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아크사 사원 폭행사건, 전쟁으로 보복한 하마스
[이준목 기자]
▲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 tvN |
2023년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Israel–Hamas war)'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테러단체 하마스의 기습공격과,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촉발된 전쟁은 벌써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들을 낳았지만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전 세계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지지 세력으로 나뉘었고, 평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증오와 복수, 그리고 각자의 정치적 이해득실에 밀려 묻히고 있다.
12월 12일 방송된 tvN 인문학 강연 <벌거벗은 세계사> 129회에서는 '끊을 수 없는 갈등, 이스라엘 VS 이슬람 근본주의'편을 통하여 중동에서 계속되고 있는 비극의 역사를 조명했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가 이날의 강연자로 나섰다.
하마스라는 명칭은 이슬람 저항 운동(Islamic Resistance Movement)'의 아랍어 약자에서 유래했다. 하마스의 사상적 기반은 이슬람 근본주의(이슬람 공동체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종교적 원리주의)를 표방하며, 이스라엘이 차지한 땅에 독립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샤리아(이슬람 율법)가 지배하는 신정국가 건설, 서구세력과 세속화를 배척할 것을 목표로 주장한다. 하마스를 비롯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의 모태는 이집트와 시리아 일대에서 1928년 설립된 '무슬림 형제단'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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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는 1922년 독립했지만 여전히 영국의 보호령으로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무슬림 형제단의 창립자인 하산 알 반나는 초등학교 교사 출신으로 무슬림들이 서양인의 영향권 하에 살아야 하는 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가 설립을 주도한 무슬림 형제단의 초기목표는 이슬람의 영광을 찾고 영국의 보호령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 왕정과 대립하면서 점차 급진화-테러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초기의 종교 단체에서 무장 단체로 변질됐다. 이 과정에서 하산 알 반나와 이집트 정부 요인들이 서로 암살을 당하는 피의 보복이 이어졌다.
여기에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건국은 중동 일대를 뒤흔든 역사적 사건이자, 이후로 이어질 기나긴 이스라엘-이슬람 세력간 분쟁의 시작이 된다. 그 빌미를 제공한 것은 영국의 '분양사기'였다.
1차세계대전을 치르던 영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아랍인들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아랍 독립국가 건설(후세인-맥마흔 서한)을 약속했지만, 불과 2년 뒤 시온주의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을 위한 거처(벨푸어 선언)를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하며 이중 계약을 시도한 꼴이 됐다.
영국은 1차대전의 승리 이후 아랍인들보다 시온주의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분노한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 항쟁(1936-1939)을 통하여 영국의 위임통치령에 반발하는 민족주의 봉기를 일으켰다. 영국은 결국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중동에서 손을 뗐고 2차대전 이후 영국에 이어 세계의 패권국으로 올라선 미국과 소련도 자연히 중동 분쟁에 개입하게 되었으나 사태를 해결하는 데는 실패했다.
1947년 UN총회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국가로 분할하는 투표가 진행된다. 여기서 유대인의 국가 건설을 인정하는 팔레스타인 분할안(UN결의안 181호)이 찬성 33표, 반대 13표, 기권 10표로 통과됐다. 가장 핵심적 이해 당사자였던 영국은 기권, 미국과 소련은 모두 찬성에 표를 던졌다. 아랍국가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주면서 팔레스타인의 아랍 영토는 94%에서 50%로 줄어들었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56%를 차지하게 됐다.
건국과 동시에 이스라엘은 전쟁의 회오리바람에 휩싸였다. 이스라엘과 아랍 세력들은 1948년부터 1973년까지 네 차례의 '중동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거듭할수록 영토를 오히려 점점 확장해나갔다.
한편으로 분쟁이 길어지면서 평화를 위한 목소리도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1979년 미국의 중재 속에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통하여 시나이반도의 이집트 반환과 이스라엘군 철수를 약속하는 최초의 평화 협정을 맺는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독립에 관한 문제는 근본적인 진전없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허용한다는 미봉책에 그쳤다.
