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째로 사라졌다" 서귀포 밀림 속 유령 마을의 사연 [수산봉수 제주살이]
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는 버려진 땅이었고 죄수를 보내는 유배지였다. 지금은 이익을 노려 자본이 몰려들지만 진정으로 제주를 위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나 또한 제주 사람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 있으리라. 그런 제주인의 한과 정서를 이해하려다 제주학에 빠졌고 도민이 됐다. 키아오라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제주가 인문학을 결합한 미디어 교육의 중심이 되게 하겠다는 각오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을 설립했다. 제주는 오름의 섬인데 키아오라 바로 뒷산이 대수산봉이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기에 '수산봉수'라는 팻말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수산봉수 제주살이'는 제주학을 배경으로 제주인과 나의 일상에 사회적 발언을 실어 보내는 글이다. <기자말>
[이봉수 기자]
▲ 허물어진 벽담 초토화한 중문리 섯단마을의 허물어진 벽체 안에 자란 거대한 삼나무가 60여 년 세월의 흐름을 말해준다. |
ⓒ 이봉수 |
"중문관광단지로 알려진 중문은 제주도에서도 조천과 함께 민족의식이 강한 지역이었습니다. 일제 때는 항일운동을 이끈 선각자들이 많이 나왔고, 친일세력을 앞세운 미군정의 억압과 남한 단독 총선거에 반대해서 일어난 4.3항쟁에도 주민들이 적극 가담했죠."
제주4.3평화투어 기획위원장을 지낸 오승국 시인은 지난 2일 "저도 두 번째 가는 유령의 마을 같은 곳"이라며 4.3유적지답사단을 인적이 완전히 끊긴 서귀포시 중문동 밀림 속으로 끌고 들어간 뒤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중문2리 중심이던 섯단마을(사단마을)은 1948년 11월 11일 중산간지역 초토화작전이 시작되자 마자 마을 전체가 불타고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이들 마을이 지금까지 폐촌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뭘까?
육지를 오가며 읽은 여성작가 소설 3편
제주4.3평화재단이 연 시민아카데미의 다섯 차례 강연과 답사에 참가한 뒤, 6일간 대구와 서울에 볼일이 있어 다녀왔다. 섬 생활은 육지를 오가는 게 불편하지만 '강제독서'를 하게 되는 장점도 있다. 시외버스와 비행기, KTX와 지하철에서 뭘 읽을까 생각하다가 미리 구해 둔 소설책 3권을 여행가방에 넣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 그리고 조선희의 <그리고 봄>.
무고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했고, 결국은 우리가 연결돼 있다는 믿음을 붙잡고 소설을 썼습니다. … 작별할 수 없는 마음, 작별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는 마음 앞에 깊이 머리 숙입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주인공 경하는 광주5.18항쟁에 관한 소설을 쓰다가 악몽을 꾸게 되는데 주인공은 바로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그는 2014년에 쓴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계엄군에 대항하다 죽게 되는 중학생과 주변 인물들의 고통받는 내면 세계를 그렸다.
▲ 한강 소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광주5.18,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4.3을 기억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
ⓒ 창비, 문학동네 |
역사와 소설이 만나는 학살의 기억
폭설이 퍼붓는 밤이어서 경하는 천신만고 끝에 집에 도착했지만 앵무새는 죽어 있었다. 언 땅을 파서 앵무새의 장사를 치러준 경하는 배고픔과 추위에 비몽사몽 하다가 예전에 들은 얘기를 인선이 옆에서 얘기하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인선은 4.3 희생자 유족인 엄마 정심에게 들은 얘기를 전해주는데, 이날처럼 눈 내리는 날 심부름 다녀온 사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학살된 거였다. 인선의 집 개울 건너에는 원래 40호 안팎의 집이 있었지만 1948년 소개령 때 모두 불타 폐촌이 되고 주민들도 대거 학살됐다.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 잃어버린 마을 제주4.3평화재단 4.3아카데미 참여자 40여 명이 중산간지역 소개령으로 초토화 해 밀림으로 변한 중문지역 섯단마을을 답사하고 있다. |
ⓒ 이봉수 |
여성 작가와 주인공의 기억이 치밀한 이유
이 소설은 세 주인공, 경하·인선·정심이 모두 여성이고 작가도 여성이다. 여성들은 옛 기억을 되살리는 데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는 듯한데, 생각해 보니 모든 여성은 '기억의 귀재'가 아니던가? 어릴 때 아들, 딸을 데리고 놀이공원에라도 가면 아들은 온갖 군데 쏘다니며 많이 보는 듯한데 금방 까먹는 반면 딸은 몇 십년 지난 뒤에도 먹은 음식까지 소상히 기억해낸다. 여성 작가들의 섬세한 필치는, 깨진 유물을 감쪽같이 복원해 내는 장인의 솜씨처럼,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영국에서 출판된 장융의 <Wild Swans: Three Daughters of China>는 <대륙의 딸들>이란 제목으로 번역됐는데, 군벌 장군의 첩, 골수 공산당원, 소녀 홍위병으로 이어지는 여성 3대의 험난한 삶을 기록한 것이다. 장융은 외할머니와 어머니한테 들은 얘기로 중국 여성의 힘겨운 생활사를 복원하고, 손주이자 딸인 자신의 홍위병 시절 얘기를 덧붙인다.
