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혜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선립후파’ 외친 中… 부동산·부채 문제 안정적 해결 천명

권지혜 2023. 12. 13.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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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공산당, 신년 경제정책 기조로 제시
中매체, 온건·신중한 현안 접근 전망
부동산기업 자금 조달 숨통 트이고
지방 재융자 채권 발행 허용 가능성

선립후파(先立後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은 지난 8일 시진핑 국가주석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이 문구를 내년 경제정책 기조로 제시했다. 먼저 세운 후 낡은 것을 깨뜨린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온중구진 이진촉온’(穩中求進 以進促穩·안정 속에서 발전을 추구하고 발전을 통해 안정을 촉진한다) 등 총 12글자가 내년 경제 기조로 언급됐는데 중국 전문가들은 선립후파가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2021년부터 3년 연속 유지됐던 안정 속 발전 기조를 이어가면서 발전을 통한 안정 촉진, 선립후파라는 두 문구가 추가된 것이다.

11일 중국 관영 CCTV에 따르면 중앙정치국은 이번 회의에서 내년 경제 업무와 관련해 이 같은 개념을 제시했다. CCTV는 “안정과 발전, 세우는 것과 깨뜨리는 것의 변증법적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경제 업무를 잘 수행하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위원이자 중국기업재무관리협회 회장인 장롄치는 경제 매체인 중신재경에 “이는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표현”이라며 “경제발전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토대이자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회의 내용이 공개되자마자 선립후파가 중국 경제 분야의 핫 키워드로 떠올랐다. 제안 자체는 새롭지 않지만 새로운 의미를 담고 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이 표현이 처음 등장한 건 2021년 12월 중앙경제공작회의로 알려져 있다. 당시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 정점을 찍은 뒤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쌍탄’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각 지방정부에 탄소배출 감축을 채근했다. 그 결과 지방정부가 무리하게 전력 공급을 줄이면서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쌍탄 목표는 시 주석이 2020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직접 발표한 핵심 구상이다. 그 일환으로 중국 정부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적용되는 14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14·5계획) 기간 에너지 소비 총량을 13.5%, 탄소가스 배출량을 18% 줄이기로 했다. 시행 첫해 일부 지방정부가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극심한 전력난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하자 선립후파라는 표현으로 단계적 추진, 속도 조절을 강조한 것이다. 국제환경단체 기후행동추적(CAT)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나라다. 다만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미국 캐나다 러시아 한국 이란 중국 순이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쌍탄 목표 달성은 심오한 변화이며 녹색에너지 전환은 단번에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면서 “국가 에너지 안보, 공급망 안정, 식량 안보 및 인민의 정상적인 생산과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언급된 선립후파는 에너지뿐 아니라 중국 경제의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각종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표적인 분야가 부동산 시장과 지방정부 부채다. 이 둘은 중국 경제를 위협하는 양대 뇌관으로 꼽힌다.

금융 통신사인 재무연합사는 “중앙정치국 회의 결과는 중국 당국이 부동산 및 지방정부 부채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다 온건하고 신중할 것임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금융 위험이 발생하지 않는 마지노선을 유지한 상태에서 부동산 기업의 자금 조달 요구를 충족시키고, 숨겨진 지방채무를 해결하는 동시에 채무를 갚기 위한 재융자 채권 발행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기조하에 중국의 주요 국유은행이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약 한 달 동안 부동산 기업에 대출한 금액은 300억 위안(5조5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달 금융기구좌담회에서 부동산 대출을 최소 은행업계 평균 이상으로 늘리고 특히 민영 부동산 기업에 대한 대출에 집중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중앙정치국 회의에선 소비와 투자가 서로 촉진하는 선순환 구조 형성, 과학기술 혁신의 주도적 위치 확립, 반부패 투쟁의 지속적인 추진도 논의됐다.

중국은 매년 12월 중순 중앙경제공작회의를 열어 한 해의 경제성과를 점검하고 새해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 통상 중앙경제공작회의는 중앙정치국 회의가 열린 지 일주일 내에 시작되고 그 결과는 공보 형식으로 발표된다. 시 주석이 12~13일 사회주의 이웃 국가인 베트남을 국빈방문하는 일정을 고려하면 중앙경제공작회의는 그 직후에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시 주석의 베트남 방문은 2017년 이후 6년 만이며, 미국과 베트남이 지난 9월 양국 관계를 가장 높은 단계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한 지 3개월 만이다.

중국 경제 전문가들은 중국이 내년에 약 5%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것이며 서비스업과 고급 제조 및 인프라 투자가 주요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 특별연구원 야오징위안은 관영 글로벌타임스 인터뷰에서 “2024년 중국 경제는 대내외적으로 많은 도전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에 안정을 유지하면서 발전을 추구하는 방식이 전반적인 기조가 될 것”이라며 “우리는 안정 속에서 성장을 지속하고 단계적으로 발전을 추구하며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위험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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