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네, '반도체 동맹' 공동성명에 담는다… 공급망 위기시 '즉각 대응'(종합)
정부, 국빈 방문 이전부터 네덜란드와 문안 놓고 치열한 협상
"동일한 가치·이념 공유국으로 가능"… 즉각적, 효율적 지원 의미
동행 기업인들도 동맹 의지 메시지, 이재용 " ASML과 파트너십 강화"
한국과 네덜란드 간 '반도체 동맹'이 양국 정상 합의로 공식 문서화된다. 일반적인 경제 협력의 의미가 아닌, 공급망 위기 발생 시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대응·지원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한국은 물론 네덜란드 역시 정부 차원에서 공동성명 문안에 특정 국가와 반도체 동맹을 명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실은 이번 국빈 방문 이전부터 네덜란드 정부와 해당 문안을 놓고 치열한 협상을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12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갖고 "양국 간의 공동성명에 긴밀한 협의를 거쳐 반도체 동맹이라는 용어를 직접 기입해 넣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과 마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발표할 공동성명에 담길 문안으로 '반도체 동맹을 구축한다', '핵심 품목의 공급망 회복력 증진을 위한 정부 간의 지식 그리고 정보 교류를 증진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김 차장은 양국 간 '반도체 동맹'에 대해 "한국과 네덜란드가 동일한 가치와 이념을 표방하는 가치 규범 공유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양국이 가치 기반의 파트너로서 사이버나 군사 방위 분야에 걸쳐 깊은 안보 외교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첨단 기술과 경제 안보에 이익이 첨예하게 걸린 반도체 분야에서도 그만큼 신뢰를 갖고 심도 있는 협의를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얘기다.
특히 공동성명에 담길 '동맹'이라는 문안에는 "모든 산업 분야, 미래의 주요 경제 안보의 핵심 이익을 결정하는 반도체 분야에서 양국이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공급망의 위기 협력을 함께 돌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분야에서 양국이 평시 각별한 협력을 도모하는 가운데 위기 발생 시에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반도체 공급망 위기 극복 시나리오를 함께 집행해 가고 이행해 가는 관계"라고 전했다.
공동성명에 '반도체 동맹'을 넣기 위한 지금까지의 노력도 털어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국빈 방문을 떠나기 전부터 매우 집중적으로 공동성명 문안에 대해, 우리 국가안보실이 네덜란드 측과 직접 치열한 협상을 벌였고 네덜란드도 깊은 고민 끝에 반도체 동맹이라는 것을 공식 명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부연했다.
앞서 윤 대통령 역시 글로벌 반도체 장비 기업 ASML 본사 방문을 앞두고 "ASML 방문은 '한-네덜란드 반도체 동맹' 관계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ASML과 삼성전자가 1조원을 투입해 '차세대 반도체 제조기술 R&D센터'를 한국에 짓기로 하고, SK하이닉스는 ASML과 'EUV용 수소가스 재활용 기술개발' 협력에 나서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상 양국 간 반도체 '협력'이 '동맹' 수준으로 격상된 결과다.
양국 정상은 물론 기업인들까지 반도체 연대에 뜻을 모았다. 윤 대통령은 ASML 본사에서 "이번 국빈 방문을 계기로 '반도체 동맹'이 더욱 굳건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고, 빌럼 알렉산더 국왕 역시 "양국 협력의 핵심이 바로 반도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순방이 네덜란드와의 반도체 동맹 구축에 있었던 만큼, 현장 참석자 모두 양국 간 경제 협력에 굵은 메시지를 꺼냈다. 윤 대통령은 "ASML의 혁신을 통해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이 한 자릿수 나노미터 시대로 진화할 수 있었다"며 "ASML의 노광장비를 이용해 생산된 반도체가 인공지능, 5G, 모빌리티 등 4차 산업혁명의 강력한 동력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양국 정부가 세계 반도체 산업을 끌고 갈 미래세대를 함께 키워내기 위해 '한-네 첨단반도체 아카데미' 개설에 합의하는 등 이번 국빈 방문을 계기로 '반도체 동맹'이 더욱 굳건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 공식 환영식부터 국빈만찬까지 일정을 함께 한 알렉산더 국왕 역시 "양국의 협력 관계가 다층적 관계로 서로 얽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양국 협력의 핵심이 바로 반도체"라고 밝혔다.
현장에 참석한 양국 기업인들도 윤 대통령의 이번 국빈 방문을 계기로 경제 협력이 더욱 강화할 것으로 기대했다. ASML의 피터 베닝크 CEO는 "최근 들어 기술의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개발비용이 급상승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치, 경제, 인력을 아우르는 국가 간 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눈길을 끌었다. 이어 "한국에 건설 중인 화성의 뉴캠퍼스 등 오늘 한국 기업들과 체결하는 MOU(업무협약)를 통해 한국과의 반도체 연대가 크게 강화되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고압가스 관련 규제 개선 사례와 같은 긍정적 변화가 한국에 차세대 EUV(노광장비) 노광장비를 공급할 수 있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세계 무역의 토대를 만들고 증권 시장을 처음으로 개장한 네덜란드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혁신의 상징인 ASML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며 "알렉산더 국왕의 한국 방문을 많은 국민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내년부터 하이닉스도 ASML과 IMEC 공동의 차세대 EUV 개발사업에 함께 참여하여 AI 시대에 대비한 고성능 반도체 개발을 본격화함과 동시에 금일 체결된 수소 리사이클링 공정을 비롯한 친환경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ASML과의 협력도 강화해 나가겠다"고 추가 협력을 예고했다.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현지 브리핑을 통해 "반도체 협력 단계를 넘어서 동맹 단계까지 나갔다"며 "설계에서부터 장비, 제조까지 다 일관된 전 과정을 같이 협력해서 동맹 관계에서 같이 해나가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재를 같이 키우고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은 진정한 반도체 동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양국의 반도체 분야 미래 세대들의 교류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ASML과 삼성전자 간 MOU와 관련해선 "우리 정부는 설치부터 운영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암스테르담=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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