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적게 하는 것이 나은 경제학적 이유

남희한 2023. 12. 1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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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과 공급은 말에도 있다... 말 값이 떨어지면 그 사람의 가치도 함께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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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한 기자]

집에서 나는 잔소리꾼이다. 게다가 잔소리의 난도도 쉽지 않다. 손에 비누칠할 땐 물을 잠그라는 말을 참 어렵게도 했다. 우선 선문답조의 말을 던진다.

"지구가 아프겠다."

아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쉽게 이해하지 못한 탓에 물은 여전히 흐른다. 말하는 요령이 없는 탓에 아이가 알아듣기를 바라며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지구가 아프겠다고~"
"……….."

졸졸졸. 영문 모르는 아이의 눈망울 같은 맑은 물이 계속 흐른다.

"물 잠그라고!!"

툭. 그제야 멈추는 물. 그냥 물 잠그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둘러말한 탓에 서로가 답답하다. 아이를 보며 일장연설을 시작한다. 지금의 깨끗한 물을 위해 몇 그루의 나무가 필요한지를 계산하고 애먼 아프리카의 아이들까지 소환하기도 한다.

습관이 쉽게 바뀔 리 없다. 매번 좋게 좋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가끔 비난조의 말이 잔소리에 섞이기도 한다.

"엊그제 어린이집에서 지구를 사랑하자며 지구 그림도 그려 와 놓고는 또 물 낭비하는 거야?"

거, 다음부턴 물 잠그라고 하면 될 것을... 내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적고 보니 정말 별로다. 아직 한참을 배우고 익혀나가야만 할, 순수하고 미숙한 존재를 떠올릴 수 있는 '어린이집에서'라는 단어 때문에 더욱 부끄러워진다.

결국 아이는 수돗물 대신 눈물을 흘리고 나는 그 모습에 침음을 흘린다. 말이 제대로 가닿지 못해 생긴 최악의 결과다. 말도 결국 생산되고 소비되는 것인데 소비자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생산자의 실책이다.

말에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된다. 원하지 않는 말은 수요가 적다. 뜻을 이해하지 못한 말 역시 수요가 많을 리 없다. 과도한 말에는 이런 원치 않는 말과 뜻 모를 말이 포함되기 마련이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다. 결국 필요 이상의 말은 소비되지 못하고 그렇게 말 값은 떨어진다. 
▲ 잔소리 수요-공급 곡선 말에도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이 존재한다.
ⓒ 남희한
 

잔소리의 "가격"이 잔소리를 듣는 이에게 요구되는 노력이나 마음가짐과 행동의 변화라고 본다면, 불편할 것이 분명한 잔소리는 최대한 적게 하는 것이 경제적인 셈이다. 게다가 많은 양의 잔소리를 생산하는 시간과 그 불필요한 말로 인한 감정 소비도 줄일 수 있다.

말의 수요과 공급

희소한 것이 가치 있다. 사람들이 소비하고 싶은 것은 희소성 있는 명품이다. 그런 면에서 나의 말은 흔해도 너무 흔했다. 보유가치가 없는 말. 대량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찾는 사람이 없어 싼값에도 팔리지 않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공급을 조절하기 위해 밭을 갈아엎는 농부의 심정으로 솟구치는 말을 삼가고 있다.

"물!"

툭. 생산된 말이 그대로 소비된다. 물도 말도 낭비가 없다. 서로 간의 약속에 의해 소비될 말이 공급되니 매우 경제적으로 발전했다. 시간과 감정의 절약은 덤이다.

"너 왜 또 그래?", "내가 전에도 말했었잖아.", "도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돼?", "이게 뭐가 어렵다고...", "네가 지금 뭘 하고 있는 줄 알아?"

다 불필요한 말이란 말이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다음에도 또 해야 할 말이며, 당사자에겐 익숙하지 않아 재발된 일이다. 불필요한 말을 더하는 것은 결국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요 이상의 말로 시간과 감정을 소비하고 말 값을 떨어뜨리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

내 잔소리의 화룡점정은 끝날 듯 끝나지 않는 후렴구였다. 한 번은 어떤 일로 화를 참지 못하고 불량한 태도를 보이는 아이를 앉혀 놓고 감화를 위해 대화를 시작했다. 반응이 시원찮은 것에 했던 말을 다른 예를 들며 또 하고 입장을 바꿔서 또 하고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 또 하다 보니 아이가 잠들어 버렸다. 저.. 저기.. 얘야?

반복된 말에 집중력을 잃고 꾸벅꾸벅 졸아 버린 것. 생각해보니 일종의 정신 공격을 당한 셈이다. 다음날 아이는 혼난 것만 기억했고 그 수많은 말에서 요점을 찾지 못했다.

아니, 대부분의 말을 "네가 잘못했어!"로 치환한 듯했고 아이의 입장에서는 "혼났다"라는 팩트만 각인되어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의 핵심은 전혀 가닿지 못했다. 그러니까, 아픈 입만큼 얻은 게 별로 없다.

말 역시 희소할수록 가치가 오른다. 풀리는 말의 양 만큼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수요가 필요하다. 상대에게 꼭 필요한 말인지 말의 양은 적당한지,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는데 많이 부족했다.

말 값과 연동되는 사람의 가치

말 값이 떨어지면 결국 사람의 가치도 함께 떨어지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항상 말뿐인 사람, 언제나 푸념만 늘어놓는 사람. 그들을 마주하면 말이 머무르지 못하고 흩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말 값을 알 수 있다면...
ⓒ 남희한
 
'내가 해봐서 아는데~ 블라블라~'

삐빅. 해당 말은 현재 시장에 널리 퍼져있습니다. 20% 저렴한 가격에 내뱉겠습니까? 참고로 해당 말은 36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생각이 말로 치환되기 전에 해당 말이 얼마의 가치를 가지는지 수치로 보여주면 좋겠다.

요즘 어쩌다 튀어나오는 '라떼 스토리' 때문에 바짝 긴장 중이다. 라떼의 푸념 패키지는 아무도 찾지 않는 1+1 혹은 떨이 상품에 지나지 않음을 아는데도 자꾸 입이 달싹거린다. 그래도 혹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수요 예측이 너무 힘들다.

이럴 때는 그냥 입 다무는 것이 최선이다. 그럼에도 말이 튀어 나왔다면, 유일하게 말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하나있다. 바로 행동이다. 그러니까 이건 내뱉은 말을 스스로 소비하는 것인데, 행동함으로써 말은 말 이상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흔히 '진심' 혹은 '솔선수범'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한번쯤은 다 겪어 보았을 텐데, 투덜대면서도 물심양면 도와주는 사람들을 대하면 그 표현이 조금 거칠고 불평이 많아도 진심이 먼저 와 닿는다. 어떤 면에선 그 불평과 나무람의 말이, 말 뿐인 사람의 온화한 말보다 더 가치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같은 값이면 비행기 탄다고 이왕이면 절제되고 온화한 말이 더 좋을 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수라는 재테크를 하고 있다면, 이참에 말 재테크도 해보면 어떨까 싶다. 이게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어 나중에 천냥빚 같은 마음의 빚을 지거나 일확천금의 기회를 날리지 않는 밑천이 될지도 모르니까.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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