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거장들 왜 거기서 나와? 한국인에 딱인 '루이비통의 맛' [더 하이엔드]
조희숙, 박성배, 조은희, 강민구, 이은지. 이름만으로도 걸출한 한식 셰프들이 뭉쳐 하나의 식당을 냈다. 그런데 그 장소가 놀랍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루이 비통 매장이다. 이번 한식과 프랑스 럭셔리의 만남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어떻게 모였을까.
우리 루이 비통(Woori Louis Vuitton).
이번 루이 비통의 팝업 레스토랑 이름이자 컨셉이다. 한식 파인 다이닝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한식공간의 조희숙 셰프를 수장으로 온지음의 박성배·조은희 셰프,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 리제의 이은지 셰프가 모였다. 한 명 한 명이 미슐랭에 이름을 올리거나 조명 받는 걸출한 셰프들인데, 이들을 모이게 한 루이 비통의 힘이 고맙게까지 느껴진다. 하나로 묶기엔 너무도 개성 강한 이들이기에 ‘우리’라는 이름 또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리 루이 비통은 지난 11월 1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의 4층 공간에 문을 열었다. 공간 인테리어부터 그릇·소품까지 곳곳에 우리의 문화 요소를 담아냈다. 한식 지평을 넓힌 국내 최정상 셰프들의 하모니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치솟는데, 루이 비통의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 문화를 녹여낸 공간과 프리젠테이션까지 더해졌다는 것은 루이 비통의 역대 팝업 레스토랑보다 이번 다이닝이 기대되는 이유다.
우선 공간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쪽빛을 테마로 잡았다. 한지 질감을 표현한 천장 장식과 쪽빛으로 포인트를 준 우드톤의 대형 벽 설치물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 음식은 셰프들의 개성을 잘 보여주는 메뉴로 구성됐는데, 이를 담아내는 그릇과 커트러리 등 테이블웨어는 이번 팝업 레스토랑에 맞게 새롭게 세팅했다. 다섯 명의 우리 루이 비통 셰프들을 직접 만나 협업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이 모인 동력은 조희숙 셰프였다. 평소 친밀하게 지내는 사이인 이들은 조희숙 셰프의 “루이 비통과 함께 해보자”는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Q : 루이 비통과의 협업,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조희숙 “루이 비통이라는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은 개인에겐 큰 영광이고, 특히 우리 식문화를 포함해 한국 고유의 문화가 어떻게 재해석돼 전달될지 기대감에 협업을 결정했습니다.”
박성배 “한식 장인을 키우고자 오랜 시간 노력한 온지음의 한식을 루이 비통에서 선보인다는 것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강민구 “한식과 한국 문화가 많은 관심을 받는 이때, 한식과 패션의 크로스오버는 꽤 의미 있는 행사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제가 많은 영향을 받은 한식 셰프님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에 더 하고 싶었어요.”
Q : 한 분 한 분이 한국 파인 다이닝계의 거장이신데요. 개성 강한 거장들이 모여 하나의 코스를 만든다는 게 어려웠을 거라 예상합니다.
조희숙 “저를 거장이라고 하는 것엔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거장이라고 한다면 그것까지 해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강민구 “같이 더불어 간다는 것은 자기 모양을 다듬어내고 깎아내고 또 상대의 모양에 맞추는 과정이 필요해요. 저희는 모두 각자의 것이 분명하지만, 자기 것을 양보하고 내놓을 수 있는 인간적인 관계가 먼저 형성돼 있는 셰프들이 모였어요. 우리도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여기서 펼쳐보고, 음식을 통한 소통이 우리 사이에서도 점점 더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 코스 구성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조희숙 “서로의 요리를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고 또 레스토랑에 오는 고객층에게 맞을 수 있는 두 가지 포인트에 집중해 각자 메뉴들을 내놨어요. 이를 모아서 살을 붙이고, 또 넘치는 것은 빼내 가면서 구성을 다듬어 나갔죠.”
이번 우리 레스토랑의 식사는 음식을 다 같이 나눠 먹는 풍습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한 ‘우리 한 입 거리’로 시작한다. 한식공간의 감태 다식, 온지음의 곶감 치즈와 새우포, 밍글스의 송로버섯 닭꼬치가 어우러진 메뉴는 여럿이 즐겁게 하나가 되는 축제와도 같다. 이후 식사로는 한식 공간이 제철 나물과 함께 선보였던 전병, 온지음의 백화반, 금태와 캐비어를 곁들인 밍글스의 어만두 등이 메뉴로 구성돼 예약조차 힘든 한식 다이닝들의 정수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Q : 메뉴와 코스 개발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습니까.
조은희 “메뉴 중에서 각기 하고 싶은 메뉴가 있는데, 제 경우엔 그게 밥이었어요. 한국 사람은 밥을 굉장히 좋아하고, 또 밥은 그 안에 여러 가지를 담을 수가 있거든요. 한식은 자연이 주는 제철 재료의 맛이 가장 중요해서, 흰 뿌리 채소를 모아 하얀 비빔밥 백화반을 만들었어요. 뿌리채소라는 게 참 신기하게도 가을 겨울에 너무 맛있어져서 늘 놀라는 재료거든요.”
박성배 “더덕·도라지·무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나물을 이용한 백화반은 하나의 색을 내며 어우러지는 이번 팝업을 의미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은지 “저는 코스의 마무리인 디저트를 담당했는데요. 아무래도 컨셉이 모던 한식이고, 다른 멋진 셰프님들과의 협업이기에 ‘우리’라는 이름과 취지, 그리고 흐름에 맞는 메뉴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최대한 다른 메뉴와 잘 어우러질 수 있고, 차분하고 은은하게 끝마무리할 수 있도록 한식 재료를 프렌치 테크닉으로 풀어낸 한국배 타르트와 유자 약과를 만들었어요.”
Q : 여러 셰프와 함께 하나의 코스를 완성한 경험은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조희숙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색을 드러내기보다 다른 셰프들과 결을 맞추고 다듬는 과정을 가졌다. 이번 우리 루이 비통의 메뉴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새로운 창조물이다.”
강민구 “조희숙 선생님은 저와 밍글스에 한식의 어머니 같은 분입니다. 조 선생님이 세종호텔에 입사하신 해는 제가 태어난 해로, 그만큼 한식 발전에 힘써오신 겁니다. 전 세계 여러 셰프들과 협업을 많이 해봤지만 이렇게 한식에 조예가 깊으신 셰프님들, 특히 밍글스가 지금처럼 한식으로 분류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조희숙 셰프님과 함께한 작업이 뜻깊었습니다.”
조은희 “각 레스토랑이 추구하는 방향이 한식이어도 분명 다른데, 그 다름이 모여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 쉽진 않았습니다. 서로 의견을 존중하고 서로의 방향을 이해하면서 하나의 코스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었습니다. 덕분에 셰프들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고, 다른 셰프들의 음식을 더 이해하고 폭을 넓히는 기회가 됐습니다.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도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 되길 바랍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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