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족회사에 입사한 A씨는 입사 4개월 만인 지난해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표와 대표 아들이 폭력을 휘두르고, 가족 내 불화에 대한 책임도 A씨에게 전가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이 지속된 것으로 조사됐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지난해 극단적 선택을 한 직장인 절반 가까이가 근속 5년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10명 중 3명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렸던 것으로 조사됐다.
13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2022년 자살 산재 업무상 질병판정서 85건(승인 39건·불승인 46건)을 분석한 결과, 근속연수가 5년 미만인 경우가 48%(41건)로 나타났다. 절반에 가까운 극단적 선택이 이제 막 직장에 적응하던 시기에 이뤄진 것이다. 뒤이어 5~10년인 경우가 18%, 10년 인상인 경우가 34%로 집계됐다. 이번 조사 결과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2022년 산재 자살 현황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됐다.
원인을 분석해보니, 폭행을 포함한 ‘직장 내 괴롭힘’이 29.4%(25건)으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과로(15.2%·13건), 징계·인사처분(14.1%·12건) 순으로 이어졌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 사유로 인한 극단적 선택은 80%가 10년차 미만에서 발생했다. 근속연수가 적을수록 괴롭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하지만 실제 산재로 인정된 건수는 39건으로, 승인율은 52%에 불과했다. 극단적 선택에 대한 산재 승인율은 2018년 80%, 2019년 65%, 2020년 70%, 2021년 56% 등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업무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사건 특성상 유족이 직접 사업장과 업무 관련성을 입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무법인 삶의 이양지 노무사는 “사업장 입장에선 자살 산재 협조보다 사업장 유지와 남아있는 직원들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내로 협조하려는 경향 있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4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신고를 꺼리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직장갑질119 배나은 활동가는 “자살에 대한 직접적 언급 또는 관련한 상황이 포함된 상담 메일 54건을 분석한 결과,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들이 죽음을 고민하면서도 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며 “괴롭힘 피해자뿐 아니라 신고자에 대한 보호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제재할 수 있는 조항을 마련하고, 조치의무를 위반하거나 불리한 처우를 한 사업주에게 규정과 원칙대로 처벌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직장 내 괴롭힘 인정 범위를 넓히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개선을 높여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하라노동법률사무소의 권남표 노무사는 “고인들은 생전에 고용노동부가 괴롭힘을 인정하고 시정 명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장에서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며 “사용자에 대한 괴롭힘 조사를 더 엄격하고 신속하게 하도록 하고, 괴롭힘 인정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