도망간 지 5년여 만에 체포돼 내란 음모가 아닌 '군형법상 정치 관여' 등의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민주 사회라고 생각한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민주 사회에서도 쿠데타는 버젓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 12일 오후 3시께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과 10여 명의 군 사망 사고 유족 등이 12.12 군사반란를 다룬 영화 <서울의봄>을 관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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