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택배 500개를 배송하는 1등 택배기사의 애환 [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

구교형 2023. 12. 13.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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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 일과 삶의 균형

[구교형 기자]

 택배 기사 (자료사진)
ⓒ 연합뉴스
30대 시절, 어느 교회 부목사를 할 때였다. 그 교회는 당시에도 설립 50년이 넘고 출석 교인이 700명이 넘는 작지 않은 규모였다. 변두리 동네의 오래된 교회였기에 3~4대에 걸쳐 출석하는 가족 교인이 많았고, 어르신들도 정말 많았다.

교회의 중심이 누구냐는 논쟁도 많지만, 분명한 것은 오래된 교회일수록 60세 이상 여자 성도가 없으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희한한 것은 이 어르신들(주로 교회에서 권사라고 불림)은 집이든 교회든, 뜨끈한 방에 누워계실 때면 안 아픈 데가 없다고 끙끙대지만, 일단 할 일만 주어지면 언제 그랬냐 싶게 무서운 전사로 변신한다. 쓸고, 닦고, 음식 만들고 쉼 없이 일하다가 집에 가시면 또 끙끙 앓는다.

그때는 그게 이상해 보였다. 일하실 때를 보면 평소 괜히 엄살떠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우리 동료 기사나 나 자신을 봐도 충분히 이해된다. 오히려 집에 있을 때는 기력도 없고 이곳, 저곳 쑤시는데 막상 일을 나가면 갑자기 활기차게 후다닥 뛰어다니고, 번쩍번쩍 물건을 들고, 얼굴에 생기가 돈다. 누구나 일해보면 내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과 삶

'우리에게 일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경우 '직업' '직장'을 생각할 것이다. 물론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은 먹고 살아가는 수단, 곧 호구지책이다. 그래서 신입생을 모집하려는 대학도 이제는 실용적 가치, 취업을 학교 운영의 최고 목표로 내세운다.

물론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땀 흘려 일하고 이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자신의 만족을 누리고, 가족 등 누군가를 위해 이를 쓸 때 느끼는 보람과 희열은 말로 할 수 없다. 가장에게 그것은 더 특별한 기쁨이다.

우리 택배기사들이 늘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여전히 그곳에 남아 일하고 있는 것도 자신과 가족을 부양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이다. 5년 이상 택배 일을 하다 보면 지역도 업무도 패턴이 일정해 배송 일 자체는 특별히 어려울 게 없다. 가장 힘든 것은 무슨 일이 생겨도 사정에 따라 비우거나 멈추지 못하고 늘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게 바로 책임이고, 일의 무게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서만 일하는 건 아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자기 마음에 닿는 일을 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 그의 만족도와 피로감은 전혀 다르다. 자기 재능과 관심, 배우고 살아온 경험에도 맞을 때 능률과 일의 즐거움이 배가될 것이다.

사실 감사하게도 나는 거의 대부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왔다. 어려서부터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고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청년 때부터 시민사회운동에 발을 디디게 되었는데, 지금껏 그 영역을 떠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또, 언젠가부터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세상과 이웃을 섬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는데, 지금껏 목사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또, 50세가 넘어갈 무렵 그동안 가족부양에 부실했음을 뒤늦게 깨닫고 부업을 하되 머리보다는 몸을 쓰고 싶어서 택배와 대리운전을 시작했는데, 지금껏 필요할 때마다 부름을 받고 나도 기쁘게 일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때마다 깨닫는 게 무슨 일이든 그 일을 하는 의미를 나 스스로 발견하려고 노력하면 훨씬 신나고 능률도 높여 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걸 프로의식이라고 하면 좋을까? 일한다고 해서 누구나 직업 정신, 프로의식이 생기는 것 아니다. 그래서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참 중요한 것 같다.