1981년에는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추진했던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게 암살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다트 대통령은 이스라엘과의 협상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외면하고 이집트의 이익만 챙겼다는 비난을 받고 었었다. 그 뒤를 이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친서구 정책에 반발하는 무슬림 형제단을 강력하게 통제했다.
무슬림 형제단의 지도자들은 이집트를 떠나 해외로 도피했고 아랍 국가 곳곳에 지부를 건설한다. 이 중 1987년 12월 10일 아흐메드 야신에 의하여 무슬림 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로 출발한 것이 오늘날 하마스의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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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가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반 이스라엘 저항운동이었다. 1987년 이스라엘의 탄압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민중봉기인 '인티파다(1987-1993)'가 벌어지면서 시위에 가장 앞장선 하마스의 존재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하마스는 한때 같은 편이었지만 정치적 해결을 통한 온건노선으로 선회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비난하며 대이스라엘 무장투쟁이라는 독자 노선을 더욱 선명하게 했다.
1993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다시 한번 미국의 중재 하에 '오슬로 협정'을 맺고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고, 팔레스타인 역시 이스라엘의 존재 근거를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팔레스타인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자치정부를 수립하고 이스라엘은 철군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하마스는 자치정부가 아닌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주장하며 오슬로 협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마스는 수차례의 자살폭탄테러를 일으키며 저항했고, 이때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이스라엘 VS 하마스' 구도로 바뀌게 된다.
하마스는 테러로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위협했고, 이스라엘도 이에 맞서 하마스의 지도자 야신을 미사일 폭격으로 암살하는 등, 양측의 분쟁은 점점 악화된다. 또한 하마스는 무장단체에서 정치 정당으로 변신을 시도하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대표하던 파타와 대립하여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도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하마스는 2006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고 이듬해 벌어진 내전에서도 승리하며 파타를 완전히 몰아내고 팔레스타인의 권력을 장악했다. 이로서 팔레스타인 세력은 서안지구의 파타와 가자지구의 하마스로 분열됐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장악한 자치정부를 적대세력으로 규정하며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하마스와 관계된 모든 외교적 관계를 단절하기에 이른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봉쇄를 위하여 육상과 바다에 걸쳐 거대한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국경을 둘러싸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하며 가자지구를 사실상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2021년에는 하마스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약 1조 3000억원이 투입된 스마트 장벽을 추가로 건설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치면 세종시(인구 38만) 면적의 가자기구는 약 230만 명의 사람들이 거주하여 세계 최고의 인구 밀집지역으로 꼽힌다. 가자지구에서 밖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매일 검문소를 통하여 2~3시간씩 폭력과 공포 분위기를 유발하는 삼엄한 검문을 거치고 나서야 출입이 가능하다. 그나마도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이래 검문소들은 폐쇄됐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강압적이고 반인권적인 가자지구 봉쇄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하마스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강경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무장 저항을 멈추지않았다. 그리고 2023년, 하마스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기습 공격으로 이스라엘의 허를 찔렀다. 하마스의 주장에 따르면 약 5000발의 로켓을 이스라엘 영토에 발사했고,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최첨단 방공병기인 '아이언 돔'으로도 하마스의 무차별 로켓 공격을 모두 방어하는 데는 실패했다.
또한 하마스는 그동안 양측간 원거리 타격전이 주를 이루던 전술 패턴에서 벗어나, 대규모 무장병력을 이끌고 이스라엘 영토에 직접 침입하는 데 성공했다. 10월 7일 하마스는 드론 폭탄으로 이스라엘의 감시탑과 스마트 장벽을 무력화하여 침공루트를 확보했다. 무장 조직원들은 오토바이, 트럭, 패러글라이더를 동원하여 이스라엘 남부에서 음악 축제를 즐기고 있던 현장을 기습하여 사람들을 사살하고 인질로 납치했다.
이 공격으로 약 1000여 명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이러한 하마스의 기습공격이 10시간 가까이 지속될 동안, 이스라엘 정부는 속수무책이었고, 이는 세계 상위권의 군사력을 자부하는 이스라엘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줬다.
