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 만연하던 시대, 서로를 의지해야만 하는 세 소녀
[조영준 기자]
▲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스틸컷 |
ⓒ 서울독립영화제 |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주영(박수연 분)은 고등학교 태권도 선수다. 대회를 앞두고 코치의 조언에 따라 6kg을 급하게 증량, 체급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쉽지 않지만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한다. 대회날에도 경기 초반의 전략이라며 절대 공격은 하지 말고 방어로만 일관하라는 코치의 의견을 믿는다. 의구심이 들었지만 자신의 세컨을 믿을 수밖에 없다. 결과는 패배. 아니, 이대로는 경기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코치의 조언을 무시하고 공격 한 방에 상대를 쓰러뜨렸지만 그 순간 기를 쓰고 기권을 선언한 코치로 인해 기권패를 당한다. 이후 돌아온 것은 라커룸에서의 일방적인 폭행. 그는 자기 선수의 패배보다 자신을 말을 끝까지 따르지 않은 일에 더 분노한다.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 경기는 상대팀의 사주를 받은, 마지막까지 주영이 질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이 영화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아래 우.천.사)는 폭력이 만연하던 시대를 살아가는 소녀들의 성장담을 담은 작품이다. 내일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더러운 현실 속에서 주변 어른들의 보호로부터 벗어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앞서 설명한 주영의 이야기는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무력하게 던져진 현실 속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우리를 스스로 사랑하고 지켜내는 것. 영화는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을 배경으로 세상이 혼란스럽던 종말론의 시대와 비록 천국에는 갈 수 없을 것 같지만 사랑만은 지켜낼 수 있었던 소녀들의 모습을 오버랩하며 이야기를 완성해낸다.
02.
영화는 크게 세 파트로 나뉘어 있다. 주요 인물인 세 소녀의 사정이 그려지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처음에 해당된다. 앞서 설명했던 주영의 사정처럼 다른 두 인물인 예지(이주영 분)와 성희(신기환 분)가 어떤 환경 속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 보여주는 부분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그들의 삶은 천국에 가깝기보다는 오히려 한 발짝 떨어진 곳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 사람의 환경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킴으로써 길고 긴 타이틀의 앞부분의 의미를 일부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특히 함께 운동을 했던 주영과 성희가 분리되고, 서로의 존재만 알고 있었던 주영과 예지가 함께 지내게 되는 플롯은 후반부에 일어나는 사건의 단초가 되기에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주영 엄마의 제안으로 세 사람과 민우(김현목 분)가 익산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잠시 숨을 돌린다. 각자의 시간 속에서 좌절과 무력함을 느끼던 인물 모두가 어두운 공간을 떠나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여기에 놓인다. 이들은 그 안에서 사랑을 찾고 동질감을 경험하며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끼게 된다. 후반부에 다시 한번 던져지게 되는 가혹한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여기에서 형성되는 셈이다. 이는 외부적 환경을 변화시키는 대신 인물에게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근거를 만들어주며 동력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스틸컷 |
ⓒ 서울독립영화제 |
짧은 여행이 끝나고 다시 돌아온 현실은 이들에게 여전히 더럽고 나쁘다. 이전에는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던 어른들의 거짓과 탐욕이 표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오히려 더욱 가혹해진다. 함께 오래일 수도 없고,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표현할 수도 없는 지금. 자신의 은사와도 같은 태권도부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서로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분리되고 내쫓기고 마는 현실 속에서 이들은 또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다.
영화의 후반부는 주영을 중심으로 한 예지와 성희 두 사람의 이야기를 서로 교차시키며 나아간다. 그 추악하고 끔찍한 현실을 홀로 안고 있던 성희와 이제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남을 수 없도록 내몰리는 예지의 모습이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주영에게는 서로 지지하는 두 이야기가 딜레마가 된다. 자신의 도움이 아니고서는 홀로 버틸 수 없어 보이는 성희의 현재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고 있던 예지를 향한 압력 사이에서 하나의 선택을 하도록 강요당하면서부터다. 예지와 성희에게 가해지는 것이 직접적인 폭력의 형태를 하고 있다면, 주영은 그로 인해 파생되는 상황적, 감정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마지막에는 그 역시 직접적인 폭력을 마주하게 된다.)
한 가지 다행인 부분은, 이 영화가 극의 서스펜스를 위해 자극적인 장면을 전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몇 번의 힘든 장면이 등장하기는 한다. 수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 상황까지 도달하기 위한 플롯이 잘 마련되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어려운 마음이 되고 마는 순간들이다. 특히나 그 장면 속에 놓인 피해자들이 언제나 10대 여성이었다. 한제이 감독은 이 부분에 대해 촬영 전의 대본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라고 말한다. 다만 함께했던 연출부와 해당 장면에 실제로 놓여야 했던 배우들과의 대화를 통해 기존의 표현들을 모두 지워내기로 했다고 말이다. 이해를 위한 최소한의 수위만을 드러내고, 배우들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지키고자 했다고 말이다.
04.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이 아이들이 왜 천국으로 향할 수 없는지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퀀스가 존재한다.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칠 수밖에 없었던 몸부림, 그로 인한 불가피한 상황에서의 폭력이다. 하지만 이는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왔던, 마지막에는 범죄와도 같았던 어른의 사정으로부터 아이들을 더욱 철저히 분리시키고자 하는 장치일 뿐이다. 이런 순간에까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서로를 믿고 지켜내야만 하는 작고 연약한 존재들을 그려내고 표현해 내기 위해서 말이다.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지고자 하는 소녀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래서 더 슬픈 감정이 복받친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소중한 존재를 지켜내고자 했던 마음을 마지막까지 더럽히지 않고 부끄럽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죗값을 받는 일뿐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만 같아서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하나의 잘못된 어른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꿈과 인격을 짓밟을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왜 아이들은 언제나 자신들만의 위로와 연대, 사랑으로 버티고 일어서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랑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나에겐 천국이었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떠났던 이들의 여행 장면이 생각난다. 바닷가의 지는 노을 품 속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맑게 웃고 떠들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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