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받고 싶어도”…병원 없어 다시 마약 중독 [약도 없는 마약③]
마약엔 치료 ‘약’이 없다. 마약을 끊어야만 호전된다. 마약 중독은 치료가 필요한 뇌 질환이기 때문에 혼자 힘으론 재발을 막기 어렵다. 국가 차원의 ‘약’도 없다. 치료·재활이 유일한 방법이지만, 국내 인프라는 열악하다. 해마다 마약 중독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 마약 치료 실태를 짚고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 이소희(가명·27)씨는 마약을 끊기 위해 6년을 헤맸다. 병원 문을 두드렸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마약 전문 의사가 없어 환자를 받아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알코올중독 병동에 입원해도 퇴소 후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매번 다시 약을 찾았다. 이씨는 “마약을 끊고 싶어도 어디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평생 마약을 하다 죽어야 하나 절망했다”고 털어놨다.
# 남명우(28)씨도 인천참사랑병원에 입원하려 했지만, 대기 인원이 많아 3달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일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을 받았지만, 일주일에 2번 병원에 가서 30분 상담 받는 것이 전부였다. 의사와 가족을 속이고 마약에 계속 손을 댔다.
마약 중독으로 치료받을 병원이나 시설이 크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 중독 환자들이 단약을 결심해도 치료받을 곳이 부족해 다시 마약에 빠지는 일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올해 1~10월 마약사범으로 단속된 인원은 2만2393명. 마약 범죄 특성상 암수율(검거 대비 실제 발생범죄 비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마약류 중독 치료보호기관에서 치료받은 마약류 중독 환자는 421명에 불과하다. 치료보호기관 21개 중 참사랑병원(276명), 국립부곡병원(134명)이 전체 환자의 97.3% 치료를 감당하는 실정이다. 그 외 6곳은 많아야 4명 또는 1~2명 치료보호에 그쳤고, 13곳은 환자를 1명도 받지 않았다. 최근 정부는 서울·부산·대전 3곳에 불과한 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를 내년 전국 17개소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마약 치료·재활시설도 충분치 않다. 마약중독재활센터 ‘다르크(DARC)’는 국내에선 유일하게 24시간 동안 마약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입소자들 사이에서 치료 효과가 크다는 반응이 나온다. 실제 경기도 다르크는 2019년 개소 후 거쳐 간 입소자 85명 중 60여명이 일상으로 복귀해 사회인으로 살아갈 정도로 효과가 좋다. 하지만 다르크는 전국에 경기, 인천, 대구, 김해 4곳 뿐이고 정원도 15명 내외에 불과하다. 입소를 희망하는 전화가 빗발쳐도 자리가 부족해 받아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임상현 경기도 다르크 센터장은 “엄청나게 많은 아이들이 입소하게 해달라고 전화로 호소하는데,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화상태’ 병원·시설, 원인은 정부 지원 부족
병원에서 마약 중독자 치료에 나서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예산 부족이다. 올해 배정된 마약치료 예산은 4억1000만원에 불과하다. 환자 165명의 한 달 입원치료 비용에 그치는 수준이다. 예산이 소진되면 병원에서 환자를 추가로 받기 어렵다. 올해 마약류 중독 치료보호기관으로 지정된 대구 대동병원의 박승현 부원장은 “마약중독 치료 지원금은 지자체가 부담하는 지방이양사업”이라며 “지자체 예산이 떨어지면 미수금이 발생한다. 1년까지 밀리는 일도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예산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데다 치료 난이도가 높아 ‘마약 환자를 받으면 손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박 부원장은 “마약중독 환자를 보는 것이 조현병, 알코올 중독 환자보다 훨씬 어렵다”라며 “난폭한 행동을 하거나 법적인 문제에 엮일 확률이 커 의료진 퇴사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환자들도 반기지 않는다. “마약 환자가 늘어나면 다른 정신질환으로 입원한 환자들이 ‘요새 병동 분위기가 안 좋은 것 같다’며 퇴원하기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다르크엔 아예 정부 지원이 없다. 입소자들의 입소비 월 50만원과 후원금, 전문가들의 무료 교육봉사로 운영된다. 시설을 늘리기 어려운 이유다. 임 센터장은 “정부 지원이 0원이라 운영이 힘들다”라며 “오로지 사명감으로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50만원을 내기 어려운 아이들은 낼 수 있는 만큼만 입소비를 받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치료 공백 생기자…퇴소자 2명, 다시 마약
올해 경기도 다르크에선 지자체의 행정소송으로 환자 3명이 이탈하는 일도 있었다. 주민들이 학교 인근 유해시설이 들어섰다고 민원을 넣자, 남양주시는 신고 없이 시설을 이전했다며 지난 7월 경기도 다르크 운영 중단을 골자로 한 행정명령을 내렸다. 결국 경기도 다르크는 남양주시 퇴계원에서 호평동으로 이전한 지 반년 만에, 지난 10월 둥지를 양주시로 다시 옮겼다. 그 사이 이탈한 20대 남성 2명은 각각 서울과 성남의 자택에서 마약에 또 손을 대 수감됐고, 1명은 다시 알코올 중독에 빠져 방황하고 있다.
임 센터장은 “단약하기 위해 온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 다시 마약에 손대게 만들면 안 되지 않나”라며 “시설에서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마약중독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몰아세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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