또한 하마스 측은 가자지구에 2005년 경부터 '가자 지하철'로 불리우는 약 500Km의 규모의 지하터널을 건설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터널들은 하마스의 대이스라엘 침투 및 물자 운송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이스라엘로서는 하마스가 만든 수많은 지하터널들을 얼마나 빨리 찾아내 무력화시킬 수 있을지에 전쟁의 성패가 걸려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하터널이 가자지구 내 주요 시절이나 민간인 밀집지역과 연결되어 있어서, 이스라엘 측이 폭탄으로 터널을 파괴할수록 덩달아 민간인 희생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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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단기간에 큰 피해를 줬다고 하지만 전면전에 돌입하면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하마스가 무모한 테러를 계속 포기하지 않는 데는,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팔레스타인 탄압과 강경 일변도의 정책이 명분을 주고 있는 측면도 강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만행은 하마스 못지않게 악랄했다. 이스라엘은 16년에 걸친 가자지구 봉쇄 정책을 비롯하여, 서안지구에 유대인 불법 정착촌을 건설하고 원래 거주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강제로 쫓아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한 폭력 행위도 빈번하다. 현재까지 유대인 군경과 민간인에게 살해 당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3년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벌어지면서 민간인들간 무력 충돌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이 218명, 이스라엘도 약 3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쟁의 빌미가 된 두 번째 원인은 알 아크사 사원을 둘러싼 갈등이다. 예수의 무덤이 있는 알 아크사 사원 일대는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의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그동안 이곳은 종교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하여 서로의 금기를 건드리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 4월 5일, 이스라엘 경찰이 사원에 난입하여 기도를 드리고 있던 이슬람 신자 수십명을 폭행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건은 아랍권 일대에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하마스가 이번 테러를 기획하며 '알 아크사 홍수'라는 작전명을 붙인 것도 이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무엇보다 하마스 테러의 가장 중요하고 실질적인 이유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교 추진'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미 2020년 아브라함 협정 등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아랍권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이뤄나가고 있던 상태였다. 여기에 이스라엘이 사우디와도 수교를 맺는다면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에서의 대표성을 잃고 아랍권에서 홀로 고립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전문가들은 하마스가 기습공격을 통하여 노린 것이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키시고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수교를 방해하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수교 협상은 중단됐다.
이스라엘 내부의 정치 불안과 갈등도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원인이었다. 네타냐후 정권은 지난 3월 정부의 독주를 위하여 대법원의 역할을 무력화하는 사법개혁안을 야당의 반대에도 강행 통과시켰다. 이에 반발하는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며 이스라엘은 극심한 혼란에 휩싸여있던 상황이었다.
향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 근본적인 사태 해결이 아직 요원한 가운데, 현재로서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는 '제5차 중동전쟁'으로의 확전 가능성이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를 비롯하여 아라크의 바드르, 예민의 후티 반군 등 아랍권 곳곳에서 반이스라엘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전쟁에 개입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어서 우려를 자아낸다.
또한 전쟁이 극한으로 치달을수록 고스란히 희생을 강요 당하는 것은 역시 죄없는 민간인들이다. 하마스의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과 납치로 이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인질로 납치된 이들은 240명에 이르고 이 중 어린이도 33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스라엘 역시 그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지구를 폭격했고 전기와 수도를 차단하고 외부물품의 유입마저 금지시켜 팔레스타인인들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은 수십만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은 남쪽으로 기약없는 피난을 떠나야했다.
"전쟁을 그만두십시오. 전쟁은 언제나 패배만 남길 뿐입니다."
프란체스코 교황의 간절한 호소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하마스의 시작인 이슬람 근본주의는 본래 교리에 따르며 살자는 종교적인 의미에서 출발했지만, 잔혹한 역사 속에서 이제는 맹목적인 이스라엘 타도만을 외치는 테러조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스라엘 역시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포기하면서 피가 피를 부르는 보복의 악순환을 자초했다. 서로를 맹렬하게 증오하면서도 정작 똑같은 짓을 하며 닮아가고 있는 모양새는 전쟁의 아이러니다.
최근 유엔의 휴전결의안이 미국의 반대로 부결되며 비극적인 전쟁은 또다시 시작됐다. 평화를 원하는 전 세계 시민들과 국제사회의 간절한 목소리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모두 한시라도 빨리 응답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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