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 끌고 불닭이 밀고… 말레이시아 강타한 'K-매운맛'
현지 라면 2배 가격에도 불티
불닭볶음면, K-라면 쌍두마차
맵고 자극적인 현지 입맛 사로잡아
진출 초기부터 '할랄인증' 준비
KMF 인증 받아 시장 공략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랜드마크는 페르로나스 트윈타워다. 지하 4층, 지상 88층 규모로 높이가 452m에 달하는 이 건물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빌딩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에 메르데카 118 타워(678m)가 완공되면서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란 수식어는 사라졌지만, 현지에서 페르로나스 트윈타워가 지닌 상징성은 상당하다. 말레이시아 국가 홍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건물이니 말이다.
페르로나스 트윈타워에는 수리아몰이란 말레이시아 최대 쇼핑몰이 자리한다. 그리고 이 쇼핑몰 지하에는 콜드 스토리지라는 현지인과 외국 관광객이 찾는 대형 마트가 존재한다. 이 마트에서는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식품을 하나의 진열대에서 판매한다. 이 가운데서도 단연 눈에 띄는 제품은 농심의 신라면이다. 신라면 제품만 모아놓은 별도 진열대가 있을 정도다. 말레이시아 수도의 중심, 또 그 안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라면 상품으로 우뚝 서 있는 것이다.
마트서 특별 대우받는 신라면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신라면 가격은 5개입 한 묶음에 20링깃(한화 약 6000원) 정도다. 개당 1000원 정도 하는 국내와 가격 차이가 별반 없다. 그러나 현지 여타 라면과 비교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지 라면 가격은 개당 2~3링깃(한화 600~900원) 정도. 신라면 가격의 2분의 1 수준이다. 그런데도 신라면의 인기는 마트의 특별 진열대가 대변해주듯이 치솟고 있다.
신라면의 특별 진열대는 비단 콜드 스토리지에서만의 얘기가 아니다. 콜드 스토리지가 있는 페르로나스 트윈타워에서 도보로 약 20분 떨어진 NSK 마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NSK 마트는 말레이시아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이른바 '로컬 마트'다. 이곳에서도 신라면은 특별 진열대에 모셔져 있는 인기 라면으로 꼽힌다.
신라면의 현지 인기는 매출에서도 확인된다. 농심 측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진출 첫해(2007년) 70만 달러에 불과했던 신라면 매출은 지난해 450만 달러까지 올랐다. 농심 측은 그 비결로 "K-컬쳐 인기로 한류 콘텐츠 보급이 확대되면서 K-푸드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증가했다"며 "신라면은 최근 다양한 맛 타입 확대 등을 통해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현지에 익숙하고 친숙한 브랜드로 접근하는 노력을 지속 중이다"고 전했다. 농심은 현지에서 신라면 오리지널, 신라면 블랙, 신라면 김치 등 5개 제품을 판매 중이다.
신라면과 쌍벽 이루는 불닭볶음면
삼양의 불닭볶음면도 말레이시아에서 신라면과 더불어 K-라면 인기를 이끌고 있는 쌍두마차 브랜드다. 신라면이 국물 베이스의 라면으로 현지인 입맛을 사로잡았다면, 불닭볶음면은 미고랭(볶음면) 형태의 대표 K-푸드다. 이를 방증하듯 콜드 스토리지, NSK 마트에서는 신라면과 마찬가지로 불닭볶음면 상품을 별도 진열하고 있다.
불닭볶음면은 신라면보다 8년 늦은 2015년부터 말레이시아로 수출이 이뤄졌다. 다소 늦은 진출에도 현지에서는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불닭볶음면 챌린지'가 이어질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현지 유통 관계자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예로부터 중국에서 전파된 사천요리와 인도에서 기원한 컬컬한 카레 문화가 유행했다"라며 "그만큼 맵고 자극적인 맛을 선호하는데, 불닭볶음면이 인기인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삼양 측은 불닭볶음면에 인기 비결로 '차별성'을 꼽았다. 삼양 관계자는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의 현지 소비자들은 미고랭 형태의 제품이 익숙한데, 이 중에서도 불닭볶음면처럼 매운맛 라면은 많지 않았다"며 "현지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라면이라는 평가와 함께 최근에는 까르보불닭볶음면, 치즈불닭볶음면 등 여러 매운맛을 즐길 수 있는 제품들로 시리즈를 확대해 폭넓은 소비자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철저한 사전 조사가 흥행 이끌었다
신라면과 붉닭볶음면이 흥행하는 데 숨은 비결로 작용한 건 '할랄(halal) 인증'에 있다. 말레이시아는 무슬림(이슬람교도) 국가로, 음식에는 엄격히 종교적 검수를 거친 육류를 사용한다. 이를 제도화한 것이 할랄 인증이다. 이슬람 문화가 금한 돼지고기 등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 한편 식용 육류로 허락된 소고기와 닭고기 등은 정해진 기준 아래 신성하게 도축해야만 받을 수 있다.
할랄 인증은 현지에서 제품의 존폐 여부를 가를 정도로 중요하다. 현지에서 만난 국내 한 유통 관계자는 "할랄에 대해서는 말레이시아 진출 전부터 얘기를 들었지만, 이 정도로 중요한 줄은 몰랐었다"며 "할랄 인증이 붙지 않은 제품은 아예 판매가 이뤄지지 않는 정도"라고 했다. 농심과 삼양 측은 말레이시아 진출 초기부터 이 할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한국이슬람교(KMF)을 통해 인증받아 시장을 공략 중이다.
말레이시아인들의 소비 특성을 분석한 것도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한몫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지에서 만난 또 다른 국내 유통 관계자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물건을 사는 데 있어 비교적 덜 계산적"이라며 "자신이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다른 유사 제품과 가격 비교 없이, 또 가격이 얼마를 하든 사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전했다. 다소 비싼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쿠알라룸푸르=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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