그러나 놓치기 쉬운 것도 있다. 일해서 돈을 벌든 보람을 찾든, 결국 그것도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의 더 멋지고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특히 젊은이들이 일에 미쳐 삶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워라밸' 곧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더 젊은 시절, 일 중독자에 가까웠던 나는 이런 생각이 어색했지만 갈수록 중요함에 공감하고 있다.

가까운 내 동료는 매일 400~500개를 배송하며 우리 대리점에서 수익 최상위권에 속한다. 그런데 적지 않은 나이에 온몸이 아프지 않은데가 없고 늘 쫓겨 살아간다. 아이가 어려 더 벌어야 한다는 말도 맞지만, 가족과 함께 놀러 다닐 수 있는 시간도 점점 줄어가는 모습은 옆에서 보기도 짠하다. 돈도 중요하지만 여가 시간을 충분히 즐길 줄 알고 모은 돈을 가지고 1년 정도 해외에 나가 거침없이 사는 걸 우리는 생각조차 못해봤다.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
 
 개척한 지하교회가 장마철 물난리 겪었을 때 닦고 말리기 (2011년)
ⓒ 구교형
 
그러나 일이라는 게 꼭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그래야만 보람된 것도 아니다. 평생은 아니지만, 싫은 일도 주어지면 열심히 해보는 가운데 정말 하고 싶은 걸 찾게 된다. 돈을 벌고,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만큼이나 일을 대하는 자세를 익히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일하는 기본자세를 배우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우리 터미널에는 매일 20명 가까운 아르바이트하는 분이 있다. 그중에 유독 마음에 닿는 이는 20대 초반 남자 청년이다. 크지 않고 마른 체형에 곱상하게 생겨 일하러 나오는 모습을 보면 아빠 마음이 발동해 항상 안쓰럽다. 그래서 나는 얼굴을 대할 때마다 먼저 말을 건네고 덕담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 청년이 예상과는 다르게 꽤 롱런하고 있다. 내가 본 것도 벌써 2년째 접어든다. 요즘 청년 알바라면 카페나 편의점이 대세인데 남들은 꺼리는 현장 알바를 아랑곳없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참 대견하다. 지금은 못 느끼겠지만, 그 청년에게 지금의 경험은 세월이 흐를수록 두고두고 좋은 밑바탕이 되어 그를 성장시킬 것이다.

세상에 그냥 이루어지거나,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 어떤 것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항상 있다는 것은 당연히 그렇게 된 게 아니라 누군가 그걸 챙겨보며 관리하고 계속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다. 그냥 '돈 받으니까 당연하지'라고 넘길 일은 아니다.

나도 처음 개척교회를 시작했을 때 주일(일요일)에는 목사로서 설교, 교육, 심방 같은 목회 일에 전념했지만, 그날의 일상적인 작동을 위해서 미리 할 일이 많았다. 가장 중요한 게 청소와 관리였다. 강단과 예배실, 방마다 물건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화분에 물도 준다. 그리고 의자와 탁자 등의 줄을 다시 맞춰 정열한다. 특히 세면장과 겸한 화장실 관리가 중요하므로 물청소와 변기 청소, 화장지 점검 등 소홀함이 없도록 챙긴다.

물론 예배 후 교인들도 설거지, 청소를 하고 가지만, 역시 주말에는 내가 다시 손을 봐야 한다. 이렇게 두 시간 정도 일하면 한겨울에도 땀이 날 정도로 힘이 들지만, 마음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교인들은 익숙한 풍경의 익숙한 배치라서 아무런 느낌이 없겠지만, 그걸 위해 나는 매번 최선을 다했고 그게 큰 보람이고 목회의 재미 중 하나였다.

사실 나도 전에는 몰랐다. 개척교회를 하기 전 규모 있는 교회 부목사로 일할 때는 청소와 관리는 따로 담당하는 직원이 있었기에 나도 늘상 보는 풍경에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군가, 무엇인가를 늘 돌보고 살피는 손길이 있음이 새삼 감사하게 느낀다. 표나지 않고 상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태복음 6장 26, 28~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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