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고 싶다" 10대 홀렸다…잘 나가던 유튜브 '술방' 제동
“건강에 안전한 음주란 없다.”
지난 1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런 제목의 성명을 내놨다. 일주일에 맥주 3.5L(하루 500mL)를 마시는 정도의 가벼운 알코올 섭취로도 암 발생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방사선, 담배 등과 함께 술을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국립암센터가 실시한 ‘대국민 음주 및 흡연 관련 인식도 조사’ 결과 한국인 66.4%는 이 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하루 1~2잔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도 18%나 됐다.
음주폐해에 대한 인식이 낮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장관 조규홍)는 지난 2008년부터 매년 11월을 ‘음주폐해 예방의 달’로 지정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술자리가 많은 연말연시에 음주로 인한 사건·사고가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하루 평균 13.5명이 알코올과 관련해 사망하고 있으며(2022 통계청),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15조800억으로, 흡연·비만보다도 높다.
‘1군 발암물질 권하는 사회’…복지부, 음주폐해예방 노력
복지부는 지난달 30일에는 WHO의 선언과 동일한 메시지를 담은 ‘안전한 음주는 없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23 음주폐해 예방의 달 기념행사’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개최했다. 음주폐해 예방사업을 실천하는 전문가 및 유관기관, 대학생 절주 서포터즈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올 한해 음주폐해 예방에 기여한 개인 9명, 단체 10곳에 장관 표창이 수여됐다.
이날 행사에서는 지난 2017년 처음 발표된 ‘미디어 음주장면 가이드라인’을 6년 만에 보완한 개정판도 발표됐다. 개정판에는 기존 10개 조항에 2개 조항이 신설되고, 1개 조항이 소폭 개정됐다. 새로 추가된 조항은 ▶음주 행위를 과도하게 부각하거나 미화하는 콘텐트는 연령 제한 등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의 접근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경고 문구 등으로 음주의 유해성을 알려야 한다 등이다. 음주가 불가피하게 등장하는 경우 연령 제한 설정 등으로 청소년의 접근을 제한하고, 화면에 ‘지나친 음주는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등의 자막을 띄워야 한다는 의미다.
신설 조항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유튜브 등의 미디어를 중심으로 음주를 전면에 내세우는 콘텐트가 범람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TV 프로그램과 달리 OTT·유튜브는 방송법 및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아 흡연·음주 장면 관련 규제에서 자유로운 상황이다.
지난해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음주 관련 OTT 프로그램 10가지를 모니터링한 결과, 총 96편에 음주 장면이 등장한 횟수는 249회(편당 평균 2.6회)에 달했다. 유튜브의 경우 ‘술방(술 마시는 방송)’ ‘음주방송’ 등으로 검색되는 영상 중 상위 100개의 평균 조회 수는 80만회에 육박했고, 90%의 영상에는 음주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거나 과음·폭음하는 등의 장면이 담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청소년 계정의 접근을 차단한 영상은 한건도 없었다.
음주장면 본 10% ‘술 마시고 싶다’…“미디어 문화 개선해야”
이러한 미디어 속 잦은 음주 묘사는 음주에 대한 관대한 인식을 청소년들에게 퍼뜨릴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2022 청소년 음주인식 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고교생 약 10%는 드라마·예능의 음주장면을 시청한 후 술을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다.
미디어 업계의 자율적인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3 국정감사 이슈 분석’에서 “OTT 영상물 유통이 광범위하고 속도도 빠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청소년 보호를 위한 업계의 자율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음주폐해 예방의 달 기념행사에서 “주류광고 외에도 드라마·영화·예능에 나오는 음주장면은 술에 대한 친숙함을 갖게 한다”며 “이번 ‘음주 미디어 가이드라인’ 개정이 음주에 관대한 미디어 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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