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내부에? "뒷돈 45억 챙겼다" 몰락 앞둔 아베파 스캔들 전말
일본 자민당 최대파벌 '아베파'의 정치자금 스캔들이 일본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12일 일본 언론들은 "아베파가 챙긴 '뒷돈' 규모가 5억엔(약 45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대로 가면 아베파의 몰락은 물론 기시다 총리도 조만간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오기 시작했다. 후임 총리로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68) 자민당 간사장,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6) 전 방위상, 고노 다로(河野太郎·60) 디지털담당상,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42) 전 환경상 등의 이름도 나온다.
도쿄지검 특수부의 타깃이 왜 99명(자민당 의원은 총 380명)의 의원을 거느린 아베파로 유독 집중되고 있는지, 기시다 총리의 운명을 결정지을 최대 변수는 뭔지 그 막전막후를 취재했다.
"적은 내부에 있었다?"
아베파가 정치자금 모금 파티를 주최하면서 '파티권'을 할당량 이상 판매한 의원들에게 할당량 초과분의 돈을 다시 넘겨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아사히신문의 첫 보도가 나온 건 지난달 30일. 당연히 기자들이 아베파의 좌장 시오노야 류(塩谷立·73)에게 사실관계를 물었다.
이때 시오노야의 답변은 의외였다. "(그런 관행이) 있기는 있었다." 이 '자백'에 일 정치권이 들썩이자 시오노야는 5시간 뒤 "전혀 없다"고 당초 답변을 전면 철회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 사안을 무시하고 지나갈 수가 없게 됐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전모다.
하지만 현 정권의 핵심 관계자는 12일 "시오노야 좌장의 발언도 문제였지만 애초 이 사건을 외부에 흘린 건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69) 전 문부과학상인 걸로 안다"고 말했다.
시모무라는 아베파의 회장대리로 아베 전 총리의 심복이었다. 파벌의 2인자였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사망한 뒤 아베파가 '원로 모리 전 총리-좌장 시오노야-5인방 마쓰노 관방장관, 니시무라 경제산업상, 하기우다 자민당 정조회장, 다카기 국회대책위원장, 세코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의 집단지도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15명이 참석하는 상임간사회 멤버에서도 배척됐다. 모리 전 총리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아베파 관계자는 "모리 전 총리는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문부과학성 이권사업에 자꾸 끼어드는 시모무라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아베 사후 철저히 따돌림당한 것에 대한 시모무라의 원한이 이번 사태의 실마리가 됐을 공산이 크다.
실제 시모무라는 아베파의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사무총장을 역임했지만 이번 스캔들 과정에서 전혀 불똥이 튀지 않았다. 시모무라는 주변에도 "공소시효(5년)의 대상이 안 될지는 모르지만 사실상 이 (정치자금) 시스템을 만든 장본인은 모리 전 총리"라는 말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우에 따라선 모리 전 총리에 대한 참고인 조사가 이뤄질 공산도 있다.
검찰과 아베파의 악연
도쿄지검 특수부는 14일 임시국회가 끝나는 대로 관련 의원들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미 의원 비서관 30명가량을 소환 조사를 마쳤다고 한다. 일 정치권에선 "검찰이 아베파 수사에 칼을 갈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
이와 관련해 회자되는 게 아베 총리의 2020년 '검찰총장 인사 파동'이다. 당시 아베 정권은 도쿄고검장이던 구로카와 히로무(黒川弘務)를 차기 검찰총장으로 만들기 위해 정년이 임박한 구로카와의 고검장 근무를 6개월 연장하는 편법을 동원했다. 관련 법규까지 바꾸려 했다.
당시 구로카와는 '아베파의 파수꾼'이란 별칭이 돌 정도로 아베파와 각별한 관계였다. 검찰 내부에선 "왜 검찰의 인사에 정치가 편법까지 쓰며 관여하느냐"는 반발이 나왔다.
때마침 구로카와는 "코로나 비상사태 속에서 신문기자들과 내기 마작을 했다"는 한 주간지의 폭로가 나오면서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검찰 내부의 아베파에 대한 원한은 깊어졌다. 한 관계자는 "수사망이 좁혀오자 모리 전 총리가 지난주 요양병원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기시다의 운명은?
기시다 총리로선 이 문제가 아베파의 분열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민당 정권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다. 실제 12일에는 정치자금 누락 기재가 기시다파에도 있었다는 NHK보도가 나왔다. 결국 향후 칼자루는 검찰이 쥔 셈인데, 기시다 총리가 취할 시나리오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이르면 이번 주 부분적인 당정 개편을 통해 분위기 반전을 모색하는 것. 아베파 각료를 전원 교체하고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70) 외상과 같은 신선하면서도 안정적 인물을 관방장관 등 주요 각료에 등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자민당의 다른 파벌도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르는 사안인 만큼 기시다 총리를 당장 끌어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란 자신감도 깔려 있다. 현재로썬 가장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미국 국빈 방문(1월), 예산안 통과(3월)등 주요 정치 일정을 끝내자마자 국회를 해산해 총선거를 하는 방안이다. 자민당이 위기라고 하지만 야당이 워낙 약체인 만큼 국면 전환이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마지막은 자진해서 총리직을 퇴진하는 방안이다. 1988년 미공개 주식을 정계 거물들에게 뿌려 시세차익을 얻게 한 리크루트 사건 때도 다케시타 노보루 당시 총리는 자신의 퇴진으로 책임을 졌다. 만약 기시다가 조기 퇴진하면 현재로썬 2대 파벌인 아소파가 적극적으로 미는 모테기 자민당 간사장이 일단 유력하다.
다만 워낙 대중적 인기가 떨어지는 게 한계다. 엘리트의식이 강하고 한국에 대한 호감도도 떨어진다. "자민당을 회생시키기 위해선 새로운 이미지의 인물이 필요하다"는 내부 여론이 거세질 경우 고노 디지털담당상,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부상할 공산이 크다. 기시다 총리에 거리를 두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가 고노·고이즈미 옹립에 앞장서고 있다.
파벌 간 의견이 격하게 대립할 경우 어부지리 격으로 가미카와 외상이 부상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아베파는 당분간 혼돈을 겪으면서 후쿠다 다쓰오(福田達夫·56) 체제로 재편될 공산이 크다. 그는 아시아를 중시하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의 장남으로, 강성 아베파 내에선 상대적으로 중도성향이다.
김현기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kim.hyun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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