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주의 촌철生인] 레이디 디올

2023. 12. 13. 04: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디올의 첫 女 수석디자이너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 돼야”
젠더 문제 해결의 나침반 되길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디올(Dior)에는 ‘미스 디올’이 있고 ‘레이디 디올’이 있다. 미스 디올은 향수다. 디올에 의하면 미스 디올 향수는 다채로운 색의 꽃잎과 향기로운 플로럴 부케로 가득한 놀라운 향의 세계를 펼친다고 한다. 핑크색 향수병은 내가 보아도 사랑스럽다. 레이디 디올은 가방이다. 800만~900만원을 호가하는 이 고가의 명품백은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관련이 있다. 199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폴 세잔 회고전 개막식에 참석한 다이애나 왕세자비에게 당시 프랑스 영부인이었던 베르나데트 시라크가 선물한 것이 바로 이 가방. 원래는 디올에서 ‘슈슈’라는 이름으로 출시하려던 제품이었으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이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이 자주 언론에 노출되면서 아예 ‘레이디 디올’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게 됐다고 한다.

디올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여성들이 또 있다. 나이지리아 출신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그리고 디올의 수석디자이너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먼저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에 대해 얘기하자면, 그는 디올 창립 70년 만에 처음으로 수석디자이너로 영입된 여성이다. 파리 패션위크에서 열린 2017년 봄여름 시즌 패션쇼에서 자신의 첫 디올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의 첫 작품을 보기 위해 패션업계가 특별히 주목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패션쇼에서 세간의 화제가 된 것은 한 모델이 입고 나온 흰색 티셔츠였다. 티셔츠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We Should All Be Feminists).’

이제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에 대해 얘기할 차례다. 아디치에는 2000년대 초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부터 주목을 받았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줄줄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100대 도서, ‘더 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필독 소설 등등. 2012년 테드에서 한 강연은 현재 유튜브 조회수 820만을 넘겼다. 그 강연을 바탕으로 낸 아디치에의 책 제목이 바로 ‘We Should All Be Feminists’다. 그러니까 기존의 여성성과 관능미를 강조해온 럭셔리 브랜드 디올의 첫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자신의 첫 컬렉션에서 페미니스트 작가의 문장을 인용한 것이다. 이 티셔츠 선언이 다만 새롭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용감하고 비전통적인 새로운 여성성을 표현하겠다는 것인지, 디올이 실제 페미니즘과 인식을 함께하겠다는 것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테드 강연에서 아디치에가 말했듯이 ‘너는 페미니스트야’라는 말이 마치 ‘너는 테러리즘 지지자야’라고 말할 때의 어투와 같으면 안 된다는 것에 공감을 표한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해 4월 말 디올의 글로벌 패션쇼가 처음 한국에서 열렸다. 장소는 이화여자대학교. 이 뜻밖의 장소는 첫 컬렉션에서 선보인 티셔츠가 아직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일까? 바로 다음 날 디올은 용감하고 비전통적인 여성들이 많이 오가는 서울의 핫스폿 성수동 중심에 새로운 콘셉트 스토어를 오픈했다. 1946년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올이 만든 파리 몽테뉴가 30번지의 디올 부티크를 연상시키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외관의 ‘디올 성수’는 지금도 성수동에서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젊은 여성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디올이라면 립글로스 하나밖에 써본 적 없는 나는 성수동 그곳에 아직 가보지는 못했으나 바람은 하나 있다. 새로운 시대의 여성들과 만나려는 이 우아하고 매혹적인 명품 브랜드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부디 실천해주기를. 남자든 여자든 오늘날의 젠더에는 문제가 있고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아디치에의 말에 동의한다면, 새로운 시대 레이디 디올의 ‘애티튜드’에서 제외돼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부디 공유해주기를. 럭셔리의 반대말이 빈곤함이 아니라 천박함이라는 말이 코코 샤넬의 명언만은 아님을 부디 보여주기를.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