<세 여자>의 주인공 주세죽·허정숙·고명자도 당연히 여성이고 조선희 작가도 여성이다. 조선희는 박헌영·임원근·김단야로 널리 알려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공산주의운동사에서 그들의 동지이자 파트너였던 '세 여성 혁명가'의 일생을 기억 속으로 부각시킨다.
▲ 조선희 소설 조선희의 소설 <세 여자>와 <그리고 봄> |
ⓒ 한겨레출판 |
"보상보다 우리가 한 일이 역사에 남아야"
이번 4·3아카데미 제1강은 김경만 감독의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를 보고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건데, 다섯 할머니의 기억으로 4·3 때 겪은 여성들의 고초와 비극을 증언한다. 4·3 관련 다큐영화를 다 봤지만, 여성의 기억이 남성보다 확실히 치밀한 것 같다. 4·3항쟁의 한 주역이던 할머니는 "보상보다 우리가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이 역사에 남았으면 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 한일소주 1962년 무렵 섯단마을을 복원하러 들어갔던 사람들이 마신 것으로 보이는 한일소주 병. 한일소주는 제주에서 60~70년대에 제조되다가 한라산소주로 바뀌었다. |
ⓒ 이봉수 |
▲ 섯단마을 샘물 섯단마을 샘터에서 평화롭게 물을 마시며 살던 주민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
ⓒ 이봉수 |
▲ 돗통시 섯단마을 폐허에 돼지를 키우는 ‘돗통시’가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사진 아래쪽에 사람이 걸터앉아 용변을 보는 통시가 있고, 가운데 서있는 사람 발 앞쪽에 돌절구처럼 생긴 것이 돼지에게 먹이를 주는 ‘돗도고리’이다. |
ⓒ 이봉수 |
상문리에서도 가장 아랫쪽 동네인 섯단마을에는 4·3 때 15가구가 화전갈이와 목축으로 살아갔는데 군경이 모두 불질러버렸다. 유적 중에 돌담과 벽담만이라도 그런대로 남아있는 데는 1962년에 복원한 곳이다. 박정희 정부가 융자를 해주고 목재를 대줘 복원된 건데, 한 해 만에 대개 하산해 다시 폐촌이 되는 바람에 찾는 이를 더욱 비감하게 한다.
섯단동산으로 이사할 당시 16가구가 살았으며 이곳에 살던 박ㅇㅇ, 정ㅇㅇ 씨 등은 중문리로 내려갔지만, ㅇㅇ락, ㅇㅇ원, ㅇㅇ성은 산으로 올랐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법정사터는 육지의 3·1만세운동 이전에 제주에서 벌어진 항일운동의 진원지였다. 일제가 무단통치와 수탈을 일삼던 1918년 10월 6일 법정사 주지 김연일과 신도·주민 등 400여 명이 중문주재소를 습격해 일본경찰 3명을 체포하고 갇혀있던 도민 13명을 구출했다. 그러나 증원병력이 오면서 68명이 체포되고 48명이 기소됐다. 결국 2명이 옥사하고 31명에게 10년 등 징역형이 선고됐다.
▲ 법정사터 솥 3.1만세운동 이전 항일운동의 진원지이던 법정사 터에 깨지고 녹슨 무쇠솥이 남아있다. |
ⓒ 이봉수 |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야 봄이 온다"
제주시내로 돌아오는 전세버스에서 오승국 시인은 "이상화 시인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읊었는데,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야 봄이 온다"고 덧붙였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야 역사가 발전하고 없으면 역사에 또 당합니다. 여기 오면 떠난 사람들밖에 없어요. 다 죽고 빈터만 남았죠."
그러고는 "4.3 때 떠난 사람들을 위해 노래 한 곡조 부르겠다"고 자청하더니 '부용산'을 불렀다. '부용산'은 목포 항도여중 교사 박기동이, 24세에 요절해 벌교 부용산에 묻은 누이를 추모해 시를 짓고, 음악교사 안성현이 16세에 요절한 여제자를 추모해 곡을 붙였다.
그런데 지리산 일대 빨치산의 애창곡이 되는 바람에 금지곡이 되고 안성현도 면직처분이 되자 신변의 위험을 느껴 월북한다. 박기동 역시 작사자임을 숨겨 전라도 일대에서 작자 미상으로 구전돼 오다가 87년 민주화 이후 해금됐다. 오승국은 '잔디만 푸르러'를 '달빛만 푸르러'로 살짝 바꿔 불렀다.
부용산 산허리에
달빛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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